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도 쓰레기, 안에서도 쓰레기. 다들 절 싫어해요”
이국종 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 센터장.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이번에도 이국종이다. 13일 오후 총격을 받으며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남으로 넘어온 북한군 1명을 수술한 의사는 아주대 중증외상센터 이국종 센터장이었다. 이젠 모두가 알다시피, 이국종 센터장은 ‘아덴만 여명 작전’ 당시 해적에 의해 온몸에 총상을 입은 석해균 선장을 살려낸 외상치료 전문가다. <한겨레>는 지난 9월 그와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에서 남긴 이국종 센터장의 핵심적인 말 다섯 가지를 정리해봤다.
1. “나는 쓰레기다”
그는 인터뷰어 이진순이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언급하자 고개를 저었다.
“굉장히 아름다운 생각이지만, 생명을 살리네 어쩌네 하는 생각을 하고 있으면 오히려 이 일을 하루도 못 하죠. ‘내가 이렇게 위대한 일을 하는데 세상이 나한테 왜 이러지?’ 그런 생각이 들 거 아녜요? 의사가 헬기 동승하는 거, 의료보험 수가 10원도 안 잡혀요. 저희는 성과급도 거의 없어요. 의료보험 적자 난다고 월급이 깎이기도 하고요. 전 그냥 일로 생각하고 하는 거예요. 선생님은 저를 잘 모르시는군요.”
-제가 뭘 모르는데요?
“제가 이 정도인 걸 모르시고, 너무 좋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저 이거밖에 안 되는 사람이에요. 밖에서도 쓰레기, 안에서도 쓰레기. 다들 절 싫어해요.”
-왜 싫어해요?
“시끄럽다고. 나만 없으면 ‘에브리바디 해피’한데 자꾸 시끄럽게 한다고요.”
2. 선진국에서 외상센터를 세우는 이유
중증외상환자들은 대부분 전화 한 통으로 의사를 불러낼 ‘빽’도 연줄도 없는 서민들이다. 2010년 당시
<한겨레21> 김기태 기자가 일주일간 이국종 팀과 동숙하며 조사한 결과, 중증외상환자 대다수는 음식점 배달부, 마트 판매원, 일용직, 생산직, 영세자영업자, 무직자 들과 같은 기층민이었다.
“선진국에서 외상센터를 세우는 건, 국가경제를 바닥에서 떠받치고 있는 근간이 이런 블루칼라들이기 때문이에요. 군인들 위해서 통합병원 만들고 경찰 위해서 경찰병원 짓는 것처럼, 사회기간산업요원으로서 그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다 다치면 잘 치료를 받게 해줘야 위험한 산업현장으로 들어가라 할 수 있을 거 아녜요.”
“그 사람들을 살리는 건, 국가의 생산성 측면에서도 중요한 일이죠. 외상은 40대 이하 젊은이 사망원인 1위입니다. 아까 들어온 오토바이 환자도 그렇잖아요. 에어백 여섯 개 달린 고급차 타고 다니면 그렇게 깨졌겠어요? 오토바이 택배일 하는 청년일 가능성이 높은데, 그런 젊은 친구가 죽지 않고 살아나면 평생 일을 할 것 아녜요? 세금도 꼬박꼬박 내고. 전에 택배 알바 하다가 오토바이 사고 나서 결국 다리를 끊어낸 친구가 있었는데, 장애가 있어도 큰 기업에 취직했다고 고맙다고 찾아왔더라고요. 젊은 친구들은 살려내기만 하면 어떻게든 다시 일하려는 의지와 체력이 있어서 생산성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고요.”
3. 권역별 외상센터는 기초가 없다
이국종법이 2012년 제정되고 전국 권역별 외상센터에 정부 지원을 한다는 방침이 정해졌지만, 여전히 환자가 거리에서 치료할 곳을 찾지 못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무슨 이유 때문일까?
“갈 길이 멀죠.(한숨) 정부에서 재정 지원한다니까 당장 자기네 지역에 외상센터 안 지어주면 수많은 환자가 피 흘리고 죽어갈 거라고 사업계획서 거창하게 만들어 올렸단 말이에요. 그런데 막상 외상센터 지정되고 지원금 받으면서부터는 환자가 없다고 배 째라 해요. 하루 한 명이 오든 100명이 오든 받는 지원금은 똑같으니.”
“제대로 하는 모범을 한두 개 만들고 점차 그걸 세포분열 하듯 늘려가야 되는데, 외상외과의 기초도 모르는 사람들로 외상센터를 구성하니까 배가 산으로 가버렸어요. 정부는 일을 왜 그런 식으로 하는지 모르겠어요. 와장창 뽑아서 쫙 갈라서 아쉬움 없이 뿌려줘야 뒷말이 없으니까 그런가 보죠.”
4. 이국종의 왼쪽 눈은 사실상 실명 상태다
이국종의 왼쪽 눈이 거의 실명이 된 건 2년 전 직원건강검진에서 발견했다. 오른쪽 눈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발병할 위험이 있다고 했다.
“망막혈관 폐쇄와 파열. 80대 당뇨병 환자가 걸리는 병이래요.(웃음) 수면 부족은 증상을 악화시킨다는데, 뭐 도리가 없어요. 어머니가 알고 슬퍼하셨어요. 아버지도 왼쪽 눈을 잃으셨는데, ‘그런 것까지 똑같이 닮냐?’고 하시면서….”
5.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료들이 있다
“그간 얻은 게 뭔지?”라는 질문에 그가 한 답이다.
“(잠시 침묵) 동료들이요. 바보처럼 순박하고 사심 없는 사람들. 집에도 못 가고 환자한테만 매달려온 정경원 선생, 캐나다 간호사 취업도 팽개친 김지영 선생, 지치지 않고 대안을 찾아보는 허윤정 전문위원, 위험한 일에 늘 앞장서는 소방헬기 파일럿들. 이성호, 이세형, 이인붕, 박정혁, 석회성 기장….”
▶인터뷰 전문 보기 : 이국종 교수 “기대도 희망도 없지만, 원칙 버리진 않겠다”
이진순 인터뷰 재구성·이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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