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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강제배차에 지각하면 벌금…배달 라이더, ‘자영업자’ 맞나요?

등록 2021-11-02 04:59수정 2021-11-02 07:50

[서울시 실태조사 보고서 단독 입수] 지역배달대행 1016명 설문
사전동의나 양해 없이 강제배차…업체가 지휘·감독하는 현실
“결근하면 10만원 떼 가기 위해 통장에 잔액 20만원 묶어둬”
영세 지역배달대행업체에서 일하는 배달기사의 40% 이상이 ‘사전 동의나 양해 없는 강제배차’를 경험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2021년 서울시 지역배달대행업체-배달라이더 간 거래관행 및 보험가입 실태조사 결과보고서’를 살펴보면 지역배달대행업체 배달기사 1016명 중 420명이 원하는 호출을 배달기사 스스로 선택하는 ‘경쟁배차’가 아닌 강제배차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사진은 1일 낮 배달기사들이 서울 마포구 공덕오거리를 오토바이로 이동하는 모습.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영세 지역배달대행업체에서 일하는 배달기사의 40% 이상이 ‘사전 동의나 양해 없는 강제배차’를 경험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2021년 서울시 지역배달대행업체-배달라이더 간 거래관행 및 보험가입 실태조사 결과보고서’를 살펴보면 지역배달대행업체 배달기사 1016명 중 420명이 원하는 호출을 배달기사 스스로 선택하는 ‘경쟁배차’가 아닌 강제배차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사진은 1일 낮 배달기사들이 서울 마포구 공덕오거리를 오토바이로 이동하는 모습.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관리자1: 대가리부터 배차 좀 합시다.(호출 리스트 위쪽에 있는 오래된 호출부터 배차 수락해주세요.)

관리자2: ○○ 음식 나와 있어요. 급급.(음식 나와 있으니 얼른 가져가세요. 급해요.)

관리자1: 식사 다 하신 기사님 휴식 좀 풀어주세요. 출근들 합시다.(‘휴식’ 중인 분들 다시 배차 수락해주세요. 일 좀 합시다.)

라이더1: 밥이요~(하던 일 멈추고 밥 좀 먹고 오겠습니다.)

지난달 평일 오후 서울의 한 지역배달대행업체가 운영하는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단톡방)의 한 장면이다. 이 단톡방에는 이 업체와 배달업무 위탁계약을 맺은 배달기사 50여명과 관리자 3명이 종일 대화를 나눈다. 특정 업무의 수행을 지시하고, 그만 쉬고 일하라고 종용하며, 밥 먹으러 갈 때도 보고해야 한다. 이 업체에서 2년 가까이 일했던 20대 배달기사 ㄱ씨는 “보통 지역배달대행업체는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고, 지각·결근을 하면 벌금을 떼기도 한다”며 “원칙적으로는 기사들이 원하는 호출을 골라잡아야 하지만 업체에서 골라서 배차(강제배차)해주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흔히 플랫폼노동자인 배달기사는 자신의 의지대로 업무시간과 장소를 정할 수 있는 자영업자로 인식되지만, 이 장면은 배달기사를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볼 수 있는 ‘증거’다.

코로나19로 급성장한 음식배달 산업에 종사하는 배달기사(라이더)가 20만명에 이른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배달기사의 상당수가 ‘자영업자’ 아닌 ‘노동자’임을 뒷받침하는 서울시의 실태조사 결과가 나왔다. 특히 이 조사의 대상이 된 기사들은 배달의민족·쿠팡이츠·요기요 등 정치적 관심이 쏠린 대형 음식배달플랫폼이 아닌 영세 지역배달대행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고객이 음식주문 앱인 ‘배달의민족’이나 ‘요기요’에서 음식을 주문하면, 배민라이더스·커넥트, 요기요익스프레스가 배달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이 주문의 거의 대부분을 지역배달대행업체가 수행한다. 가령 우아한형제들의 모회사인 ‘딜리버리히어로’(DH)의 자료를 보면, 지난 8월 ‘배달의민족’을 통해 들어온 음식주문은 1억건을 넘겼다. 이 가운데 자회사 우아한청년들이 운영하는 배달대행인 배민커넥트·라이더스가 수행하는 주문은 10% 남짓으로 전해졌다. 나머지 9천만건은 지역배달대행업체나, 직접 고용한 배달기사가 수행한다. 결국 배달기사의 대부분이 지역배달대행업체 배달기사라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대형 플랫폼은 감시의 표적이 되는 만큼 서면계약서 작성과 산재보험 가입 등 정부 조처를 따를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반면, 지역배달대행업체는 이 마저도 무시하는 실정이어서, 감시 사각지대에 있는 영세 업체에 대한 관리·감독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1일 <한겨레>가 입수한 ‘2021년 서울시 지역배달대행업체-배달라이더 간 거래관행 및 보험가입 실태조사 결과보고서’를 보면, 생각대로·바로고·부릉·공유다 등의 플랫폼을 쓰는 지역 지사 격인 지역배달대행업체 배달기사 101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41.2%가 ‘사전 동의나 양해 없는 강제배차’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가운데 25.5%는 매일 3번 이상 강제배차를 받았다고 응답했고, 23.2%는 매일 1~2번이라고 응답했다. 이밖에 2~3일 1회 13.4%, 주 1~2회 21.2%, 한달에 1~2회 11.9%, 한달 1회 미만 4.8% 등 순이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원칙적으로 지역배달대행업체는 원하는 호출을 배달기사 스스로 선택하는 ‘경쟁배차’ 형태를 띤다. 하지만 지역배달대행업체의 관리자는 배차 프로그램을 통해 기사들의 배달상황을 직접 관제하면서 ‘강제배차’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일부 프로그램의 경우 특정 기사에게 호출을 몇 초씩 늦게 띄우는 것도 가능하다. 수도권의 중소도시에서 일반배달대행업체 기사 경력 10년인 ㄱ씨는 “업체에서 콜 3~4개를 한꺼번에 강제배차하고, 기사에 따라 호출을 볼 수 있는 시점이 다르다”며 “사장이나 관리자 눈 밖에 나면 온갖 불이익을 당할 수 있는 구조”라고 말했다.

