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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단독] 현대엘리베이터, 계약서도 없이 ‘판교 사망사고’ 인력 투입

등록 2022-02-14 04:59수정 2022-02-14 13:08

현대엘리베이터, 사고 뒤 계약서 작성요구
고용노동부, 불법하도급 검토 중인 듯
공사금액 5억여원…중대법 적용은 안돼
업계 “건설사 납기단축 요구 문제 심각”
지난 8일 경기 성남 판교제2테크노밸리 요진건설산업 건물 신축 현장에서 추락사고가 발생해 작업자 2명이 숨졌다. 연합뉴스
지난 8일 경기 성남 판교제2테크노밸리 요진건설산업 건물 신축 현장에서 추락사고가 발생해 작업자 2명이 숨졌다. 연합뉴스

지난 8일 경기도 판교 요진건설산업 건설현장에서 엘리베이터 설치업체 ㅎ사 대표와 팀장이 숨진 가운데, 현대엘리베이터가 계약서조차 작성하지 않은 채 생명을 담보로 한 위험한 작업에 이들을 투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고용노동부는 불법하도급인지 여부를 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3일 <한겨레>의 취재를 종합하면, ㅎ사는 설 연휴(1월29일~2월2일) 직전 해당 현장에 투입됐지만 사고가 난 지난 8일까지 설치공사에 관한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사고가 난 이후 ㅎ사를 찾아가 계약서류 작성을 요구했다고 한다. 현대엘리베이터 쪽은 <한겨레>에 “원래 투입됐던 업체가 투입되지 못하면서 ㅎ사가 공사를 하게 됐고, 관련 서류 절차자 늦어진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건설산업기본법의 전문공사에 해당하는 승강기설치공사는 하도급을 줄 수 없으며, 승강기 제조사가 설치업체와 ‘공동수급체’를 구성한 뒤 건설사로부터 설치공사를 공동수급하는 방식으로 운영해야 한다. 그러나 현대엘리베이터는 지난해 5월 해당 현장에 납품하기로 한 뒤 설치업체를 결정하지 못하다, 지난달 말 급하게 ㅎ사를 투입하고 계약서조차 작성하지 않았다. ‘공동수급’이 아닌 ‘불법하도급’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고, 고용노동부 역시 현대엘리베이터와 ㅎ사 계약관계의 ‘실질’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숨진 ㅎ사 대표와도 잘 아는 한 승강기설치업체 대표 ㄱ씨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통상적으로 설치업체가 해당 현장이 어떤 현장인지, 공사를 통해 받을 수 있는 대가가 얼마인지도 모르고 공사에 투입되는 것이 업계에서 흔하다”며 “제조사와 설치업체가 동등한 입장에서 공동수급계약을 맺는다는 것은 말도 안되고, 제조사가 갑이고 설치업체가 을인 하도급과 다를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번 사고를 두고 현대엘리베이터의 안전관리 책임론도 제기된다. 승강기설치업계에서는 엘리베이터의 추락을 방지하는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을 이번 사고의 첫번째 원인으로 꼽는다. 또다른 승강기설치업체 대표 ㄴ씨는 “공사 초반 엘리베이터 카 케이지(본체)를 조립하고, 케이지가 추락하지 않도록 잡아주는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제조사에서 안전점검을 하고, 여기서 문제가 있으면 작업을 진행할 수 없다”며 “이번 사고는 이 장치가 작동하지 않아 사고가 난 것 같은데, 장치에 결함이 있거나 점검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대엘리베이터 쪽은 이와 관련 “현재 수사가 진행중이어서 답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납품은 제조사가, 설치는 설치업체가 전담하므로 안전관리 책임을 설치업체에 떠미는 관행이 적지 않다. 하지만 <한겨레>가 승강기설치 과정에서 발생한 산업재해 사건 하급심 판결을 살펴보니, 2013년 부산지법과 2018년 전주지법은 공동수급체의 대표자인 현대엘리베이터가 숨진 설치업체 노동자의 ‘사업주’에 해당한다고 봐, 산업안전보건법의 안전조치의무 위반으로 유죄 판결한 바 있다.

다만 고용노동부 수사결과 사업주 또는 도급인으로서 현대엘리베이터의 산업안전보건법 안전조치의무 위반이 확인된다 하더라도,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적용 대상은 아니다. 건설공사는 공사금액이 50억원을 넘겨야만 중대재해 처벌법 적용이 가능한데, 이번 사고 현장은 공사금액이 5억여원에 그치기 때문이다.

승강기설치업계에서는 건설사의 납기단축 압박과 고질적인 설치인력 부족이 산재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건설 현장에서는 높은 층으로 건설 자재를 올려주는 리프트 비용을 아끼기 위해 건설사가 승강기를 빨리 설치해달라고 요구하는 관행이 팽배하다. ㄱ씨는 “건설사가 90일 걸릴 것을 한 달에 끝내달라고 요구하다보니, 현장에서는 안전에 대한 고민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작업하기에 바쁘다”며 “밀폐된 공간에서 이뤄지는 고소작업이니 일이 힘들 수밖에 없는데 제조사가 지급하는 도급대가가 낮아 설치업체에선 작업자 구하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이번 사고로 숨진 ㅎ사 대표 역시 인력부족 때문에 본인이 직접 현장 작업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엔 설치업체들이 도급대가 인상을 요구하며 작업을 거부했다가 현대엘리베이터로부터 민형사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건설현장의 노골적인 공기단축 요구와 설치인력 부족 탓에 ‘되는대로’ 진행되는 설치공사가 산업재해를 유발한다는 지적은 수차례 있어왔다. 2019년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가 크게 불거져, 고용부를 비롯한 정부 부처가 2020년 4월 ‘승강기 작업장 안전강화 대책’을 내놓은 바 있다. 구체적으로 △불공정 공동도급, 불법·편법 하도급 여부 단속 △작업허가제 도입·관리감독 강화 등이다. 그러나 업계에선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고용부 관계자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승강기 설치업계 전반에 대한 점검을 진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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