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하리하라 눈을 보다 / ⑨ 색각이상
▶ 하리하라 본명 이은희. 생물학을 전공해 연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나, 우연히 인터넷 블로그에 썼던 글들이 <하리하라의 생물학 카페> 등 책으로 묶여 나오면서 과학언론학으로 전공을 바꾸었다. 현재는 과학작가이자 강연자로 살고 있다. ‘하리하라’라는 인터넷 아이디를 필명으로, 세상에 퍼져 있는 과학에 대한 선입견과 오해를 걷어내는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 <한겨레> 토요판에서 격주로 ‘인간의 눈’과 본다는 것의 의미를 탐구한다.
아이의 장례식이란, 단어의 연결조차 어색하다. 그 자체가 모순인 곳, 그곳의 분위기를 더욱 기묘하게 만드는 건 중심에 앉은 한 여인이었다. 가뜩이나 가라앉은 공간에서 유독 음울한 공기가 흐르는 곳은 아마도 죽은 아이의 산 부모 주변일 것이다. 하지만 오늘 그 공간에 들어선 인물은 선명한 붉은 옷에 붉은 립스틱을 바르고 있었다. 그녀에게서 나오는 핏빛 아우라는 가뜩이나 어긋난 공간을 더욱 비틀고 있었다.
영화 <식스 센스>는 허를 찌르는 반전과 복선들로 가득찬 영화여서 여러 명장면으로 유명하지만, 그중 그로테스크한 느낌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일명 ‘구토하는 소녀’의 장례식에서 아이의 엄마-아마도 계모?-가 장례식에 어울리지 않는 붉은색 옷과 화장을 한 채 앉아 있는 장면이었다. 아이의 죽음을 핏빛 드레스로 표현하는 엄마라니.
색에 대한 의식적 전통과 인식은 생각보다 강하다. 파란색 웨딩드레스나 검은색 배냇저고리, 빨간색 의사 가운은 어색함을 넘어 불쾌한 감정까지 불러일으키며, 티피오(TPO, 시간과 공간과 상황)에 어긋나는 색의 옷은 개인적 취향의 한계를 넘어 상대와 사회에 대한 의도적인 무례로 읽히기도 한다. 그렇기에 사회적 예절과 색의 적절한 적용 사이에서 더욱 고통받았던 인물이 있다. 그의 이름은 존 돌턴(1766~1844). 원자설을 주장해 근대 화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이다.
돌턴이 죽으며 남긴 안구가 비밀을 풀다
1794년, 돌턴은 맨체스터 문학철학회에 ‘(색상을 보는 시각에 대한 놀라운 사실’(Extraordinary facts relating to the vision of colours)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기고하는데, 이는 최초의 색각이상에 대한 논문으로 알려져 있다. 돌턴은 녹색과 붉은색을 구별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다양한 색조의 붉은색을 회색이나 검은색으로 인식하곤 했다. 그래서 그의 이름 뒤에는 위대한 과학자라는 수식어와 함께, 양말을 짝짝이로 신고 공식석상에 나타났거나, 화려한 붉은옷을 수수한 회색옷과 착각해 입고 다녔다는 에피소드들이 따라붙곤 한다. 현재 붉은색과 녹색을 구별하지 못하는 적록색각이상의 영어식 명칭인 ‘돌터니즘’(doltanism)은 그의 이름으로부터 유래된 명칭이다. 이 논문에서 돌턴은 자신이 색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는 것, 특히나 붉은색을 볼 수 없는 것은 자신의 안구 내 유리체 속에 푸른색 물질이 들어 있어서 붉은색 빛을 차단하기 때문이라고 가정했으며, 과학자답게 자신의 사후 안구를 해부하여 자신의 가설의 진위 여부를 판단해 달라는 유언장을 남겼다.
고인의 뜻에 따라 그의 지인이자 주치의였던 조셉 랜섬은 돌턴의 사후 그의 안구를 적출하여 그중 하나를 해부하여 분석하였지만, 돌턴의 유리체는 보통 사람들처럼 맑고 투명하다는 사실만을 알아낸다. 비록 돌턴의 가설은 틀렸지만, 훗날 그가 색을 제대로 인지할 수 없었던 비밀 역시도 그가 남긴 눈을 통해 밝혀진다. 랜섬은 돌턴의 두 눈 중 하나는 해부하였지만, 나머지 하나는 썩지 않도록 보존 처리해서 남겨둔 덕에 200여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현대 과학자들이 그의 안구에서 디엔에이(DNA)를 추출해 유전자 검사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돌턴의 안구 디엔에이 검사 결과는 1995년에 <사이언스>지를 통해 발표되었는데, 돌턴은 세가지 종류의 원뿔세포 중 녹색 부위를 인지하는 원뿔세포의 돌연변이를 가지고 태어난 ‘제2 색각이상’(혹은 녹색맹)이었다고 한다. 아마도 돌턴은 그제야 자신의 눈을 과학적으로 기증한 것이 옳은 선택이었음에 만족했을 듯하다.
