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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의료·건강

삼성가 기부 5천억 ‘감염병 전문병원’으로…‘정부 애초 예산 줄까’ 우려도

등록 2021-04-28 14:58수정 2021-04-28 20:19

고 이건희 회장 유족, 중앙감염병병원 건립에 기부
‘싱가포르 탄톡생병원’ 모델 제시…음압병상 150개 확충
중앙 예산 감축 우려도…“개인 공헌이 국가책임 대신 못해”

2020년 12월 26일 밤, 국립중앙의료원 음압격리병동에서 의료진들이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박승화 기자 <a href="mailto:eyeshoot@hani.co.kr">eyeshoot@hani.co.kr</a>&nbsp;
2020년 12월 26일 밤, 국립중앙의료원 음압격리병동에서 의료진들이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유족들이 상속받은 재산 가운데 감염병 극복을 위해 기부하기로 한 7천억원은 중앙감염병병원 설립 등 감염병 대응 인프라 구축에 사용될 예정이다. 정부는 이미 예정된 중앙감염병병원 건립 예산은 유지하되, 기부금으로는 중앙감염병병원의 인프라 수준을 높여 싱가포르의 ‘탄톡생병원’과 같은 세계적인 감염병병원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은 28일 “고 이건희 회장 유족이 중앙감염병병원으로 지정된 국립중앙의료원에 7천억원 규모의 기부금을 전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번 기부금은 보건복지부, 질병관리청, 국립중앙의료원이 상호 협력해 추진하는 중앙감염병병원 건립과 감염병 연구 인프라 확충에 사용될 예정으로, 기부금이 세계 최고 수준의 감염병 위기 대응 역량 구축이라는 목적에 맞게 사용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고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삼성 쪽에서는 의료분야 사회공헌으로 1조원을 기부하면서, 감염병 극복에 7천억원, 소아암·희귀질환 환아에 3천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특히 감염병 극복 관련 7천억원 가운데 5천억원은 중앙감염병병원 건립에 기부하기로 했다. 삼성 쪽은 “중앙감염병병원은 일반·중환자·고도 음압병상과 음압수술실, 생물안전 검사실 등 첨단 설비까지 갖춘 음압병상 150개 규모의 세계적인 수준의 병원으로 건립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나머지 2천억원은 질병관리청 산하 감염병연구소에서 최첨단 연구소 건축과 감염병 백신·치료제 개발 연구 지원 등 감염병 대응을 위한 인프라 확충에 사용될 예정이다.

 층고 최대 2배로 높이고, 세계 최고 수준의 전문장비 확충 

앞서 국립중앙의료원은 서울 중구 미군 공병단 부지로 의료원을 신축·이전하면서 음압병상 100개, 전체 800병상 규모의 중앙감염병병원을 신설한다는 계획을 세워둔 상태였다. 중앙감염병병원은 중증 감염병 환자의 입원 치료와 함께 전국의 권역 감염병전문병원 등을 총괄하는 국가 감염병 대응의 ‘컨트롤타워’다. 현재 국립중앙의료원은 국가 지정 중앙감염병병원이지만, 원내 병상이 부족해 공병단 부지 건물 세 동을 리모델링해서 지난 1월부터 107병상 규모의 코로나19 긴급치료병동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국립중앙의료원과 미군 공병단 부지의 항공 촬영 사진. 보건복지부·국방부 제공
현재 국립중앙의료원과 미군 공병단 부지의 항공 촬영 사진. 보건복지부·국방부 제공

정부는 삼성가의 기부금으로 싱가포르 탄톡생병원 등 세계적인 수준의 감염병병원을 모델 삼아 중앙감염병병원을 만들겠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싱가포르 탄톡생병원 같은 세계적인 감염병 전문병원 등을 참고해서, 예를 들어 기존 계획이 10층 건물이었다면 이를 15~20층으로 높이고, 장비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도입하는 식으로 (기부금을)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싱가포르 탄톡생병원은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유행 당시 효율적인 대처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병원으로, 330병상 규모의 국립감염병전문센터(NCID)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탄톡생병원은 항공관제시스템을 응용해서 환자·의료진·자원의 흐름을 파악하는 중앙관제센터를 구축해 코로나19에도 효과적으로 대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립중앙의료원은 2003년부터 신축·이전 사업을 추진해왔다. 애초 서울 서초구 원지동 서울추모공원 부지로 이전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주민들의 반대와 경부고속도로 소음 문제로 2019년 서울추모공원 이전안이 무산됐다. 그러다가 지난해 4월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과 정기현 국립중앙의료원장이 2018년 미군 기지 이전 이후 비어 있던 서울 중구 방산동 미국 극동 공병단 부지(4만2096㎡)로 국립중앙의료원을 이전할 것을 제안하면서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이에 올해 1월 보건복지부와 국방부가 국립중앙의료원을 공병단 부지로 신축·이전하는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이전할 부지가 확정됐다.

 2026년 미 공병단 빈터에 완공…삼성 기부로 중앙 예산 축소 없어야

현재까지 신축·이전 비용은 서울 중구 을지로에 있는 국립중앙의료원 매각 비용 등을 사용할 예정이었다. 서울추모공원 이전안에선 국립중앙의료원 이전과 중앙감염병병원 신설 등에 모두 6003억원의 예산이 들어갈 것으로 계획을 세웠으나, 공병단 부지 이전 때 어느 정도의 예산이 들어갈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올해는 설계비 등으로 80억원 예산이 책정되어 있으나 서울추모공원 이전안 등을 참고해 해마다 늘려갈 것”이라며 “공병단 부지의 환경오염 정화 작업과 문화재 조사 작업을 진행하는 동안 설계 작업을 진행해서, 2023년께 착공해 2026년께 완공하는 일정을 예상한다”고 말했다.

의료계에선 기존에 국립중앙의료원 이전과 중앙감염병병원 신설에 사용하려 했던 정부 예산이 기획재정부 등 정부 내 논의 과정에서 축소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기현 국립중앙의료원장은 이날 <한겨레>와 통화에서 “개인의 사회 공헌이 국가 책임을 대신할 수는 없다”며 “투명성과 책임성을 확보할 수 있는 구조에서 의미 있게 잘 쓰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는 “건축비 등은 정부가 재정으로 부담해야 하고, 기부금은 정부 예산과는 독립적으로 정부 투자 역량을 넘어서는 교육·연구 사업 등에 사용해야 한다”며 “삼성 쪽의 기부를 이유로 중앙감염병병원과 공공의료에 투입될 예산이 줄어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태호 보건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은 “기존에 추진하던 국립중앙의료원 이전과 중앙감염병병원 신설에 대한 정부 예산은 유지하고, 여기에 기부금이 추가로 더해지면 시설 규모와 질적인 면을 획기적으로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년 3개월째 이어지는 초유의 코로나19 유행으로 백신 개발 등에서 역할이 커진 중앙감염병병원의 수준을 이번 기회에 과감하게 끌어올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백신 개발과 연구 등에 집중할 연구 인력 등에 이번 기부금을 활용하자는 얘기다.

김지훈 서혜미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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