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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의료·건강

“땀 범벅에 시야는 흐릿…우리도 두렵다, 하지만 환자들 있으니”

등록 2015-06-17 20:14수정 2015-06-17 22:16

17일 오후 서울 중랑구 신내동 서울의료원 격리병동 간호사들이 이곳에서 치료받다 숨진 환자의 침대를 소독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17일 오후 서울 중랑구 신내동 서울의료원 격리병동 간호사들이 이곳에서 치료받다 숨진 환자의 침대를 소독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최전선’ 서울의료원 현장
“방호복 ‘후드’(안면보호구)를 구하기가 매우 어려워요. 규정대로라면 한번 사용하고 버려야 하는데 후드가 부족하다 보니 재사용하는 경우도 있어요.”

16일 오후 서울시 중랑구 신내동 서울의료원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격리병동. 모니터룸에서 영상으로 환자들 상태를 살피던 최희정(48) 간호사는 “부족한 건 사람만이 아니”라며, ‘메르스 최전방’에서 사투를 벌이는 공공병원 의료진의 어려움을 전했다.

오후 교대근무에 나선 간호사 두 명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방호복과 보호장구를 꼼꼼하게 착용하기 시작했다. 긴장감이 배어났다. 이들은 2시간 동안 격리병실에 투입돼 환자들 상태를 살피고 의식이 없는 환자의 자세를 일일이 바꿔주고, 메르스의 전형적 증세인 가래를 제거하는 일을 도맡게 된다.

감염 위험이 높지만 두 간호사 중 한쪽만 전동식 호흡장치(PAPR)와 안면보호구를 갖춘 시(C) 등급 방호복을 착용했다. 다른 간호사는 고글과 방역마스크만 쓴 디(D) 등급 방호복 차림이다. 보통 격리병실에 투입되면 내리 2시간씩 일하고 교대하기 때문에 이곳에선 개당 8만~10만원인 일회용 안면보호구가 하루 24개 필요하지만, 최근 수요가 급증하면서 예산이 있어도 물량 확보가 쉽지 않다고 한다. 이 때문에 소독해 재사용하거나 중환자를 돌보는 의료진만 호흡장치를 착용한다고 했다. 이인덕 간호부장은 “인력을 투입하고 물품을 구하는 것까지 전부 병원에 맡겨져 있다. 국가적 재난에서 공공병원이 발 벗고 나서고 있지만 국가의 지원은 취약하다”고 했다.

방호복으로 갈아입은 엄민선(31), 박인희(27) 간호사가 이중으로 차폐된 격리병실로 들어가기 전에 서로 복장에 이상은 없는지 다시 점검했다. 엄 간호사는 “방호복을 입고 5분만 지나도 온몸이 땀으로 젖고 고글에는 김이 서려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다. 두꺼운 방호복을 입고 장갑도 끼고 있어서 모든 감각이 둔해진 채로 환자를 돌봐야 한다”고 했다.

40여명이 15개 병상 24시간 돌봐
“2시간씩 교대…피로감 극도로
중환자 연달아 오면 교대도 못해
방호복 간호사 감염 소식에 착잡”

보호장구 모자라 소독 재사용
“인력 투입부터 물품 조달까지
전부 병원에만 맡겨져
국가적 재난, 지원은 너무 취약”

4년 전 이전 때 격리병상 확충 관철
“만약의 사태 대비하는 게 공공의료
진주의료원 폐쇄처럼 정책 변화…
하지만 보라
지금 누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무엇보다 두려운 건 감염 공포다. 최근 건양대병원에서 심폐소생술을 하던 간호사가 방호복을 착용한 상태에서도 메르스에 감염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박 간호사는 “우리 역시 무섭고 두렵다. 하지만 환자들이 우리를 필요로 하는 이상 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지난달 26일 메르스 확진자 치료를 시작한 서울의료원에서는 확진자 14명이 격리치료를 받고 있다. 앞서 4명은 완치돼서, 2명은 주검이 돼서 이곳을 떠났다. 의사 4명과 간호사 39명이 하루 24시간 3교대로 격리병동 근무를 한다. 하지만 메르스 중환자가 연달아 들어오면 교대주기도 깨져 제대로 숨 돌릴 틈도 없이 다시 투입돼야 한다.

서울의료원에는 원래 국가지정 입원치료 격리병상이 5개 있었다. 메르스 감염자가 급증하자 자체적으로 며칠간의 밤샘작업 끝에 2인실 격리병상 10곳을 1인실 격리병상으로 전환해, 지난 9일부터 15개의 격리병상을 운영하고 있다. 격리병동을 책임지는 최재필 감염내과 과장은 “의료진은 물론 음압설비를 다루는 기술팀과 행정 직원 모두 밤을 새워가며 일하고 있다. 공공병원이 아니면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러나 최 과장은 “한계도 느껴진다”고 했다. 전국 국가지정 입원치료 격리병상 운영병원 17곳 가운데 13곳이 서울의료원 같은 공공병원이다. 서울의료원은 격리병동 투입 의료진 40여명 외에 메르스 의심환자 선별진료소에 20여명을 추가 투입했지만, 별도의 충원 없이 기존 업무에서 인력을 빼서 쓰는 상황이다. 한달여 가까운 사투 속에 의료진의 피로감은 극에 달해 있다고 한다. 김창보 서울시 보건기획관은 “중환자실에서 경력을 쌓은 정예 인력이 필요하다. 다른 공공병원에서 인력을 차출해야 하는데 대부분 여유가 없는 상황이다. 민간병원에서 인력을 차출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서울의료원이 2011년 이곳으로 이전할 때 최 과장은 질병관리본부 지침이 요구하는 음압시설 격리병상 5개 외에 ‘만약’을 대비해 20개의 격리병상을 추가로 만들자고 김민기 서울의료원 원장에게 요청했다. 돈은 많이 드는데 수익성은 따르지 않는 일이었다. 평상시 사용하지 않는 격리병상을 유지하는 것은 오히려 감사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그래도 서울의료원은 ‘만약’을 위해 2인실 음압병상 10개를 더 갖췄다. 그리고 4년 뒤 이곳은 메르스를 막는 ‘최전선’이 됐다.

최 과장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부담을 지는 것이 공공의료기관의 역할”이라고 했다. 김 원장은 “의료 정책 기조가 진주의료원 폐쇄에서 보듯 공공의료 투자를 줄이고 민간병원 중심으로 이동하려고 한다. 하지만 지금 누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라”고 했다.

허승 기자 rais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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