지난 칼럼에서 언급했듯이 우리가 색을 구별할 수 있는 것은 세가지 종류의 원뿔세포가 있기 때문이다. 이 원뿔세포는 각각 빨강, 초록, 파랑을 내는 빛의 파장을 인식한다. 어릴 적 미술시간에 단골 문제로 나오던 ‘색의 3원색’과 ‘빛의 3원색’ 문제를 기억하는가? 색의 3원색은 빨강-노랑-파랑이지만, 빛의 3원색은 빨강-초록-파랑이었다. 일상에서는 빛의 색보다는 물감이나 크레파스가 주는 색에 더 익숙했기 때문에, 초록은 노랑과 파랑의 중간색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는데 빛에서는 왜 하필 초록이 원색이 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시절이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우리의 눈에 있다. 우리의 눈 자체가 빨강과 초록, 파랑밖에 인지하지 못하며, 나머지 빛깔들은 이 세가지 색들의 조합으로 인식하기 때문이었다. 만약 우리의 눈에 더 많은 종류의 원뿔세포들이 존재했다거나, 혹은 다른 파장의 빛을 인식하는 원뿔세포가 존재했다면 빛의 원색들은 바뀌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세가지 원뿔세포들은 어떤 방식으로 빛의 색을 감지하는 것일까? 우리 눈이 보는 가시광선은 단일한 종류의 빛이 아니라 다양한 파장을 지닌 빛의 혼합이다. 빛을 프리즘에 통과시키거나 비가 오고 난 뒤 젖은 하늘 너머 무지개가 보이는 것이 가시광선이 단일한 존재가 아니라는 근거다. 이 복합 파장들의 모임 중에서 사람의 원뿔세포는 긴 파장(570~590㎚)에 민감한 것과 중간 파장(535~550㎚)에 민감한 것, 짧은 파장(440~450㎚)에 민감한 것 세 종류로 나뉘는데 각각의 파장에 대응되는 빛의 색은 빨강-초록-파랑이므로, 장파장-중파장-단파장을 인식하는 원뿔세포는 각각 빨강-초록-파랑을 인식하는 원뿔세포인 것이다. 빛이 눈으로 들어오게 되면 광자(光子, 빛의 파장을 구성하는 입자)들은 원뿔세포를 자극해 진동시키고 이 자극이 뇌로 전달되어 색을 인식하게 된다. 이때 각각의 원뿔세포들은 빛의 파장과 자신이 좋아하는 파장 사이의 일치도에 따라서 정도를 달리해 반응하는데, 예를 들어 빛의 파장이 570㎚라면 장파장 원뿔세포가 이에 정확히 대응하므로 이 신호만 뇌에 전달되어 붉은색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파장이 애매한 500㎚라면 이와 먼 장파장 원뿔세포는 가만히 있고, 그나마 근접한 중파장과 단파장 원뿔세포가 마지못해 조금씩 움직여 뇌에 신호를 보낸다. 그러면 두 원뿔세포가 동시에 보내온 반쪽짜리 신호를 받아들인 뇌는 이 물체의 색을 초록빛과 파란빛의 중간색인 노랑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책을 인쇄할 때 4가지 색을 사용하는 4도 인쇄만으로 컬러판 책을 낼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뇌도 각각의 빛의 파장에 대응하는 원뿔세포의 움직임 정도를 파악해 세상을 총천연색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색을 보게 만들어주는 원뿔세포
제 기능을 못하면 색각이상 돼
원뿔세포 전혀 존재하지 않으면
세상은 온통 흑백티브이로 보여
대개는 극도의 시력저하를 동반 색각이상 또는 색약자 비율은
서양선 인구 8%, 우리나라 5%
이들 중 99.9%가 남성들인데
X염색체 하나뿐인 유전자 특성
주로 빨강과 초록만 구분 못해
세상이 더 찬란하게 보이는 사색형색각
원뿔세포가 색을 보게 만들어준다는 의미는 뒤집어 말하자면, 원뿔세포가 아예 없거나 혹은 있더라도 제 기능을 못하면 색을 볼 수 없다는 말이 된다. 이런 경우를 색각이상이라고 한다. 만약 원뿔세포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면 색을 전혀 구분할 수 없어 세상이 온통 흑백텔레비전처럼 보이는 완전색각이상(전색맹)이 나타난다. 이는 매우 드물게 나타나고, 대개는 극도의 시력 저하와 동반되는 경우가 많아서, 색각이상 이전에 저시력으로 인해 더 큰 고통을 받곤 한다. 이보다 흔히 나타나는 것은 이색형 색각이상으로 삼색 중 하나를 인식하는 원뿔세포가 문제가 있어 세상을 두가지 색의 혼합으로만 인식하는 증상을 말한다. 이는 다시 인식하지 못하는 색에 따라 제1색각이상(적색원뿔세포 결함, 적색맹), 제2색각이상(녹색원뿔세포 결함, 녹색맹), 제3색각이상(청색원뿔세포 결함, 청색맹)으로 나뉜다. 이 밖에도 세가지 원뿔세포가 모두 존재하고는 있지만, 한가지 원뿔세포가 다른 것들에 비해 민감도가 떨어지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 아예 해당 빛의 색을 볼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세심한 색의 구별은 되지 않는 이상삼색형색각도 있다. 이들 역시도 민감도가 떨어지는 종류에 따라 제1색약(적색약), 제2색약(녹색약), 제3색약(청색약) 등으로 나뉜다.