실태조사에서 29.4%는 ‘지각이나 조퇴에 따른 불이익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일할 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쉬는’ 것이 아니라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지키지 않으면 불이익이 생긴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지역배달대행업체에 2년 동안 일했던 ㄴ씨는 “보통 지역배달대행업체는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고, 원래 수수료(배달기사가 배달료 가운데 업체에 납부하는 돈)가 400원인데, 지각한 날에는 600원을 떼어간다”며 “결근비는 10만원인데, 업체에서 결근비를 떼기 위해 보수지급 통장의 잔액 20만원은 인출하지 못하게 묶어둔다”고 말했다.

응답자의 14.0%는 다른 지역배달대행업체와 거래했다는 사유로 인해 불이익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영업자라면 어느 업체와 거래하든 불이익이 없어야 하지만 다른 업체와 거래했다는 이유로 △배달콜 노출시간 지연(56.3%) △배달콜 프로그램 접근 제한(29.6%) △배달지사 지급수수료 인상(27.5%) 등의 불이익을 당한 것이다. 방강수 한양대 공익소수자인권센터 연구원(노동법 박사·노무사)는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고, 근태와 벌칙 등이 존재하며, 강제배차가 이뤄지는 전업형 지역배달대행업체 기사들은 사실상 노동자로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쉬는’ ‘내가 하고 싶은 일만 골라서 하는’ 플랫폼노동자에 대한 통념과는 달리, 배달기사들의 근무시간이 정해져있고, 업체의 ‘지휘·감독’에 따라 일한다는 뜻이다. 법원은 그동안 노무를 제공한 사람이 노무를 제공받는 사람과 근로계약을 맺지 않더라도, 업체의 지휘·감독을 받으며 종속적으로 노무를 제공했다면 근로기준법의 노동자로 봐야 한다고 판단해왔다. 이러한 판례 근거해 고용노동부도 요기요플러스(현 요기요익스프레스) 배달기사들이 근로기준법의 노동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

서울시 실태조사는 지역배달대행업체 배달기사 1016명을 대상으로만 이뤄졌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통상 음식배달 플랫폼노동자라고 하면 ‘음식주문’ 플랫폼인 배달의민족·쿠팡이츠·요기요가 각각 운영하는 배민커넥트(또는 라이더스)·쿠팡이츠 배달파트너·요기요익스프레스를 먼저 떠올리고, 정부 규제도 이들 대형 플랫폼업체로 집중된다. 하지만 이들의 숫자는 20만명으로 추산되는 배달기사 가운데 30% 수준이라는 게 업계 분석이다. 이 세 업체는 음식주문 플랫폼을 직접 운영하면서 자회사를 통해 라이더들과 배달업무 위탁계약을 해, 보통 ‘통합형 배달 플랫폼’이라 부른다.

지역배달대행업체는 이와 다른 ‘분리형 배달 플랫폼’에 해당한다. 생각대로·바로고·부릉·공유다 등의 업체(프로그램사)가 음식점용 주문 프로그램과 배달기사용 배차 프로그램을 만들고, 지역배달대행업체가 이를 구매해 음식점과 배달기사에게 깔아주고 사용대가를 받는다. 특히 배민·쿠팡이츠 등이 진출하지 않은 비수도권 지역은 배달기사 전원이 지역배달대행업체 소속이라 봐도 무방하다. 음식 소비자가 최대 고객인 대형 통합형 플랫폼 업체와 달리, 지역배달대행업체는 음식점주가 최대 고객이다. 음식점주가 요청한 호출을 업체가 수행하지 않으면 최대 고객을 잃게 된다. 지역배달대행업체에서 배달기사의 근무시간을 정하고, 호출을 강제로 배차하는 등 업무지시가 더 빈번하게 일어나는 이유다.

박은정 인제대 교수(노동법)는 “자영업자의 속성은 업무의 독립성에 있고, 이는 자신의 사무를 독립적인 판단에 따라 처리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사전 동의 없는 배달콜과 다른 배달지사와의 거래 제한, 지각·조퇴에 대한 패널티 등의 요소를 모두 지닌 라이더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볼 여지가 있다”며 “그럼에도 노동자가 아닌 사람으로 오분류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지난 8월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이른바 ‘라이더보호법’으로 불리는 생활물류서비스발전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륜차를 이용해 화물을 직접 배송하거나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해 화물 배송을 중개하는 사업을 ‘소화물배송대행서비스사업’으로 정의하고, 이 사업을 하는 업체를 국토교통부에 등록해야 한다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조봉규 라이더유니온 부산경남지부장은 “지역배달대행업체 상당수가 음성적으로 운영되고 있어서 배달기사들의 부당한 처우와 사장의 갑질이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는 실정”이라며 “국회가 라이더보호법을 하루속히 통과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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