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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의료·건강

반성 없는 ‘최대집 의협’…집단휴진으로 전례 없는 성과?

등록 2020-09-20 09:04수정 2020-09-20 15:45

[토요판] 뉴스분석
의사들도 점점 외면하는 의협

의료공백 부른 집단휴진 끝내고
최대집 ‘우리 소중한 성과’ 자평
코로나19 ‘중국 차단론’ 등 주장
메르스 때 늑장 방역 비판 안 해

2012년 직선제 개원의가 좌우해
노환규 이은 최대집 체제 정치화
의사 일부 지지로 당선돼 과대표
강경보수 노선에 내부 반발 나와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지난 8월21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의실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의협은 예고한 대로 집단휴진을 강행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지난 8월21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의실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의협은 예고한 대로 집단휴진을 강행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 대한의사협회 집단휴진 사태는 ‘합의문’으로 봉합됐지만, 의사집단에 대한 사회적 신뢰는 치명상을 입었다. 집단휴진이 코로나19 위기 속에 생명을 외면한 전례 없는 집단행동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최대집 의협 회장은 협상 결과를 ‘전례 없는 소중한 성과’로 평가했다. 의사 집단휴진을 취재해온 이재호 사회부 기자가 ‘최대집 집행부’를 분석했다.

“이번 협상은 전례 없는 우리의 소중한 성과다.”

한달 가까이 지속된 ‘의사 집단휴진’ 사태를 마무리하며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은 지난 9일 회원들에게 보낸 서신에서 자평했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현장 의료진의 일손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 ‘전례 없는’ 의료 공백 속에 진료가 지연되고 환자가 목숨을 잃는 사태까지 빚어졌지만 ‘사과’는 없었다.

의료계 집단행동은 정부와의 합의로 한달 만에 일단락됐으나 ‘전교 1등’ 의사 집단은 국민적 불신을 얻게 됐다. 투쟁의 전면에 강경하게 나선 것은 전공의 등 젊은 의사들이지만 애초 이 투쟁의 불을 댕긴 것은 의협이다. 전공의들과 달리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정부의 방역정책 등을 강도 높게 비판해온 의협한텐 이번 집단휴진도 ‘대정부 투쟁’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익단체를 넘어 정치집단화된 의협의 속사정을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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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집단’ 의미 퇴색한 의협

4·15 총선이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난 뒤 최 회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의협이 반대했던 정책을 힘의 논리로 강행한다면 반드시 ‘전국의사총파업’으로 맞서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정부 여당이 추진할 것으로 예상되는 공공의료 강화 정책을 선제적으로 견제하고 나선 것이다. 같은 날 쓴 다른 글에서 최 회장은 “우익사회운동을 오랫동안 해온 사람으로서 이번 총선 참패의 핵심 원인은 ‘사상의 부재’라고 판단한다. 대한민국을 공정과 정의의 나라로 세우고 북한을 자유민주주의로 통일하겠다는 뜨거운 애국심과 강력한 우익 정당 운동에 대한 강력한 의지와 행동이 있어야 집권할 수 있을 것”이라며 우익 보수의 총선 패배 원인을 지적하기도 했다.

최 회장의 이런 언사에 대해 의협 내부에서도 불만을 드러내는 구성원이 많았다. 현실적으로 보면 거대 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과의 공조가 중요한데 총선이 끝나자마자 집단행동을 예고하고 나선 것은 의협 전체의 이익에 대한 고민 없이 최 회장의 개인적 정치 성향만 드러낸 것이라는 비판이었다.

코로나19 유행 시기에 공공의대 설립과 의대 정원 확대라는 숙원사업에 나선 정부를 의협은 ‘정치적’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감염병 상황을 정치에 이용한 것은 의협도 마찬가지다.

지난 1월 하순 국내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처음 발생한 뒤 최 회장과 의협 집행부는 과학적으로 근거가 부족한 ‘중국발 입국 차단’을 강하게 주장했다. 당시 일부 보수언론과 의협이 ‘중국으로부터 입국을 차단해 방역에 성공했다’고 추켜세웠던 러시아와 미국은 현재 확진자가 각각 100만명, 650만명을 넘겨 세계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유행한 나라가 됐다. 차별적일 뿐 아니라 실증적으로도 근거가 없는 중국 차단론을 3월까지 일곱차례에 걸쳐 주장했던 최 회장은 3월3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범학계 코로나19 대책위’를 ‘방역 비선’으로 지목하기까지 했다.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발생 당시 각 학계가 의견을 모으는 데 시간이 걸렸던 문제를 개선하려 뭉쳤던 범학계 대책위는 이 보도 뒤 즉각 해체됐다.

