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서울대병원 진료부원장(오른쪽)이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에서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아스팔트에 넘어지며 머리를 다친 뒤 숨진 고 백남기 농민의 사망 원인을 기존의 '병사'에서 '외인사'로 변경해 사망진단서를 수정했다고 밝힌 뒤 기자회견을 마치며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백남기 농민의 사망 원인은 지난해 9월 사망진단서가 나온 뒤 수많은 논란을 낳은 뒤 9개월 만에 바뀌게 됐다. 사망자의 사망진단서를 변경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인데다, 9개월이나 걸린 이유에 대해서도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번 사망진단서 수정은 백 농민의 사망진단서를 직접 작성한 신경외과 전공의가 서울대병원이 자체 운영 중인 의료윤리위원회의 수정권고를 받아들임에 따라 이뤄졌다. 하지만 사망진단서가 9개월 만에 수정되면서 정권이 바뀌자 서울대병원이 사망진단서 수정 결정을 내렸다는 논란이 나오고 있다. 서울대병원 쪽은 올해 1월 유가족이 병원을 상대로 위자료 청구 소송을 제기해 병원 차원의 논의가 시작될 수 있었으며 윤리위원회 회의 등의 절차를 지키는 과정에서 시간이 걸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연수 부원장은 “병원이 담당 교수의 사망진단서 작성에 개입할 수 있는 절차가 없었으나, 유가족이 병원에 소송을 제기해 개입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병원 쪽은 담당 진료과인 신경외과에 소명을 요구했고, 신경외과에서 ‘사망진단서는 대한의사협회 지침을 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해 지난 7일 의료윤리위원회를 열어 수정 권고 방침을 결정했다. 김 부원장은 “전공의는 피교육자 신분이지만 사망의 종류를 판단할 수 있는 지식과 경험이 있고, 법률적인 책임이 작성자에게 있으므로 사망진단서를 직접 작성한 전공의에게 수정을 권고했다”고 말했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 서울지역본부 서울대병원분회 조합원들이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에서 열린 고 백남기 농민 사망원인 수정 관련 기자회견장 밖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병원 쪽은 의사 개인의 판단이 전문가 집단의 판단과 다를 경우 이를 논의하는 기구인 ‘의사직업윤리위원회’를 이달 초 만들었고 위원 위촉 등 세부지침이 마련되는 대로 가동할 방침이다. 사망진단서 등 각종 진단서는 의사의 의학적인 판단과 양심에 따른 판단으로 작성하도록 돼 있기 때문에, 백선하 신경외과 교수처럼 다수의 의학적인 판단과 다르게 한 의사가 자신의 뜻을 변경하지 않을 경우 이를 제어할 제도가 없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이다. 고인의 사망진단서는 지난해 9월 유가족을 통해 외부에 알려지자마자 논란이 됐다. 사망 종류가 병사로 기록돼 있었지만, 대한의사협회 등이 만든 ‘진단서 등 작성·교부지침’을 보면 이는 명백한 오류였기 때문이다. 지침은 교통사고 등 사고로 손상 등을 입어 오랜 기간 입원치료를 받다가 사망해도 외인사로 쓰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서울대 의대 재학생들은 물론 졸업자들도 사망원인과 종류를 잘못 썼다는 의견을 냈고, 이에 서울대의대와 병원 쪽은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수정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고인의 주치의였던 백 교수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이런 논란을 핑계로 수사당국은 부검을 시도하다가 유족들과 시민들의 반대로 뜻을 접기도 했다. 지난해 10월에 열린 국회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를 받은 의사 출신인 성상철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나 손명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장도 외인사로 답했지만, 백 교수는 국정감사에서도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우석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는 “서울대병원이 잘못된 사망진단서를 수정하고도 이에 대한 사과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사망진단서에 병사라고 써서 부검 논란을 일으켰던 백선하 교수는 해임돼야 하고 서창석 병원장도 책임지고 사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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