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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의료·건강

‘착한 적자’ 짐, 나라가 덜어주고 공공병원·인력, 과감히 늘려야

등록 2020-06-26 05:00수정 2020-06-28 22:58

[코로나 2차 유행 ‘경고음’, 최전선 공공의료 긴급진단]
③공공의료 강화 커지는 목소리

공공병상·의료인력 확충을
의사 4500명·간호사 2만6천명 더 필요
300병상 넘는 큰병원들 신·증축을
“국공립 의대·간호대 정원 늘리고
일정기간 공공병원 근무” 제안도
‘질병관리청’같은 사령탑 필요
“국립대병원과 공공병원 아우를
공공보건의료청 만들자” 목소리
서울 종로구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추가된 20일 오전 서울 중구 국립의료원 선별진료소 앞에서 코로나19 유증상 의심환자가 의료진들과 이동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서울 종로구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추가된 20일 오전 서울 중구 국립의료원 선별진료소 앞에서 코로나19 유증상 의심환자가 의료진들과 이동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77.7% 대 22.3%.

공공병원과 민간병원의 지난 3~4월 코로나19 진료 실적은 3배 이상 차이가 난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가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의 일일 입원 환자 데이터를 받아 병원 유형별로 분석해 얻은 결과다. 김 교수는 이 결과를 근거로 ‘찬밥 취급을 받던 공공병원이 위기 상황에서 진가를 발휘한 반면 민간병원은 코로나 환자에게 병상을 내주지 않았다’는 내용을 담은 칼럼을 지난 4월 <한겨레>에 실었다가, 대한의사협회 윤리위원회 징계심의 대상이 됐다. ‘민간 의료인들의 노력을 폄훼했다’는 이유였다.

자칫 공공병원과 민간병원의 대립 구도로 비춰질 수 있었던 이 논쟁의 배경에는 열악한 한국의 공공의료 현실이 자리잡고 있다. 공공의료 확충은 올해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체감도가 한층 높아진 정책 과제다. 방역당국에 따르면, 25일 현재 코로나19 확진자가 입원 가능한 대전의 중환자 치료병상은 0개다. 경기도 3개, 인천 8개 등 수도권도 31개뿐이다. 에크모(ECMO·체외막산소화장치)를 달아야 할 정도의 최중증 환자는 상급종합병원 중환자실, 인공호흡기가 필요한 중증 환자는 최소 300병상 이상의 종합병원에서 진료받는 것이 좋다. 김윤 교수가 3~4월 코로나 환자 3600여명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중환자실에서 치료받지 못한 중증 환자의 사망률은 약 65%로 중환자실에서 치료받은 환자보다 1.3배 이상 높았다. 확진자가 늘고 그에 따라 중환자 발생도 많아지면 공공병원에서 병상을 총동원해도 감당할 수 없는 상태가 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공공의료’라는 의제가 문재인 정부에서 점점 뒤로 밀려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케이(K)-방역’에 쏟아지는 화려한 조명에 견주면 더 그렇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취임 3주년 기념사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의료의 공공성 확보라는 중요한 가치를 충분히 지키겠다”고 말하면서도,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청와대와 보건복지부 내부 분위기를 잘 아는 관계자들은 “공공의료를 강화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 “문재인 정부가 공공의료를 배신했다”고까지 이야기한다. 임기 4년차에 접어든 문재인 정부가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실행할 수 있는 ‘공공의료 강화’의 해법은 무엇일까. 세가지 열쇳말로 전문가들의 의견을 정리했다.

①공공병원 확충 정부는 양질의 민간·공공병원이 없는 의료취약지 9곳에 우선적으로 공공병원을 신축하겠다고 2019년 밝힌 바 있다. 전국을 70개 ‘중진료권’으로 나눠 책임의료기관을 두겠다고도 했다. 각 시도가 설립한 지방의료원은 현재 전국에 35곳밖에 없다. 공공병원 수가 전체 병원의 5.7%(2018년 기준)에 그치다 보니, 공공병상이 차지하는 비중도 전체 병상의 10.2%에 불과하다.

