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중앙거점의료기관인 국립중앙의료원의 격리실. 정용일 기자
외국 전염병 연구팀들은 한국의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의 최종적인 치사율(치명률)이 21%에 이르리라고 예측하는 등 중동 지역의 메르스 유행 추세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그러나 한국에서 발생한 메르스의 대규모 확산 사태를 두고는 “일어나리라 예상하기 어려운 일”이라거나 “극히 예외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한국 정부의 초기 방역 실패가 원인임을 에둘러 비판한 것으로 해석된다.
28일 유럽질병통제예방센터(ECDC)가 펴내는 의과학저널인 <유로서베일런스>에 실린 논문을 보면, 홍콩대 보건대학원 연구팀은 19일까지 발생한 166명의 한국 메르스 환자 자료를 토대로 최종적인 치사율이 21%에 이르리라고 예측했다. 평균 잠복기는 6.7일, 증상 위주 잠복기(첫 환자 증상에서부터 이 환자에게 노출된 환자의 발병까지를 재는 방법)는 12.6일로 계산됐다. 이는 중동과 유럽의 메르스나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유사해 한국의 메르스 전파 상황이 이들 선례와 다르지 않다고 연구팀은 해석했다. 중동지역의 치사율은 40%대에 이르는데, 이는 낙타 등에서 직접 전염되면(1차 전염) 더 치명적인 탓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1월 의학저널 <랜싯> 논문은 중동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감염된 사례(2차 감염)만을 대상으로 메르스의 치사율을 계산해보니 21%라고 보고한 바 있다. 정부와 대한감염학회는 애초 치사율이 10%를 넘지 않으리라고 예상했지만 28일 현재 치사율이 17.6%까지 높아졌다.
홍콩대 연구팀은 메르스의 전염 현상이 중동지역과 크게 다르지 않음에도 한국에서 환자의 89%가 평택성모·삼성서울·대청·건양대병원 등에서 형성된 3개 ‘병원 안 감염군’에 집중된 것은 “극히 예외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유로서베일런스>에 실린 영국·스위스 공동연구팀의 논문도 기존의 메르스 기초감염재생산수(1명의 환자가 전파하는 환자 수) 0.6~0.8을 토대로 집단 감염군의 크기를 예측해보니, 한국처럼 150명이 넘는 집단발생군은 “일어나리라 예측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평가했다. 익명을 요구한 전염병 전문가는 “이들 논문은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밀접접촉자의 범위를 좁게 설정한데다 방역관리를 허술하게 하는 등 초기 방역 실패가 대규모 발병군의 원인임을 지적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유로서베일런스>에는 경기도질병관리본부의 논문도 함께 실렸다. 연구팀은 평택성모병원에서 발생한 37명의 환자를 2·3차 감염군으로 나눠 분석해보니 2차의 잠복기가 3차보다 2일이 더 짧은 데 비해 발병 뒤 진단까지 걸린 시간은 더 긴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2·3차 감염군의 역학적 현상 차이 또한 초기 관리 실패에서 생긴 것으로 풀이된다.
오명돈 서울대 의대 감염내과 교수는 “전염병이 돌면 자료를 수시로 모아 분석해 바로바로 방역 전략에 반영해야 한다. 한국의 메르스 역학조사 결과가 우리 질병관리본부가 아니라 외국에서 먼저 나왔다는 사실은 성찰해볼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근영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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