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가 지난해 12월 11일 중대재해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본청 앞에서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내년부터 산업재해 관련 기업의 책임을 강화하는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의 시행령 제정을 둘러싸고, ‘과로’로 인한 뇌졸중·심장질환 등 직업병 환자 발생을 중대재해에 포함할지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과로로 인한 뇌졸중 등이 다수 발생한다 해도 사망자가 없는 경우엔 해당 기업을 법 적용에서 제외하는 시행령을 추진하고 나섰다. 이에 노동계에선 입법 취지를 훼손하는 조처라고 반발하고 있다.
4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는 이런 내용의 중대재해법 시행령 초안을 만들어 노동계와 경영계 등에 의견수렴을 진행 중이다. 중대재해법은 경영책임자에게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안전보건 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 1월 국회를 통과해 내년 1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노동계가 지적하는 대목은 직업병 관련 규정이다. 중대재해법은 ‘동일한 유해 요인으로 급성중독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 발생’한 사례를 ‘중대재해’의 하나로 정의한다. 쟁점은 이 항목에서 직업병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할 것이냐다. 시행령 초안에서 이 규정에 해당하는 직업병은 급성중독과 그에 준하는 20여 가지 질병으로 정의됐다. 그런데 흔히 과로로 인해 발생하는 뇌심혈관계질환이 초안의 정의에선 빠졌다. 또 근골격계 질환과 직업성 암, 진폐증, 난청 등도 여기에서 빠진 것으로 전해졌다.
노동계는 “시행령의 직업병 범위가 제한적”이라고 비판한다. 과로로 인한 뇌졸중 등 중증 직업병 환자가 여럿 발생했으나 사망자가 나오지는 않은 경우에 법 적용을 못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중대재해법은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하면 중대재해로 본다는 대목이 있어서, 과로로 인한 뇌졸중 사망자가 나오면 중대재해 여부를 다퉈볼 여지가 있다. 하지만 정부가 내놓은 시행령 초안을 그대로 적용할 경우, 과로로 인한 뇌졸중 질환자가 한 사업장에서 3명 이상 발생한다 해도, 중대재해법 적용이 어려워진다는 얘기다. 이는 뇌심혈관계질환뿐 아니라 난청, 진폐증, 직업성 암 등에도 마찬가지 상황이 벌어진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급성중독 위주로 한정한 정부의 시행령 초안은 범위가 지나치게 좁게 설정된 것으로, 적용 사업장 사례가 별로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앞서 중대재해법 시행령에서 직업병 인정 범위를 넓히는 것을 두고 경영계는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며 반대해왔다. 법조계 일각에서도 과로로 인한 질병 등으로 범위를 넓히면 기업이 산재를 은폐할 유인이 커지는 데다 실제 적용도 쉽지 않을 것이란 반대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시행령 초안에는 이런 의견들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이번 시행령 초안 검토에 대해 “현재 노사의견을 수렴하고 관계부처 협의 절차를 거치고 있다. 확정된 시행령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박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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