최 회장의 이런 지목은 사실상 ‘내부 저격’에 가까웠다. 대책위에 포함된 대한감염학회, 대한예방의학회 등 11개 학술단체 대부분은 의협 산하 조직인 ‘대한의학회’ 소속이다. 그럼에도 그가 범학계 대책위를 비난한 것은 예방의학회를 포함한 범학계 대책위가 ‘중국 차단론’에 대해 ‘가능하지도 않고 효과도 없을 것’이라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의협 대표인 자신과 다른 목소리를 낸다는 이유로 협회 소속 회원과 산하 학술단체를 저격한 것이다.

지난 3월3일 당시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오른쪽)가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우한 코로나19’ 대책 특별위원회 회의에서 최대집 의협 회장과 인사하고 있다연합뉴스
지난 3월3일 당시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오른쪽)가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우한 코로나19’ 대책 특별위원회 회의에서 최대집 의협 회장과 인사하고 있다연합뉴스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이 지난 8월23일 국회에서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이 지난 8월23일 국회에서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동료 의사들에게선 원성이 나왔을지 몰라도, 정치권에선 최 회장을 환영했다. 범학계 대책위 해체 소식이 전해진 뒤 최 회장은 황교안 당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대표를 만났다. 일주일 뒤 공개된 미래통합당 비례대표 공천 신청자 명단에는 방상혁 의협 상근부회장의 이름이 올랐다. 의협 내부에서도 방 부회장의 출마에 대해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비판이 나왔다. 최 회장은 “문 정부의 방역 실패에 대한 책임 추궁과 각종 입법 활동을 위해 출마를 명했다”고 밝혔다. 방 부회장은 처음 발표된 비례대표 후보 명단에서 20번을 받고, 두번째 명단에선 당선권 밖인 22번을 받자 후보에서 자진 사퇴했지만 의협의 정치가 집행부의 정치적 이익만을 향한 게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내부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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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의총’의 등장…가속 붙은 정치화

의협의 정치화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00년 ‘의약분업’ 이후 의협은 본격적인 ‘정치’를 시작했다. 의약분업 당시 8개월 가까이 이어졌던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정부는 ‘의대 정원 축소’ 등의 당근을 주고 일단락 지었지만 그 뒤로도 의사들은 수시로 집단행동을 감행하며 목소리를 냈다.

2012년엔 의협 회장을 직선제로 선출하면서 의협 내부의 정치도 강화됐다. 개원의들의 입김이 강한 현재의 모습과 달리 과거 의협은 대학교수를 비롯한 전문가들이 주도하는 분위기였다. 2009년 노환규 전 의협 회장이 설립한 전국의사총연합(전의총)은 의협의 형질을 바꿔놓았다. 의협이 개원의들의 이익을 대변하지 못한다는 불만에 힘입어 세워진 전의총은 회원 대부분이 개원의로 이뤄졌으며, 의협 내 최대 규모의 집단이다. 누리집에 공개된 내용을 보면 6800명이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최대집 회장은 전의총 회장(2016∼2018년)을 지낸 뒤 의협 회장이 됐고, 전의총과 노 전 회장은 막후에서 여전히 ‘최대집 집행부’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4일 최 회장과 정부의 막후 합의 관련 내용을 노 전 회장이 사전에 보고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의사 13만명 중 6800명으로 얼마나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싶겠지만 최 회장이 의협 회장으로 당선될 때 얻은 표는 6392표(득표율 29.7%)에 지나지 않는다. 2018년 의협 회장 선거엔 선거권자(회비 납부자) 4만4012명 중 2만1547명(49%)만이 투표했다. 전의총과 같은 단체가 후방 지원해 전체 의사 가운데 단 5%의 표만 얻으면 ‘회장’이 될 수 있는 구조다. 의협이 ‘강경 보수화’의 길을 간다고 해서 의사집단 전체가 ‘강경 우파’는 아닌 셈이다.

