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낮 서울 중구 을지로6가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의료진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선별 진료 접수처를 방문한 환자의 체온을 재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으로 인한 자가격리 대상자가 2천명을 넘긴 가운데 격리 대상자 관리가 엉터리란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에 시민들의 불안감은 더 커지고 있다. 정부는 위치 추적 등 강제조처를 통해서라도 격리 대상자들의 이탈을 막겠다는 방침이지만, 격리 대상자들은 격리 책임을 개인에게만 떠넘기기에 급급하다고 지적한다.
지난달 하순 메르스 확진자가 방문했던 경기도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직장인 ㄱ씨는 2일 지역 보건소로부터 ‘격리 대상’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보건소 관계자는 “바깥출입을 삼가고 가족과 가능하면 접촉하지 말라”고 말한 뒤 이튿날 방문하겠다고 했다. 현 상황에 대한 상세한 설명에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황당한 일은 그다음에 벌어졌다.
이튿날 ㄱ씨의 집을 방문한 보건소 관계자는 “체온을 확인해서 매일 알려달라”는 전화 연락과 함께 체온계와 마스크, 행동지침을 집 앞에 두고 갔다. 체온계에는 건전지가 빠져 있었다. 서둘러 보건소 쪽에 연락해봤지만 전화 연결이 쉽지 않았다. ㄱ씨는 7일 <한겨레>와 한 전화통화에서 “하는 수 없이 직접 가까운 편의점에서 건전지를 사왔다. 감염을 막으려는 정부의 의지가 기본부터 부족한 게 아니냐”고 말했다. 정부의 메르스 방역에서 사실상 알맹이가 되는 것은 격리대책인데 그마저 주먹구구식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지적이 나오자 앞서 5일 경찰은 자가격리 대상자가 연락이 되지 않고 집에서도 확인되지 않을 경우 위치를 추적하고 강제격리 조처하겠다고 밝혔다.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현행범 체포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일부 격리 대상자 중엔 아예 사전에 구체적인 지침이나 필요한 비품들을 전달받지 못한 이들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메르스 자가격리 대상자·대상자 가족 예방조처 (※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 의료진 ㄴ씨는 지난달 하순 “확진 환자와 접촉해 자가격리해야 한다”는 질병관리본부의 연락을 받았다. “곧 보건소로부터 연락이 올 테니 그때까지 외부 접촉을 삼가라”는 취지였다. 자신보다 앞서 걱정되는 것은 자녀와 부모 등 함께 사는 가족이었다. 해당 관계자는 “혹시 모르니 접촉을 최소화하고 수건 등을 따로 쓰는 것을 권장드린다”는 말만 남겼다.
답답한 마음으로 이틀을 기다려도 보건소에서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직접 보건소에 연락하자 그제야 보건소에서 물었다. “검체 검사는 하셨어요? 마지막으로 환자와 접촉한 게 이틀 전인가요? 저희에겐 통보된 게 없었는데….” ㄴ씨의 명단이 다른 주소지로 잘못 전달됐던 것이다. 그나마 의료진이기에 자가격리 중 필요한 지침들을 스스로 이행할 수 있었다. ㄴ씨는 “언론에서 보면 열심히 (격리 대상자를) 관리한다더니 지침 등에 대해 전혀 연락을 못 받는 사람도 적지 않다는 반증”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한미정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사무처장은 “보건당국의 질병관리 매뉴얼에 의한 자가관리자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사례가 계속 나오고 있다. 자가격리자들에 대한 행동요령, 가족 등 주변사람들의 주의사항, 지역사회 복귀 전후의 확인 절차 등 현재의 매뉴얼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그래픽 뉴스] 메르스 이렇게 확산됐다…환자 발생 지역와 전파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