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사태
“인권침해 우려…남용 막아야” 지적도
“인권침해 우려…남용 막아야” 지적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방역 과정에서 드러난 부실한 역학조사 체계를 개선하기 위해 감염자의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빠르게 번지는 감염병의 특성을 고려할 때 개인의 자유를 일부 제한할 수 있다는 공감대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인권침해 우려도 나온다.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감염병 환자의 인적 사항과 의료기록 등 개인정보를 보건당국이 요청할 수 있는 내용의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통과됐다.
법안에는 정부가 감염병 환자 등의 주민등록번호 등 인적 사항과 의료기록, 출입국관리기록, 휴대전화 위치기록 등의 정보를 요청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 담겼다. 신용카드·직불카드·시시티브이(CCTV) 등의 정보도 제공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으나 인권침해를 우려해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밖에 이동경로를 파악하기 위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정보’를 요청할 수 있도록 단서를 달아 다른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길을 열어뒀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위원이던 이은우 변호사(법무법인 지향)는 “감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개인정보를 확인할 수는 있지만 이를 남용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염성이 큰 감염병이 유행하는 상황에서 개인의 사생활을 얼마나 보장하고 제약할지는 의료계에서도 고민이 적지 않다. 국내에서는 이번 메르스 사태 와중에 ‘비상 상황’을 이유로 별다른 법적 근거도 없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기존엔 공개하지 않던 개인의 병원 방문 기록을 역학조사관에게 제공한 바 있다. 캐나다 보건당국은 “개인의 자유에 앞선 방역대책이 정당화될 순 있지만 이런 경우에도 덜 침해적이고 덜 강제적인 수단을 적극적으로 강구해야 하고, 사생활을 제약하는 수단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면 그 이유와 과정, 결과 등이 당사자에게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는 지침을 두고 있다.
앞서 이날 오전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의학회가 연 ‘메르스 사태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토론회에서 기모란 대한예방의학회 메르스위원장은 “역학조사 과정에서 환자와 보호자, 의료기관 등이 거짓 정보를 주거나 정보 제출을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며 “역학조사에서 다양한 개인정보를 활용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 위원장은 역학조사에서 허용돼야 할 개인정보의 내용으로 환자의 병력을 확인할 의료기관 이용 내역을 비롯해 동선을 파악할 시시티브이·내비게이션 정보, 휴대전화 위치추적, 신용카드 이용 내역 등을 꼽았다.
기 위원장은 또 “미국 역학조사관이 2천여명인 데 견줘 국내 역학조사관 인력은 너무 적다. 훈련된 전문 역학조사관을 100명(인구 50만명당 1명)은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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