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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의료·건강

“정부 예산으로 치유센터 만들어 피해자 2~3년간 보살펴야”

등록 2014-04-27 20:38수정 2014-04-28 09:25

세월호 실종자들의 무사 귀환을 염원하는 노란 리본이 나부끼는 전남 진도군 팽목항 부두에서 27일 오후 한 실종자 가족이 빗속에서 흐느끼고 있다. 진도/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세월호 실종자들의 무사 귀환을 염원하는 노란 리본이 나부끼는 전남 진도군 팽목항 부두에서 27일 오후 한 실종자 가족이 빗속에서 흐느끼고 있다. 진도/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정혜신 박사가 말하는 마음 치유법

정부 무책임 ‘2차 트라우마’ 불러
세월호 참사로 우리 사회 심리적 죽음
생존자·유족들부터 치료
사회적 치유시스템 10년간 운영을
정혜신 박사(마인드프리즘 대표)
정혜신 박사(마인드프리즘 대표)

“아이들이 수장되는 과정이 느린 화면으로 보듯 생중계됐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치명적인 균에 의해 피부가 감염됐다가 장기에 퍼져 염증이 생겨도 국소적이라면 항생제로 치료할 수 있다. 그런데 균이 혈관을 타고 핏속으로 들어가면 패혈증이 발생해 대부분 사망한다. 세월호 재앙은 국소적 염증이 아니라 균이 혈관을 타고 들어간 형국이다.”

정신과 전문의로 쌍용차 해고 노동자 등을 대상으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트라우마)’를 직접 치유한 경험이 있는 정혜신 박사(마인드프리즘 대표)는 “세월호 사건으로 우리 사회 전체가 심리적 죽음에 이를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정 박사는 28일 발행되는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세월호 트라우마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우리 사회에 한국전쟁과 맞먹는 상흔이 남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심리치유가 필요한 사람의 규모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크다는 것이다.

세월호 침몰에 따른 트라우마가 실종자·희생자의 지인이나 가족에 그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정 박사는 “생명을 구하는 시스템이 마비된 복마전 같은 사회구조에 기여하지 않은 어른은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사고 수습과정의 무책임과 무능력이 전국민을 트라우마의 핵심 감정인 죄의식과 책임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는 진단이다. 정 박사는 “배가 침몰된 게 1차 트라우마라면 정부의 무책임한 대응은 2차 트라우마”라며 “2차 트라우마가 결정적으로 사람을 무너뜨렸다”고 말했다.

정 박사는 세월호 참사로 인한 분노를 누군가 흡수해 줘야 사람들의 감정을 추스릴 수 있다고 짚었다. 그리고 이 재앙을 수습할 수 있는 “첫번째이자 마지막 사람은 대통령”이라고 강조했다. “지금 피해자들이나 우리 모두에게는 갖가지 감정이 혼재해 있다. 그러나 어느 하나 정리된 게 없다. 그 가운데 제일 먼저 수습이 가능한 감정이 분노다. (이를 위해서는) 책임 있는 사람이 ‘진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상황도 사람들의 감정도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

그는 이어 “대통령이 먼저 사과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대통령 혼자 죄의식을 안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화내면서 누군가를 혼내고 있다. 지금의 고통과 연결된 정서적 끈이 존재하지 않는 다른 나라 사람 같다. 대통령이 이런 감정들을 흡수하는 입장에 서지 않으면 온 국민은 계속 칼에 찔리는 느낌을 갖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 무책임 대응 2차트라우마 불러
세월호 참사로 우리 사회 심리적 죽음
생존자·유족들 트라우마부터 치료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치료센터’ 필요

정 박사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가장 크게 받은 생존자와 유족의 트라우마가 제대로 치료되지 않으면 몇 년이 지난 뒤에라도 극단적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를 막기위해 정부 예산을 동원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치료 센터’를 안산에 만들어 집중 치유하자고 제안했다. “생존자와 유족들은 최소한 2~3년 정도의 지속적인 치유와 보살핌이 필요하다. 특히 이번엔 치유가 필요한 대상 집단이 넓은데다 트라우마를 정확하고 입체적으로 해결하려면 사회적인 치유 시스템도 만들어져야 하기 때문에 최소한 10년은 지속적으로 매달려야 한다.”

정 박사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첫 증상은 (생존자의 경우) 잠도 못 자고, 음식도 못 넘기고, 사망 통지 받았던 순간들과 같이 있던 친구들 모습이 계속 떠오르는 것이다. 그러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일부 생존자나 유족들은 그 기억을 잊기 위해서 일이든 뭐든 몰두하기 시작한다. 아이들 중에는 딴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공부만 파는 애들도 있다”고 말했다. 뭔가 열중해서 하는 것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2단계 증상들인데, 몰입함으로써 불안이나 공포·죄의식 등을 잊으려고 하는 시도라는 것이다.

정 박사는 “몰입하는 모습을 보면 주위에선 이들이 고통을 극복한 증거로 받아 들인다. 물론 자신도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착각이다. 이런 극단적인 몰입이 어느 순간 아주 사소한 계기에 툭 끊어질 수 있고, 이 때문에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장기 및 전체적으로 조망하면서 치유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건들을 지켜 보고 함께 겪은 국민들의 트라우마는 어떻게 치유하느냐는 질문에 정 박사는 “아이의 얼굴을 확인하러 온 엄마들은 바닥에 드라이아이스가 깔려 있는 줄 모른 채 아이의 몸이 너무 차다며 담요를 찾는다. 드라이아이스는 부패를 막기 위한 필수적인 조치이지만 엄마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서 아이들에게 따뜻한 담요를 덮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세월호 트라우마에 대처하는 방식이 그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가 제안한 구체적인 방법은 (전국 곳곳에 설치된) 분향소부터 찾는 것이다. 함께 슬퍼하면 많이 슬프지 않게 할 수 있고, 많이 힘들다면 혼자 슬퍼해서 그럴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지난 24일 세월호 실종자 및 희생자들의 가족들이 있는 진도로 향했다.

김양중 기자 himtrain@hani.co.kr

정혜신 박사 인터뷰 전문 보기

<인터뷰 전문은 28일 발행되는 <한겨레21> 1009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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