원뿔세포가 없거나 기능을 하지 못해 색을 구별할 수 없다면, 원뿔세포가 더 많다면 색을 더 볼 수 있다는 뜻일까? 맞다. 네번째 원뿔세포는 자외선을 인식한다. 꿀벌이 자외선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은 꽤 유명하다. 하지만 사람은? 사람도 자외선을 볼 수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외선을 볼 수 없다. 3종류의 원뿔세포만으로도 100만가지의 색을 구별할 수 있기에 우리가 보는 세상은 충분히 다채롭다. 하지만 하나가 더 있다면? 극히 드물긴 해도 4종류의 원뿔세포를 가진 사람들도 세상에는 존재한다. 이들을 사색형색각(tetrachromacy)라고 하는데, 이들의 눈은 보통사람들이 7가지로 인식하는 무지개에서 10가지 색깔을 보며, 1억가지의 색을 구별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눈으로 세상을 본다면, 세상은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찬란하고 복잡할 듯싶다.
흔히 어릴 적 신체검사에서 다양한 색의 점들로 구성된 동그라미 안에 어떤 숫자가 쓰여 있는지 읽는 색상환 검사를 받아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색상환은 무작위로 선택된 것이 아니라, 바탕의 점들과 숫자를 이루는 점들은 색각이상이나 색약을 겪는 이들이 구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색들로 구성되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색각이상자 혹은 색약자의 비율은 높아서 서양의 경우 전체 인구의 8%, 우리나라의 경우 5%의 정도가 색을 인식하는 데 곤란을 느낀다고 하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묘한 특징이 두가지 있다. 이들 중 99.9%는 남성이라는 것과 이들이 구별하지 못하는 색이 주로 빨강과 초록이라는 사실이다. 즉, 여성 색각이상자나 색약자는 매우 드물며(여성 전체 인구의 0.004%), 파랑색을 볼 수 없는 색각이상은 전체 색각이상자 중에서도 0.1% 이하로 매우 드물다는 말이다.
색각이상을 겪는 이들이 대부분 빨강과 초록을 구별하지 못하는 남성(돌턴도 여기에 포함된다)이라는 사실은 이 둘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음을 시사한다. 세 종류의 원뿔세포를 만드는 유전자는 같이 뭉쳐 다니는 것이 아니라, 따로따로 존재하는데 빨강과 초록 원뿔세포 유전자는 성염색체인 X염색체 위에 존재하지만, 파랑 원뿔세포를 만드는 유전자는 뚝 떨어져 7번 염색체 위에 따로 존재한다. 빨강과 초록 원뿔세포 유전자가 X염색체 위에 있다는 사실부터가 남성에게는 원초적인 비극이 된다. 성염색체인 X염색체는 남녀에 따라 개수가 다른데, 여성은 X염색체를 두 개 가지고 있지만, 남성은 하나뿐이다. 따라서 여성은 두 개의 X염색체 위에 있는 원뿔세포 유전자에 모두 결함이 있어야만 증상이 나타나지만, 남성은 X염색체가 하나이므로 결함이 생기면 보완이 불가능해 바로 색각이상 증세가 나타나는 것이다. 반면 상염색체인 7번 염색체는 남녀 모두 2개씩 가지고 있으므로, 애초부터 색각이상이 드러나는 경우 자체도 드물 뿐 아니라 이 경우에는 남녀의 비율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그렇다면 색각이상을 겪는 이들의 눈에는 세상이 어떻게 보이는 것일까? 사실 이들이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정확히 알 방법은 없다. 게다가 시력도 0.1에서 2.0 사이에 걸쳐 다양한 층위가 있듯 색각이상의 정도도 역시 해당 색을 전혀 인지할 수 없는 경우부터 아주 미묘한 색감의 차이만 구별하지 못해 일상생활에는 별 불편을 느끼지 못하는 정도까지 매우 다양하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제1색각이상의 경우, 적색과 그 보색인 청록색을 구별할 수 없고, 제2색각이상인 경우, 녹색과 그 보색인 적자색을 구별할 수 없으며, 이 둘 모두 세상이 주로 노랑과 파랑의 혼합으로만 보이게 된다. 반면 제3색각이상의 경우, 녹색을 보지 못해 세상이 모두 빨강과 파랑으로만 인지된다. 색각이상자의 대부분을 적록색각이상이라고 부르는 것 역시도, 적색색각이상이든 녹색색각이상이든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 자체는 거의 동일-빨강과 초록을 구별하지 못하고 이에 해당하는 색들이 황색의 그러데이션으로 느껴지는-하기 때문이다.
