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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법치주의자 윤석열의 빗나간 ‘주 52시간제’ 공격 [더(The)친절한 기자들]

등록 2021-07-20 20:39수정 2022-08-19 10:23

[더(The)친절한 기자들] ‘120시간 일하자’ 발언 논란 따져보니
대선 출마를 선언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0일 오후 대구 중구 서문시장 상인회 사무실에서 지역 기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선 출마를 선언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0일 오후 대구 중구 서문시장 상인회 사무실에서 지역 기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가 노동 시간을 줄이기 위해 도입한 주 52시간제를 비판하면서 “1주일에 52시간이 아니라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고 발언했습니다. 누리꾼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커뮤니티 등에서 “이 나라에서 과로사로 숨지는 노동자가 1년에 몇명인지 알고 말하는 건가”, “주 120시간이면 5일 동안 24시간씩 근무해야 한다”, “저런 사람이 대권 주자라니”와 같은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한 누리꾼은 ‘윤석열이 주장한 주 120시간 근무해결책’이라며 ‘△‘5일근무형’ - 월화수목금 24시간 노동+토일 기절 △‘6일근무형’ - 월화수목금토 20시간 노동+일 잠 △‘주간근무형’ - 월화수목금토 17시간 노동+일 18시간 노동’이라는 계산법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윤 전 총장은 “마치 제가 120시간씩 일하라고 했다는 식으로 왜곡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일고의 가치도 없는 얘기”라고 반박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우선 윤 전 총장의 지난 19일 <매일경제> 인터뷰 전문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윤 전 총장은 이날 인터뷰에서 작은 정부론을 주장한 밀턴 프리드먼의 자유주의 경제학에 대해 언급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기업 관련 정책을 비판했습니다. 그러다가 ‘주 52시간제에 대해 기업들의 불만이 적지 않은데’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합니다.

“현 정부는 주 52시간제로 일자리가 생긴다고 주장했지만 일자리 증가율이 (작년 중소기업 기준) 0.1%에 불과하다는 통계도 있다. 실패한 정책이다. 스타트업 청년들을 만났더니, 주 52시간 제도 시행에 예외조항을 둬서 근로자가 조건을 합의하거나 선택할 수 있게 해달라고 토로하더라. 게임 하나 개발하려면 한 주에 52시간이 아니라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본인이 대선 운동 과정에서 만난 스타트업 청년들이 말한 것을 전한 것인데요. 윤 전 총장은 이를 두고 20일 공개한 해명을 통해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검사로 일하면서 근로기준법 위반에 대하여는 무관용원칙으로 엄단하여 근로자를 보호하려 힘썼습니다. 당연하게도, 제가 부당노동행위를 허용하자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제가 만난 스타트업 현장의 청년들은 “평균적으로 주 52시간을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게임개발 등 단기간의 집중 근로가 필요한 경우 주 52시간을 획일적으로 적용할 것이 아니라 집중적으로 일하고 그만큼 길게 쉬는 것도 허용해야 한다”, “현행 탄력근로제만으로는 부족하므로 업종의 특수성도 고려하고 노사정 합의에 따라 근로조건의 예외를 보다 폭넓게 인정해 달라”는 애로사항을 토로하였고, 저는 현장의 목소리와 문제의식에 공감하여 그대로 전달한 것입니다. 주 120시간을 근무하는 것은 누가 봐도 불가능한 이야기로서 제게 그 말을 전달한 분들도 ‘주 52시간제를 획일적으로 적용하는데 따른 현장의 어려움’을 강조한 것이지 실제로 120시간씩 과로하자는 취지가 전혀 아니었습니다.”

현행 주 52시간제의 예외를 더 폭넓게 인정하자는 취지였지 실제로 주 120시간 동안 일하자는 취지는 아니었다는 말인데요. 우선 하나 오류부터 바로잡고 가겠습니다. 윤 전 총장은 해명에서 주 52시간제를 규정한 근로기준법을 어기는 일을 ‘부당노동행위’라고 표현했는데요. 부당노동행위의 개념에는 근로기준법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노동자의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등 노동 3권을 침해하는 사용자의 행위를 일컫는 것이어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 주요 대상이지요.