우선 절대적인 규모부터 늘려야 한다. 참여정부 때는 ‘공공병상 30%’라는 목표치를 제시했으나, 문재인 정부는 공공병원 확충에 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참여정부가 끝날 무렵에 공공병원이 오히려 줄어드는 이상한 상황이 발생했는데, 이는 민간병원이 늘어났기 때문”이라며 “최소 공공병상 20%를 확보하려면 공공병원 신축뿐만 아니라 민간병원을 매입해 공공병원으로 리모델링하겠다는 식의 구체적인 규제 계획이 함께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어떤 규모의 공공병원을 짓느냐도 중요하다. 임승관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장은 “공공병원을 다 의원급으로 지어놓으면 (코로나 국면에서처럼) 중증 환자 진료는 민간 상급종합병원에 손 벌려야 하는 상황이 계속된다”며 “800~900병상이 있는 공공병원이 권역 안에 몇개는 있어야, 공공의료가 독립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의료취약지의 공공병원은 최소 300병상 규모 이상으로 신축 또는 증축되어야 한다고 본다. 공공병원 신축에 걸림돌이 되는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공공병원이 ‘애물단지’로 전락하지 않도록 ‘착한 적자’ 문제를 해결하고 의료의 질을 높일 필요도 있다. 이경수 영남대 의대 교수(대구시 감염병관리지원단 자문교수)는 “대구에 대구시의료원 같은 병원이 하나만 더 있었어도 혼란이 줄어들었을 것”이라며 “월급도 못 주는 경영 형편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위기 상황에 먼저 나섰던 공공병원들의 손실 보상을 정부나 지자체가 어떻게 해주는지가 병원들한테는 일종의 학습효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공병원 적자의 30%가량은 이른바 ‘돈이 안 되는’ 필수의료서비스 제공으로 인해 발생한다. 의료취약지 필수의료에는 건강보험 수가 가산점을 주거나, 지방의료원 경영을 독립채산제가 아닌 예산제로 전환하는 방안 등도 해결책으로 거론된다.

②공공보건의료인력 확대 코로나를 겪으면서 감염내과, 응급의학과, 중환자 진료 등 필수의료분야의 고질적인 인력 부족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정부는 공공의대 설립과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 중이지만, 대한의사협회 등의 거센 반발 탓에 진전이 더디다.

김윤 교수는 지역별로 불균형한 인구당 의사 수를 맞추고 소아청소년과, 감염내과 전문의와 중환자 전담의 등 필수의료 분야에서 일할 의사를 늘려야 하는 점 등을 고려하면 약 4500명의 의사가 더 필요하다고 추산한다. 간호사 역시 중환자실 간호인력과 감염관리 전문간호사 확충 등을 고려하면 2만6천여명이 늘어나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대부분이 간호사 1명당 환자 6~8명을 간호하는 데 견줘, 한국 간호사는 평균 15~20명을 감당하는 열악한 노동환경에 처해 있다.

전진한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은 “병원이 간호인력 ‘하한선’을 지키도록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며 “공공의료인력을 늘리려면 내년부터 당장 국공립대 의대와 간호대 정원의 30% 이상을 늘려서 지역 출신 국가장학생으로 선발하고 일정 기간 공공병원에 근무하도록 할 것”을 제안했다. 이른바 ‘지역의사’ ‘지역간호사’ 제도 도입이다. 김창보 서울시 공공보건의료재단 대표는 “지방소멸과 의료인 부족이라는 악순환을 끊어야 하는 지방정부의 입장에서는 지역의료인력 양성은 절박한 과제”라며 “그러나 국립대병원 정원을 늘리는 식으로 맡길 게 아니라 지방정부가 개입해 이들이 대학 졸업 뒤에 지방에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과 관리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③공공의료 컨트롤타워 구축 질병 예방 등 공중보건을 담당하는 주요 축이 질병관리본부와 각 시·군·구의 보건소라면, 공공의료체계에는 국립중앙의료원과 국립대병원, 지방의료원, 그 밖에 적십자병원과 같은 각종 공공병원들이 있다. 그런데 ‘케이-방역’의 상징이 되면서 강한 리더십이 생긴 질병관리본부와 달리, 공공병원들 사이에는 제대로 된 컨트롤타워가 없다. 국립중앙의료원이 있긴 하지만, 지방의료원에 대한 지도와 명령 권한은 없다. 국립대병원은 소관 부처가 보건복지부가 아니라 교육부다. 일부에서는 국립대병원을 아예 보건복지부 산하로 옮기자는 주장도 나온다.

최근 국립중앙의료원은 컨트롤타워로서 시험대에 서 있다. 국가지정 격리병상을 운영 중인 병원 의료진으로 ‘신종감염병 중앙임상위원회’를 구성하고, 전국적인 병상 부족 사태를 조정하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다. 2015년 메르스 사태 이후에 설치하기로 했으나 지지부진했던 ‘중앙 감염병 병원’ 구실도 하고 있다. 정형준 정책위원장은 “국립중앙의료원을 중심으로 보건복지부 산하 공공병원과 국립대병원을 아우를 수 있는 컨트롤타워로서 ‘공공보건의료청’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여기서는 신종 감염병과 관련한 의료진 교육, 숙련된 간호인력에 대한 관리, 재난 시 민간병원 동원 체계 마련까지 책임진다. 방역 컨트롤타워인 ‘질병관리청’이 있다면, 공공의료의 컨트롤타워로서 ‘공공보건의료청’이 자리하는 셈이다.

정부가 당장 ‘비상공공의료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온다. 변혜진 ‘건강과대안’ 상임연구위원은 “국립대병원을 포함한 대형병원 중환자실 일부를 코로나 진료에 사용할 수 있도록 강제하고 부산침례병원을 공공병원으로 매입하는 등 정부가 신속한 공공투자를 함으로써 강한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예랑 최하얀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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