‘볼 수 없는’ 게 아니라 ‘다르게 보는 것’
조선을 대표하는 두 명의 화원인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팩션 소설 <바람의 화원>에서는 이를 차용해 단원을 적록색각이상으로 등장시킨다. 단원의 그림 중에는 색을 쓰지 않고, 먹과 황색 안료의 미묘한 농담의 차이를 잘 살린 작품이 많다는 데서 착안한 작가의 상상력의 결과물이다. 하지만 실제로 제2색각이상(녹색색각이상)의 경우, 빨강과 초록 그 자체는 구별하지 못하지만 초록색 자체의 미묘한 질감의 차이는 오히려 더 잘 구별한다고 한다. 그래서 가끔씩은 전쟁터에서 초록색 위장복을 입고 수풀 속에 숨어 있는 적군을 구별하는 데 이들의 능력을 사용했다고 하는 기록도 남아 있다. 혹자는 색각이상 유전자가 오랜 진화적 세월을 거치는 동안 도태되지 않고 우리의 염색체 속에 여전히 남아 있는 이유를 여기서 찾기도 한다. 이들은 색을 ‘볼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색을 ‘다르게 보기’ 때문이라고, 그들은 ‘결핍된 존재’가 아니라 생물체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다른 존재’라고 말이다.
생물은 언제부터 색을 보기 시작했을까? 처음부터 지금처럼 색을 볼 수 있었을까? 이러한 의문에 답하고자 과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원뿔세포 유전자의 기원에 대해 연구한 바 있다. 이들의 연구를 보면, 생물체가 가장 처음으로 본 색은 초록이었다고 한다. 원시적 초록 원뿔세포에 해당하는 광색소 유전자는 약 생물체에게 눈이 생겨난 그 시점인 5억년 전부터 등장했으며 그다음에 등장한 것은 파랑을 인식하는 능력이었다. 그리고 빨강은 이보다 한참 뒤처진 3천만~4천만년 전에야 처음 눈에 인식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하면 생물체는 풀과 나뭇잎의 초록색에서 시작해 하늘과 바다의 파란색을 거쳐, 잘 익은 열매와 피의 붉은색을 시야에 첨가시켜 왔다는 뜻이 된다. 우리가 지금도 초록색에서 신선함과 싱그러움, 생명력과 원초적 자연에 대한 갈망 같은 것을 느끼는 것은 오랜 진화적 변이 속에서도 여전히 남아 있는 무의식의 한 조각일지도 모른다.
이은희 과학 작가
영화 ‘식스 센스’의 한 장면.
제 기능을 못하면 색각이상 돼
원뿔세포 전혀 존재하지 않으면
세상은 온통 흑백티브이로 보여
대개는 극도의 시력저하를 동반 색각이상 또는 색약자 비율은
서양선 인구 8%, 우리나라 5%
이들 중 99.9%가 남성들인데
X염색체 하나뿐인 유전자 특성
주로 빨강과 초록만 구분 못해
1917년 일본 교토대의 이시하라 시노부 교수가 개발한 색각이상 판별지. ‘이시하라 테스트’라고 불리는 이 검사는 접시모양 안의 숫자를 피검사자가 제대로 판별하는지를 살펴본다. 이를테면 왼쪽 그림의 숫자를 일반인은 74로 읽지만, 색각이상자들은 읽지 못하거나 다른 숫자를 댄다. <한겨레> 자료사진
이은희 과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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