게다가 아무리 ‘들은 말을 전한 것’이라고 해도, 대선 주자가 자신의 정치적 가치를 시민들에게 전하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읽는 이에게 ‘주 120시간 노동을 하자고?’라고 쉽게 인식될 수 있는 발언을 전한 것 자체가 패착으로 보입니다. 심지어 그의 인터뷰 전문과 해명을 종합해봐도, 노동 시간을 줄이자는 주 52시간제를 ‘실패’로 규정하고, 지금보다 더 오랫동안 노동할 수 있는 예외조항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 보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법정 노동시간을 18년 만에 주 68시간제에서 주 52시간제로 낮춘 건 한국 사회 노동현장에 만연한 장시간 노동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서였습니다. 주 52시간제가 개정되기 전인 2017년 한국 노동자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연간 2018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가운데 멕시코(2148시간) 다음으로 길었습니다. 이에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지난 5년간 산재 과로사 신청 건수는 9964건에 달하고,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300명 가까운 시민들이 과로로 세상을 떠났다”며 “멀리 갈 것도 없다. 지금도 서울대 청소노동자들의 과로사에 비통해하는 시민들의 탄식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라고 말했습니다.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도 페이스북에서 “영국 산업혁명 시기 노동시간이 주 90시간, 나치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주 98시간 노동”이라며 “4차산업 혁명시대에 19세기 초에나 있을 법한 120시간 노동을 말하는 분이 대통령하겠다고 나서는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진짜 대한민국인지 헷갈릴 정도”라고 말했습니다.

게다가 제도 시행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의 장시간 노동은 여전합니다. 특히 주 52시간 상한을 둔 근로기준법 밖에 놓여 있어서 주 52시간제의 적용을 받지 못하고 긴 노동 시간을 감수해야 하는 노동자들도 여전히 많지요. 플랫폼 노동자와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이 대표적입니다. 지난해 과로사로 줄줄이 쓰러져 간 택배 노동자들은 여전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더욱 큰 문제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윤 전 총장이 노동 현안에 대해 공부가 덜 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윤 전 총장은 해명에서 스타트업 현장의 청년 발언 중에 “현행 탄력근로제만으로는 부족하므로 업종의 특수성도 고려하고 노사정 합의에 따라 근로조건의 예외를 보다 폭넓게 인정해 달라”는 말이 있었다고 전했는데요. 문재인 정부는 주 52시간제를 추진하면서 노동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하게 해 달라는 경영계 요구를 수용해 2019년 이미 주 52시간제를 우회할 수 있는 제도를 여럿 만들었습니다.

노동자와 사용자가 미리 정한 기간 안에서 평균 노동시간을 주 40시간 이내로 맞추면 합법으로 보는 ‘탄력근로제’와 ‘선택근로제’가 대표적입니다. 당시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탄력근로제의 최장 기간을 기존 3개월에서 6개월로 연장하고 선택근로제도 신기술·신제품 연구개발 분야에 한해 정산기간(제도 활용 기간)을 1개월에서 3개월로 늘렸는데요. 탄력근로제는 6개월 이내에서 정해둔 기간 안에 주 단위로 평균을 내서 연장근로를 제외한 평균 노동시간이 주 40시간을 초과하지 않으면 합법으로 보는 제도입니다. 주 최대 노동시간이 64시간을 넘지 않는 한에서 평균 주 노동시간만 52시간 이내로 맞추면 되는 제도이지요. 선택근로제는 그 기간이 3개월로 줄어들지만, 노동자가 스스로 출퇴근시간을 정할 수 있고 한 주에 12시간 넘게 연장근로를 하는 것도 가능해 초과 노동의 허용 범위가 더 넓어집니다. 이 제도들은 이미 지난 4월부터 시행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스타트업이나 아이티(IT) 기업 등이 많은 5~29인 사업장의 경우 예외조항의 폭은 더 넓어집니다. 정부는 5~29인 기업의 경우 노동자의 동의와 고용노동부 장관 인가를 받으면 연장근무를 한 주에 12시간 넘게 시킬 수 있는 ‘특별연장근로’ 제도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해뒀는데요. 이전에는 사업주의 제도 남용을 우려해 ‘자연재해·재난 또는 이에 준하는 사고를 수습하는 경우’로 제도 활용 사유가 제한됐지만, 지난해부터는 ‘업무량 폭증’이나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연구·개발’ 같은 이유로도 이 제도를 활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여기에 더해 5~29인 기업은 2022년까지 한시적으로 노동자 대표와 합의하면 1주 8시간의 추가 연장근로를 허용해 최대 60시간까지 가능하도록 하는 ‘연장근로 제한’ 규정을 두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도 스타트업 청년들은 저런 제도들을 활용해 장시간 노동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여기에 얼마나 더 많은 예외가 필요할까요?

윤 전 총장은 법 제도의 엄격한 적용을 주장하는 법치주의자임을 자처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 52시간 상한을 둔 근로기준법도 엄격한 적용을 주장해야지만 일관성이 있을 겁니다. 자기에게 유리하면 엄격하게 법을 적용하고, 불리하면 예외조항을 더 많이 두자고 주장하는 ‘내로남불’ 법치주의를 말하는 정치인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재훈 신다은 기자 n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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