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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우리는 ‘도급인’ 아닌 ‘발주자’”…산재 책임 피하려는 한전의 ‘꼼수’?

등록 2022-01-09 16:55수정 2022-01-10 02:33

산안법상 건설공사 발주자는
협력업체 안전·보건조치 의무 없어
고용부 수사에도 “우리는 발주자”
정승일 한국전력공사 사장(왼쪽 세번째)을 비롯한 임원진이 9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전아트센터 회의실에서 하청업체 노동자 감전 사망사고 관련 대책발표에 앞서 고개숙여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승일 한국전력공사 사장(왼쪽 세번째)을 비롯한 임원진이 9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전아트센터 회의실에서 하청업체 노동자 감전 사망사고 관련 대책발표에 앞서 고개숙여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재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한국전력이 발주한 전기공사는 건설공사의 준해서, 한전은 ‘건설공사 발주자’의 지위를 갖고 있다.”

9일 정승일 한국전력 사장은 전봇대 개폐기 조작작업을 하다 고압전류에 감전돼 숨진 협력업체 노동자 김다운(38)씨의 사고를 계기로 ‘안전사고 근절을 위한 특별대책’을 발표하며, 한국전력은 ‘발주자’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한전의 이런 주장과 달리 고용노동부는 한전이 발주자가 아닌 ‘도급인’에 해당될 수 있다고 보고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한전을 입건해 수사중이다. 노조는 한전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의 법망을 피하기 위해 자신들이 산업재해의 책임이 없는 ‘발주자’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산업안전보건법 제2조는 “물건의 제조·건설·수리 또는 서비스의 제공, 그 밖의 업무를 도급하는 사업주”를 ‘도급인’을 규정하면서 “다만, 건설공사 발주자는 제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산안법은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 위해 ‘도급인’(원청)에게 ‘관계수급인’(하청) 노동자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안전·보건 조치를 하도록 의무도 부과하고 있다. 도급인이 이런 의무를 다하지 않아 노동자가 숨질 경우 7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하지만 한전의 주장대로 발주자가 되면, 한전은 이런 의무와 책임은 피해갈 수 있다.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은 한전이 발주자가 아니라 도급인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김씨는 ‘건설공사’를 하다가 숨진 것이 아니라 고객에게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회로차단 전환스위치 투입·개방 작업을 하다가 숨졌기 때문이다. 산안법 2조는 건설공사 발주자를 제외한다고 단서를 달고 있지만, 우선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르면 전기공사업법이 규정하는 전기공사는 건설공사에 해당하지 않는다. 또 전기공사업법은 전기공사에 ‘발전·송전·변전 및 배전 설비공사, 산업시설물, 건축물 및 구조물의 전기설비공사’ 등을 포함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김씨가 맡은 배전작업은 특히나 ‘건설공사’로 보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석원희 건설노조 전기분과위원장은 “한전이 작업전 현장 모니터링을 통해 작업 시작을 허락하고 작업 뒤에도 보고하게 돼있으며, 현장 패트롤팀을 운영해 안전·시공품질 평가를 한다”며 “모든 작업은 법보다 한전이 정한 배전업무 처리기준 등을 통해서 이뤄지는데 이는 발주자로 보는 것보다 원청(도급인) 성격이 크다”고 밝혔다. 한전은 협력업체들과 작업의 배정과 진행 경과 등에 관한 전산시스템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 사장이 이날 기자회견 과정에서 사용한 단어들을 보면 한전을 도급인으로 보는 게 맞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 사장은 건설공사 업체들을 ‘협력업체’, 작업이 이뤄지는 장소를 ‘우리 사업장’이라고 표현했다. 산안법은 ‘도급인의 사업장’을 “도급인이 지배·관리하는 장소”로 규정한다. 전재희 건설노조 교육선전실장은 “땅 주인이 건설공사를 발주하면서 시공업체를 ‘협력업체’라고 하지 않는다. 단순한 발주자-시공업체의 관계가 아니라 원하청 관계로 보는 것이 맞고 한전이 ‘발주자’라 주장하는 것은 책임을 피하려는 꼼수”고 말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한전이 업무 지휘와 총괄하는 지휘에 있는지, 협력업체의 업무에 관여할 지위에 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도급인에 해당하는지 판단할 방침”이라고 말을 아꼈지만, 이미 고용부가 한전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입건해 수사하고 있는 이상 도급인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한전 쪽은 “고용노동부의 수사 결과에 따라서 책임이 있다면 다하겠다”고 밝혔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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