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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의료·건강

인간이 호출한 바이러스…인류를 위협하다

등록 2015-07-07 22:31수정 2015-07-08 18:26

[메르스의 경고]
① 미지의 감염병 몰려온다

질병관리본부 직원들이 서울의 한 병원 응급실로 고열 환자를 이송하고 있는 모습.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질병관리본부 직원들이 서울의 한 병원 응급실로 고열 환자를 이송하고 있는 모습.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5월20일 이전엔 이름조차 모르던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33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지난 한달 반 남짓 한국사회는 메르스 공포로 휘청였다. 보건당국은 부적절한 초기 대응으로 혼란을 증폭시켰고, 한국을 대표한다는 삼성서울병원은 메르스 환자의 절반 가까이를 발생시키고도 속수무책이었다. 메르스는 한국 보건의료시스템의 민낯을 드러냈다. ‘돈’을 앞세운 의료 상업화에 따른 공공의료 시스템의 쇠락, ‘빅5’ 등 대형병원 쏠림 현상의 위험성 등이 대표적이다. 21세기는 ‘감염병의 세계화’ 시대다. 메르스는 ‘미약한 경고’에 불과하다. 미지의 감염병이 언제 한국을 다시 덮칠지 모른다. 그 전에 한국의 보건의료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개혁·보강해야 제2의 메르스에 대처할 수 있다. ‘신종·재흥 감염병’의 위험성에서부터 한국의 보건의료 시스템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 등까지 몇차례로 나눠 살펴본다.

열대우림에 봉인됐던 바이러스
삼림벌목 등으로 인간과 조우

온난화·인구증가·교통발달로
감염병 대유행 가능성 높여

백신 개발 ‘돈 안된다’며 포기
인간 이기심이 퇴치 방해 요인

인간들은 신종 감염병을 ‘바이러스의 습격’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열대 우림에 은신하다가 인간에 의해 호출된 바이러스한테는 꽤 억울할 법한 얘기다. 급증하는 신종 감염병의 위협은 사실 ‘인재’라고 보는 게 맞다.

‘삼림 벌목’은 신종·재흥 감염병의 주요한 원인으로 꼽힌다. 신종 감염병의 원인이 되는 바이러스는 원래 열대 지역 삼림에 서식하는 원숭이·쥐·박쥐 등을 자연숙주로 삼는다. 깊숙한 숲에 사실상 봉인된 터라 자연적으로는 인간 앞에 모습을 드러낼 일이 없었다. 인간과 바이러스의 조우를 촉발한 것은 열대 우림의 파괴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야생동물들은 먹을거리를 찾으려고 인간이 사는 마을까지 접근한다. 원주민들이 야생동물을 사냥하려고 점점 더 깊은 숲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야생 침팬지로부터 사람에게로 온 에이즈, 박쥐로부터 사람한테 옮은 에볼라가 대표적이다.

온난화 등 기후변화는 감염병의 발생과 분포에 영향을 주는 ‘생태학적 혼란’을 야기한다.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에서 발생하던 말라리아·뎅기열·콜레라·황열 등 곤충 매개 감염병이 점점 확산되고 있는 게 실례다. 예컨대 파키스탄 북서부 쪽 국경 부근에서 1983년 말라리아 감염자는 100명 미만이었다. 그러나 1990년에는 2만5000명을 넘어 250배 이상 증가했다. 비정상적으로 높아진 기온 탓에 말라리아의 활동기가 길어져서다.

인구증가도 감염병 대유행의 물적 토대를 제공한다. 라이프사이언스에서 펴낸 <미생물의 도전>에서는 교실 면적을 예로 들어 이를 설명한다. 학생 한 명이 감기에 걸렸다고 치자. 한 교실에 10명의 학생이 있을 때와 60명의 학생이 있을 때, 학생이 많은 곳에서 감기 발병률이 높아질 것이다. 인구밀도가 높은 곳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짧아 호흡기 분비물이 쉽게 옮겨다닐 수 있다. 인구밀도뿐만 아니라 가축의 밀도도 감염병 확산에 영향을 끼친다. 1967년 미국에는 약 100만 곳의 돼지농장이 있었다. 2000년대 중반 이후엔 농장이 10만 곳가량으로 줄었는데 사육하는 돼지 숫자는 되레 증가했다. 산업화된 대규모 농장에서 더 많은 돼지가 ‘밀집사육’된 결과다. 다른 가축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이처럼 일정 공간에 밀집된 가축의 수가 증가하면 새로운 병원균이 생존할 위험도 높아진다.

질병관리본부 직원들이 서울의 한 병원 응급실로 고열 환자를 이송하고 있는 모습.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질병관리본부 직원들이 서울의 한 병원 응급실로 고열 환자를 이송하고 있는 모습.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세계화와 교통수단의 발달은 바야흐로 ‘감염병의 세계화’ 시대를 열어 젖혔다. 신종 바이러스의 보고인 아프리카·중남미와 지구촌의 교류가 활발해지며 감염병의 대유행 가능성이 급격히 높아졌다. 사람만 비행기와 배를 타고 옮겨다니는 게 아니라, 사람을 따라 감염병과 감염 매개체들도 24시간 안에 세계 어디든 갈 수 있게 됐다. 하버드대 존 브라운스틴과 클라크 프라이펠트는 2006년 항공기 여행이 인플루엔자의 확산에 끼치는 영향을 입증한 적이 있다. 1996년~2005년 계절별 인플루엔자 자료를 분석한 뒤 항공기 여행 패턴과 비교해보니, 국외 여행자 수가 줄면 계절별 인플루엔자 극성기도 늦게 찾아왔다. 여행자수가 적으면 바이러스의 확산 시간이 더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이 연구팀은 2001년 9·11 테러가 인플루엔자에 끼친 영향도 분석했는데, 여행 금지 때문인지 인플루엔자 유행 시기가 늦춰졌다.

인간의 경제적 이기심도 신종 감염병 퇴치의 방해 요인이다. 신종 전염병은 주로 아프리카 등 낙후 지역에서 발생한다. 세계보건기구(WHO) 등 국제기구들은 아프리카의 의료·보건 시스템에 생각만큼 많은 투자를 하지 않는다. 연구단체인 ‘건강과 대안’의 최규진 연구위원(인하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은 “세계적으로 감염병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데도 2008년 금융위기 이후 WHO의 예산은 삭감됐다. 현재 WHO의 연간 지출 예산 20억달러는 미국 질병관리본부 예산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고 짚었다. 최 연구위원은 “에볼라와 같은 유행성 질병의 대유행에 대응하는 부서의 예산은 절반 가까이(2600억원가량) 삭감된 상태”라고 짚었다. 제약회사들도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충분히 상용화가 가능한 백신 개발을 미루기도 한다. <뉴욕타임스>는 “미국과 캐나다 연구진이 2004년 동물실험에서 100% 효과를 보이는 에볼라 백신을 개발했으나, 정부와 제약회사가 시장성이 없다며 외면했다”고 보도했다. 이 백신은 지난해 미국과 유럽에서 에볼라 환자가 발생하고 난 뒤에야 임상시험에 들어갔다.

바이러스 전문가인 네이선 울프는 <바이러스 폭풍>(김영사 펴냄)에서 신종 바이러스의 주요 발생지인 콩고민주공화국의 열악한 보건 환경을 지적하며 “세계가 하나로 연결된 마당에 (국제사회가) 이런 바이러스들을 감시하는 데 필요한 기반시설에 투자하지 않는다면 세계는 더 잦은 유행병에 시달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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