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배달기사가 서울 마포구의 한 도로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빠른 배달을 재촉받은 경험이 있는 기사일수록 교통사고를 경험한 비율이 두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배달 재촉의 ‘주체’는 음식점·주문고객·플랫폼업체 순으로 나타났는데, 배달기사 산재사고 감축을 위해선 음식배달 플랫폼과 관계된 모든 사람들의 인식변화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고용노동부는 배민라이더스·쿠팡이츠·바로고·생각대로·부릉·슈퍼히어로 등 6곳의 배달기사 562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26일 발표했다. 이번 설문조사는 노동부의 배달 플랫폼 업체들의 안전조치 의무 이행여부 점검과 동시에 진행됐다.
자료를 보면, 업무중 교통사고를 경험한 사람이 약 47%(2620명)로 평균 2.4회의 사고를 경험했고, 86%(4,858명)가 배달 재촉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두 질문에 대한 응답을 종합하면, 배달 재촉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 가운데 사고를 경험한 사람은 23%였지만, 배달 재촉을 경험한 사람 가운데 사고를 경험한 사람은 50.3%로 비중이 두배로 늘었다. 배달기사에게 배달 재촉을 한 ‘주체’는 음식점(4189명), 주문고객(3772명), 지역배달대행업체(1690명), 배달플랫폼 업체(1558명) 순(중복응답)으로 나타났다. 지역배달대행업체는 배달 중 전화를 통해, 배달플랫폼 업체는 앱 화면에 배달시간 노출을 통해 배달을 재촉한다고 응답했다.
배달기사 설문조사에서 나타난 사고의 원인은 ‘상대방 법 위반’이 53.1%로 가장 높았고, 쌍방·본인과실이 19.5%, 날씨에 따른 사고가 12.7% 순으로 나타났다. 사고 경험은 업무경력이 길수록 높게 나타났지만, 최근 1년 안에 사고 경험비율은 업무경력 1~3년인 이들이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연령대별로는 20대 이하(55%)와 50대(50%)의 사고 경험 비율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높았다.
안경덕 노동부 장관은 “배달플랫폼 산업의 경우, 플랫폼업체, 배달대행업체, 음식점주, 주문고객, 종사자 본인 등 플랫폼을 이용하고 있는 모든 사람이 종사자의 안전에 영향을 주고 있다”며 “배달종사자 안전을 위해 모든 플랫폼 이용자의 인식과 행동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번 설문조사는 최근 음식배달 플랫폼 시장의 변화의 양상도 보여준다. 최근 ‘배달기사는 고소득 직종’이라는 인식이 팽배하지만, 그만큼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배달 경력이 1년 미만인 사람이 40%에 달하고, 1~2년인 사람은 22%라는 사실은 코로나19 이후 일자리를 잃거나 소득이 감소한 이들이 배달 일자리로 많이 유입됐음을 유추할 수 있게 해준다. 전체 응답자의 68%가 전업으로 일한다고 응답해 부업(32%)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전업 기사들은 1주에 5.8일, 하루 평균 9.4시간을 일한다고 응답했고, 부업 기사들도 1주 4.7일, 하루 평균 5.6시간을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일수와 시간을 보면 전업과 부업을 구분하는 것이 별다른 의미가 없어 보인다. 전체 배달기사 가운데 주 6일 이상 일하는 이들이 58.7%에 달했으며, 하루 7시간 이상 일하는 배달기사는 64.8%에 달했다. 전업기사의 월 평균 수입은 287만원으로 55.8%가 300만원 이상 버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업기사는 월 평균 137만원으로 100만~300만원 버는 비중이 57.2%로 파악됐다. 장시간 노동이 배달기사의 수입에 큰 영향을 주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번 설문조사는 지난달 4~21일 18일 동안 음식배달 플랫폼업체들이 배달기사들이 사용하는 앱에 설문문항을 탑재해 온라인으로 응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박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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