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후 서울 강남구 일원로 삼성서울병원 주차장 옥상에 마련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임시진료소에서 의료진이 대기하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의 가족 간 감염으로 추정되는 사례가 잇따라 보건당국이 자가격리 기간의 개인위생 수칙 교육과 관리를 더 철저하게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질병관리본부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대책본부)는 23일 “175번째 환자(74)가 아내인 118번째 환자(67)한테서 전염돼 가족 간 감염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정밀한 역학조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118번째 환자는 175번째 환자가 폐렴으로 5월23~29일 평택굿모닝병원에 입원했을 당시 남편을 간호하다 14번째 환자한테서 전염돼 10일 확진을 받고 13일 숨졌다. 175번째 환자는 9일까지 아내와 함께 자가격리됐으나 21일 발열이 있은 뒤 22일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 환자가 평택굿모닝병원에서 감염됐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 경우 잠복기가 25일이나 돼 최장 잠복기 14일을 훨씬 넘기 때문이다.
가족 간 감염 가능성은 앞서 몇몇 사례에서도 제기됐으나 대책본부는 이를 부인해왔다. 146번째 환자(55)는 ‘슈퍼전파자’ 76번째 환자(75·사망)의 아들로,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 5월25~27일 어머니를 간호했지만 13일부터 발열 증상이 나타나 14일 확진 판정을 받았다. 잠복기가 17일이나 지나 14번째 환자보다는 어머니인 76번째 환자한테서 감염됐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대책본부는 당시 가족 간 감염 가능성을 일축했다.
이런 사례는 또 있다. 171번째 환자(60·여)가 5월27~29일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입원했을 당시 간호하던 남편(123번째 환자·65)과 아들(124번째 환자·36)이 11일 확진 판정을 받았다. 171번째 환자는 당시 유전자 검사에서는 음성 판정을 받았으나 17일 발열 증상이 있은 뒤 21일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 환자도 삼성서울병원에서 14번째 환자한테서 옮았다면 잠복기가 19일이나 돼, 그보다는 가족 간 감염 가능성이 크다.
6번째 환자(71·사망)의 사위인 88번째 환자(47)도 장인과 함께 5월26일과 28일 서울아산병원과 여의도성모병원을 방문한 뒤 8일 확진 판정을 받아 가족 간 감염 첫 사례로 추정됐으나, 대책본부는 ‘병원 안 감염’으로만 분류했다.
가족 간 감염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전체 감염 경로의 10%에 이를 정도로 드물지 않은 현상이다. 그럼에도 대책본부가 가족 간 감염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 것은 메르스의 확산을 ‘병원 안 감염’에만 국한하려는 ‘정치적 고려’를 하는 탓으로 보인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나 사우디아라비아 보건국이 메르스 대응 지침에 ‘보호장비 없이 같은 치료 공간에 머문 의료진이나 가족’, ‘감염 환자와 동일한 장소에 머문 사람(거주·방문자)’ 등 가족 간 감염 위험성을 구체적으로 적시한 데 비해 질병관리본부는 지난해말 마련한 메르스 대응 지침에 이런 내용을 넣지 않았다가 최근 개정본에야 반영했다.
최재욱 고려대 의대 교수는 “자가격리 실시 전에 주거환경 요인이 격리에 적합한지 검토를 하고, 격리자에 대한 교육과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보건당국이 제대로 실행했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책본부는 23일 “가족 간 감염이 추정되는 사례가 일부 있다”며 “자가격리 수칙에 대한 교육이나 관리 부분을 좀더 철저히 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