이런 선거제도의 문제가 지적되자 의협은 지난해 4월 대의원총회에서 ‘결선투표제’ 도입을 의결했다. 2021년 4월 열리는 다음 회장 선거부터는 대표성을 좀더 강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최 회장의 임기가 아직 6개월여 남았지만 벌써부터 선거 열기가 뜨겁다. ‘이번에는 합종연횡을 해서라도 전의총이 의협을 독점하지 못하게 막자’는 이야기도 공공연하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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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고발 등 정치행위 몰두

최 회장의 강경노선은 의협 회장직을 맡기 전부터 잘 알려져 있다. 2004년 우파단체인 ‘자유개척청년단’을 세웠던 그는 2015년엔 ‘의료혁신투쟁위원회’(의혁투)를 설립해 박근혜 정부와 각을 세우는 박원순 전 시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박 전 시장이 메르스 35번째 환자인 삼성서울병원 의사의 동선을 공개했다는 이유였다. 최 회장은 “증상이 경미해 자택 격리가 이뤄지지 않았고, 박 시장이 환자의 동선을 공개해 국민적 불안을 초래했다”고 비판했다. 코로나19 국면에서 중국발 입국 차단과 철저한 방역을 주장한 최 회장이 당시 박근혜 정부의 늑장 방역은 비판하지 않았던 건 아이러니다.

메르스 이후 2016년까지 최 회장은 의혁투와 함께 박 전 시장의 아들이 공익근무 판정을 받는 과정에서 병무청에 제출한 의료기록을 조작했다는 의혹을 줄기차게 제기했다. 그는 의협 회장이 된 뒤에도 이런 ‘길거리 정치’를 이어왔다. 의협 회장이 된 직후인 2018년 5월에는 ‘문재인 케어 저지 및 중환자 생명권 보호를 위한 총궐기대회’를 열었는데, 이 자리엔 의사뿐 아니라 “문재인 정부 퇴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무효”를 주장하는 ‘태극기 집회’ 세력이 함께 참가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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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협회를 정상화하라

지난 8월1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에서 열린 전국의사총파업 궐기대회에서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대회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8월1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에서 열린 전국의사총파업 궐기대회에서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대회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 건강을 책임져야 할 의사 집단이 정치적 이익에만 몰두하면서 생기는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온다. 지난해까지 의협 부회장을 지냈던 이동욱 경기도의사회장은 지난달 17일 오전 사랑제일교회의 기자회견에서 “전광훈 목사나 사랑제일교회 신자들은 자가격리자 분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회장의 발언 뒤 반나절이 지나지 않아 전 목사를 비롯한 신자들이 무더기로 확진 판정을 받자 의협 내부에서조차 이 회장의 정치적 욕심 때문에 전문가 단체의 위상까지 떨어뜨렸다는 불만이 나왔다.

전문가 집단이 사적 이익을 추구할 때 사회에 끼치는 해악은 심각하다. 전문가의 권위가 그들 발언에 힘을 실어주기 때문이다. 일부 극우세력은 여전히 의사인 이 회장의 발언을 정부 비판의 근거로 인용하면서 정부의 코로나19 방역지침을 무시하고 있다. 이처럼 정치적 이익에만 몰두하는 의사단체는 다른 나라에선 찾아보기 힘들다고 관계자들은 지적했다.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공의료위원장은 “내부 윤리도 무너졌고, 전문가주의도 훼손된 의협 같은 의사단체는 선진국에선 찾아볼 수 없다. 미국과 일본에서도 의협이 이익집단화됐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두 국가에선 의사들끼리 동료평가를 혹독하게 해 함량 미달 의사를 걸러내고 최소한 ‘전문가주의’는 유지한다”고 말했다.

특정 정치 성향에 치우친 회장과 집행부의 무능에 지친 의협 회원(의사)들은 점점 협회에서 멀어지고 있다. 최대집 회장 집행부가 ‘총파업’을 외쳤지만 두차례에 걸친 집단행동 모두 개원의의 휴진율이 10%에도 미치지 못한 현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지난해 연회비 납부율은 의사면허 등록자 수 기준 47.2%로 절반이 채 안 됐다. 시·도 의사회 등록자 수를 기준으로 하면 63.8%로 2018년(64.8%) 대비 1%포인트 줄었다. 2016년 65.2% 납부율을 기록한 뒤 납부율은 계속 하락세다.

그들만의 정치에 몰두하는 의협을 회원들도 외면하는 사이 의사집단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바닥나고 있다.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에 2014년 게재된 ‘의사에 대한 대중의 신뢰’ 논문을 보면 한국인의 의사집단에 대한 신뢰 점수는 조사 대상인 29개국 중 20위로 하위권을 차지했다. 의사로부터 받은 진료에 대한 만족도는 24위로 더 낮은 수준이었다.

의협의 법정단체 지위를 박탈하고 발전적으로 해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는 “의사협회를 법정단체로 지정해 모든 의사들이 가입하도록 하는 체계는 외국에서 찾기 힘든 독특한 시스템”이라며 “필수가입 시스템을 해체하고 의료계 내 다양한 생각을 가진 의사들이 단체를 자유롭게 구성하도록 하면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한 합리적인 움직임이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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