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안녕하세요? 장롱면허이기는 하지만 나름 의사 출신으로 <한겨레>에서 의료전문기자로 일하고 있는 김양중입니다. 우선 제 친한 선후배들 가운데에도 성형외과 전문의들이 많고, 성형외과 전문의는 아니지만 성형수술을 하고 있는 선후배도 꽤 있음을 미리 밝혀둡니다. 의료계에서는 다 알고 있지만 혹시 모르실까봐 말씀드리면, 외과나 이비인후과 등 다른 과 전문의들도 성형수술을 꽤 많이 하고 있습니다.
지난 5~7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유행으로 ‘친기자’에 연속해 등장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올해에는 더이상 나올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유령수술’ 때문에 다시 쓰게 되는 영광(?)을 안게 됐습니다. 유령수술은 성형수술을 받기 위해 상담을 받고 수술을 맡기로 한 의사 대신 다른 의사가 수술하기 때문에 보통 ‘대리수술’로 부르는데요. 인터넷이나 경험자의 말을 듣고 고심 끝에 의사를 선택해 수술을 받은 환자 입장에서는 매우 황당한 일이겠죠. 그런데 환자 입장에서는 마취가 된 상태에서 다른 의사가 수술실에 들어와 수술을 하기 때문에 알 수가 없습니다. 병원 내부에서 누군가 양심선언을 하지 않으면 외부로 알려지기 힘든데, 이번에 논란이 된 것도 성형외과 의사들이 밝히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일단 대한성형외과의사회가 지난 22일 연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내용을 보면, 대리수술 논란이 일고 있는 그랜드성형외과에서 지난 7년 동안 대리수술 피해자가 최대 20만명에 이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날 간담회에는 그랜드성형외과에서 2년 동안 근무했다는 내부고발자의 증언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랜드성형외과의 한 원장은 수술은 거의 하지 않고 온종일 진료만 보는 경우가 있었다. 얼굴윤곽 수술은 5시간 이상 걸리는데 하루 종일 진료만 하면서 어떻게 수술까지 할 수 있었겠느냐”며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그는 또 그랜드성형외과가 대형 파쇄기를 구입해 진료기록부 수년 치를 이미 파쇄했으며, 실제 수술자 이름 등 내부열람용 정보가 담긴 하드디스크 역시 파기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유령수술을 밝혀내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성형외과의사회는 그랜드성형외과에서 수술을 받은 환자는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며 의사회 누리집에 피해를 신고하면 구제 방법을 찾아보겠다고까지 발표했습니다. 이번 사건은 성형수술 전반에 대한 신뢰성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에 자정 차원에서 의사회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랜드성형외과 쪽에서는 전혀 근거가 없는 주장이라며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했는데요. 성형외과의사회가 직접 조사를 했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병원을 찾아오거나 연락한 적이 없어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또한 검찰에서 모든 것이 밝혀질 것이라며, 오히려 성형의과의사회가 왜 병원 한 곳을 문제 삼으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이 정도 되면 독자들 입장에서는 무엇이 진실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죠? 사실 저도 어렵습니다. 뭔가 문제가 있기는 한 것 같은데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으니까요. 사실 2013년 12월 그랜드성형외과에서 의료사고로 환자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자, 성형외과의사회가 대리수술 의혹을 제기했고 지금까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대리수술을 한 의사들이 사기, 상해 등과 같은 죄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랜드성형외과도 지난 3월 성형외과의사회를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결론이 어떻게 날지 두고 봐야겠지만, 확실한 것 하나는 이번 논란을 계기로 대리수술을 막는 등 환자 권리를 보호하는 조처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성형외과 수술사고 소식이 끊이지 않는데, 모든 수술에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음을 널리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응급사고에 대비하는 체계도 갖춰야 합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2013년 7월 기준 ‘성형외과의 응급의료장비 구비 현황’을 보면, 전국 1091개 성형외과 가운데 응급의료장비가 없는 곳이 839개(76.9%)에 이릅니다. 특히 의원급 성형외과의 경우 자동제세동기나 인공호흡기 등 응급의료장비를 구비한 곳은 한 군데도 없었습니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환자 안전을 위한 안전장치를 꼭 갖춰야 할 것입니다.
김양중 사회에디터석 사회정책팀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김양중 사회에디터석 사회정책팀 의료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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