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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다 치우고 잊으라고 해도…그날 용균이 생각만 떠올라”

등록 2021-12-06 04:59수정 2021-12-06 07:35

[김용균 3주기] 3년째 트라우마 겪는 동료 이인구씨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은 용균씨 찾으러 갔다 처참한 주검 발견
“허무하게 부서진 젊음” 달래려 ‘아이들 있는 공간’ 만들어 추모
김용균과 한국발전기술에서 함께 일했던 이인구씨가 지난달 27일 전북 군산에 스스로 만든 산재 피해자 추모공간을 둘러보고 있다.
김용균과 한국발전기술에서 함께 일했던 이인구씨가 지난달 27일 전북 군산에 스스로 만든 산재 피해자 추모공간을 둘러보고 있다.

“산업안전보건예방 철저,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 더이상 죽이지 마라.” 전북 군산시 경암동 큰길가 낡은 2층짜리 상가건물엔 보라색 펼침막이 걸려 있다. 지난달 27일 오전 펼침막이 걸린 공간의 주인 이인구(66)씨가 “우리 애들 있는 공간”을 소개했다.

50평 남짓한 공간에서 볕이 가장 잘 드는 방 선반에는 2018년 12월10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숨진 김용균씨(이하 김용균)를 비롯해 일터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의 사진이 놓여 있다. 김용균이 좋아했다는 방탄소년단(BTS)의 음반, 문송면(1988년 수은중독으로 숨진 17살 청년노동자)이 가지고 놀 수 있는 프라모델과 드론, 문중원(2019년 마사회 비리를 폭로하고 목숨을 끊은 기수)이 운동할 때 필요한 샌드백도 있다. “애들 심심하지 말라고 갖다 놓은 거예요. 여기가 제일 행복해요. 책도 읽고 애들한테 인사도 하고.”

이씨는 한국전력(이후 중부발전) 서천화력발전소에서 2013년 정년 퇴직했다. 이후 2015년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상하탄설비 운전·점검 업무 등을 위탁받은 한국발전기술에 ‘경력직 과장’으로 입사했다. 평생을 원청 정규직으로 살다 하청 노동자가 되니 보이지 않던 게 보였다. “쓰는 마스크부터 장갑까지 정규직일 때 받던 장비와 전혀 달랐다. 옛날에는 다 같은 발전소 직원이었는데 발전소 안에서 갑-을-병-정이 생기고 차별이 생겼다.”

그럴수록 젊은 신입사원들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치려 애썼다. 조금이라도 나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회사에 건의도 많이 했다. 2018년 9월 입사한 김용균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용균이가 한번 점검 나가면 눈만 하얗고 나머지는 시꺼메가지고 남들보다 한시간은 늦게 들어왔다. 혼자 늦게 밥 먹는 게 안쓰러워서 밥도 같이 먹었다.”

김용균이 숨진 그날도 이씨는 김용균에게 장비 점검을 알려주기로 했다. 김용균은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았다. 실종 사실을 인지한 지 5시간 남짓 만에 처참한 주검을 찾은 것도 이씨였다. “당황했고, 화가 났고, 슬펐다.” 경찰·고용노동부 수사, 특조위 조사를 받으면서, 사고 책임을 회피하는 이들로 인해 마음의 병은 깊어졌다. “용균이의 젊음이 그렇게 허무하게 부서지는 게 용납이 안 됐다.” 이듬해 2월 장례를 치를 때까지 빈소를 지키며 그 죽음을 원통해했다.

고용노동부의 작업중지 조치가 끝나 이씨는 다시 출근했지만 컨베이어벨트를 보자 트라우마가 심해졌다. 산업재해를 신청해 지난해 12월까지 일을 쉬었지만, 연장이 안 되는 바람에 현재는 병가 상태다. 그동안 ‘일터에서 안전할 권리’를 위해 ‘활동가’ 못지않은 삶을 살았다. 서울의 김용균과 문중원 기수의 분향소와 천막을 지켰다. 직접 이들을 기릴 공간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고향 군산에 만든 것이 “우리 애들 있는 공간”이다. 그가 원래 살던 ‘이쪽 세계’ 사람들은 “왜 귀신이랑 살고 있느냐, 다 치우고 잊으라”고 하지만, 그럴 수 없다.

병가는 올해 말 끝난다. 이씨는 “운전을 해야 하고, 교대근무를 해야 하는데 잘할 수 있을 자신이 없다”고 했다. 그는 원청·하청에 이렇게 말하고 싶다고 했다. “같은 발전소에서 한 시스템에서 일하고 있다. 임금이나 복지나 업무를 위해 습득할 수 있는 자료들까지 차별받지 않고 평등하게 대우받았으면 좋겠다. 재밌고, 즐겁고, 명랑하게 생활했으면 좋겠다.”

글 사진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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