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환자 30%이상 느는데 의료진 줄고 그나마 신참급
정지훈(27·회사원)씨에게 지난해 추석 연휴는 ‘악몽’이었다. 고향 대구에서 서울로 돌아오던 경기도 이천 국도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팔이 부러진 정씨는 근처 중소 병원으로 옮겨져 “당장 수술받아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연휴라 마취과 의사가 근무하지 않는 바람에 급히 다른 병원에 문의해야 했다. 하지만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결국 정씨는 이틀 뒤에야 겨우 수술을 받았다. 정씨는 넉 달이나 지난 26일에도 여전히 팔이 완치되지 않아 병원에 입원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벌써부터 이번 설날 연휴를 앞두고 연휴 중에 사고나 병이 날까 공포에 떨고 있다. 많은 이들이 적어도 한 번씩은 명절이나 휴일에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가 낭패를 본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숨진 이아무개(59)씨도 휴일에 병이 악화해 목숨까지 잃은 경우다. 이씨는 급성 심근경색으로 경기도의 한 종합병원에서 수술받고 입원해 있었다. 마침 일요일인 10월2일 호흡곤란이 일어났다. 병원 쪽에 조처를 요구했지만 제대로 대응이 이뤄지지 않아 2~3시간 만에 뇌사상태에 빠지고, 결국 10월19일 숨졌다. 이씨의 아들(29)은 “심한 호흡곤란을 호소했지만 휴일이라서 주치의가 ‘병원까지 오는 데 시간이 걸린다’며 뇌사상태에 빠진 뒤에도 나타나지 않았다”며 “평소 주치의가 예상했던 후유증이 나타나 뇌경색으로 숨졌는데 레지던트들은 심장 이상으로 판단하고 우왕좌왕하다 급박한 시간을 허비했다”고 울분을 토했다. 명절 연휴나 휴일에는 동네의 작은 병원들이 거의 문을 닫는다. 이 때문에 환자들이 종합병원으로 몰려, 종합병원 응급실은 환자가 평일보다 평균 30% 이상 는다. 지역에 따라서는 50%까지 는다고 한다. 하지만 명절 축소 근무로 의료진은 오히려 평소보다 적다. 2004년 응급의료센터에서 숨진 이 가운데 최단시간 안에 최적의 치료를 받았다면 살 수 있는 확률인 ‘예방가능 사망률’은 39.6%로 전년의 50.4%에서 크게 낮아졌다. 하지만 평균 20%대인 선진국 수준에는 크게 못미친다. 전문가들은 적은 응급인력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벌인 응급의료기관 평가에서도 응급의료센터의 인력 쪽이 가장 미흡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국 권역응급의료센터 16곳 가운데 ‘24시간 전문의가 근무하는 진료체계’를 갖춘 곳은 7곳에 그쳤다. 유인술 충남대 응급의학과 교수는 “응급실의 장비와 시설은 선진국에 처지지 않는데 의료 인력이 부족해 사고 위험이 높다”고 말했다. 당직 의료기관에서 근무하기로 돼 있는 전문의나 의사들 대신 임상 경험이 짧은 ‘신참급’ 의료진들이 응급실을 책임지는 것도 병을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응급환자가 생겨도 레지던트가 쉬고 있는 교수를 불러내기는 쉽지 않다”며, “결국 혼자 판단을 하다가 위험한 순간에 적절히 대응을 하지 못할 때도 있다”고 털어놨다. 다른 대학병원 응급실 레지던트도 “사람이 곧 죽을 지경이거나 수술이 시급할 때만 교수들에게 연락한다”고 말했다. 김아무개(45·회사원)씨는 “명절 때마다 애들이 탈이 나 종합병원 응급실에 갔다가 고생한 경험이 생생하다”며 “병원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명절이 되기 며칠 전부터 아이들에게 탈이 나지 않도록 주의시키는 게 일”이라고 말했다.박주희 기자 hope@hani.co.kr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