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노동

산재 사고 여전한데…안전보다 ‘대표처벌 막기’ 총력전

등록 2022-02-28 04:59수정 2022-02-28 08:28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한달]
삼표산업 등 4곳 입건되고
쌍용씨앤이 등 6곳 수사중

사장은 회피성 사과문
직원들은 수사 비협조
로펌끼고 총력 방어전
경기 양주 삼표산업 채석장에서 발생한 붕괴·매몰 사고에 대해 철저한 진상조사 및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엄정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지난 3일 오후 삼표산업 양주사업소 앞에서 열리고 있다. 양주/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경기 양주 삼표산업 채석장에서 발생한 붕괴·매몰 사고에 대해 철저한 진상조사 및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엄정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지난 3일 오후 삼표산업 양주사업소 앞에서 열리고 있다. 양주/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어제(2월21일) 쌍용씨앤이(C&E) 동해공장에서 시설물 관련 건설공사 중 시공사 직원의 사망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저희 회사는 발주자로서 시공사 직원의 인명 사고가 발생한 것에 대해 대단히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강원도 동해 시멘트 소성로 공사 작업 중 협력업체 노동자가 추락해 숨진 쌍용씨앤이(옛 쌍용양회)에서 사고 이튿날 이현준 사장 명의로 발표한 사과문은 언뜻 보면 말 그대로 ‘사과문’으로 읽힌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720자 남짓한 글에 해당 작업이 (시설물 유지보수 공사가 아니라) ‘건설공사’임을 강조하는 표현을 네번, 숨진 노동자가 (하청업체 직원이 아니라) ‘시공사 직원’이라는 표현을 다섯번이나 촘촘하게 배치했다. 이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처벌을 피하려는 ‘치밀한 전략’이다. 건설공사의 경우 공사금액이 50억원이 안 되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받지 않는데다,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의 ‘도급인(원청)’으로서 ‘수급인(하청)’ 노동자에 대한 안전·보건 조치 의무도 상당 부분 면제되기 때문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한달을 맞이한 27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이 법 위반 혐의로 입건된 기업은 삼표산업, 요진건설산업, 여천엔씨씨(NCC), 두성산업 4곳으로 확인됐다. 쌍용씨앤이 등 6곳은 산안법 위반 혐의로 수사 중이지만, 수사를 거쳐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추가 입건될 수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에게 종사자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부과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다. 이전처럼 현장관리자가 산안법 처벌 대상이 되는 선에서 그치지 않기 때문에, 해당 기업들은 대형 법무법인을 선임해 ‘총력 방어’에 나서고 있다. 쌍용씨앤이처럼 ‘법 적용 회피’를 위해 만들어놓은 수단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방어에 나선 곳도 눈에 띈다.

기존 판례를 보면, 쌍용씨앤이는 ‘건설공사 발주자’가 아니라 ‘도급인’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높다. 2015년 에스케이(SK)하이닉스는 하청업체에 이천 반도체공장 ‘유기성분 처리시스템 설치공사’ 도급을 맡겼는데 작업 중이던 하청노동자 3명이 질식해 숨졌다. 이때 산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에스케이하이닉스 회사와 상무는 “건설공사 발주자일 뿐 도급사업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건설공사의 전체적인 진행 과정을 총괄하고 조율했다”며 산안법의 ‘도급인의 안전조치 의무 위반’ 혐의로 유죄 판결했다. 최근 울산지법 역시 “공사가 원청사업의 본질적이고 필수적인 것”이라면 외관상 건설공사 발주자라도 ‘도급인’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 이러한 사례를 보면 쌍용씨앤이의 ‘건설공사’ 주장도 먹히지 않을 가능성이 높지만, 해석에 관한 쟁점이 아직 남아 있다는 점을 이용해 법 적용을 피하기 위한 ‘논리’를 펼치는 모양새다. 쌍용씨앤이뿐 아니라, 실제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전부터 기업들은 중대재해 발생에 대비해 기존 유지·보수 관련 작업을 ‘건설공사’로 발주하는 사례가 늘었다고 한다.

각 기업들의 산업재해 수사·조사에 임하는 태도 역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전과 확연히 바뀌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전에는 몇백만원에 그치는 벌금보다 사업 운영에 큰 영향을 미치는 ‘작업중지’가 기업들에 더 중요했다”며 “빠른 작업중지 해제를 위해 현장관리자들이 산안법 위반 혐의를 빨리 시인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 산안법 위반을 시인해버리면 자칫 중대재해처벌법으로 대표이사까지 처벌될 수 있기 때문에 혐의 시인이 드물다”고 전했다. 폐회로텔레비전(CCTV)이 없는 사고 현장에서는 사고 원인에 관한 진술을 함구하거나, 회사 관계자들끼리 말을 맞추는 사례들도 자주 발견된다고 한다. 예전 산안법 관련 수사에서 사고 경위를 파악하기 위한 단순 참고인 조사에 변호사가 동석하는 사례는 드물었지만, 현재는 ‘기본값’이 됐다는 것이다.

대외적으로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도, 실제로는 ‘비협조’적인 상황도 속출하고 있다. 지난 11일 노동부는 삼표산업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주요 피의자들의 컴퓨터에 남아 있는 자료가 거의 없었고, 대표이사는 아이폰을 제출한 뒤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아 압수물 분석에 애를 먹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노동부에선 ‘이게 협조냐’는 불만도 나오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는 피의자의 ‘방어권 행사’에 포함되는 영역인데다 이미 예견된 일이라는 점에서 노동부가 수사 역량을 높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중대재해처벌법 수사는 산업재해가 발생한 직후부터 개시되는데,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가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기업 입장에서는 수사에 대응할 시간을 벌 수 있게 된다. 삼표산업의 경우 사고 발생 2주 뒤에야 본사 압수수색이 이뤄졌고, 여천엔씨씨도 본사 압수수색까지 1주라는 시차가 있었다.

수사 과정에서 기업들의 총력대응이 이뤄지고 있는 만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송치·기소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단순한 증거의 수집을 넘어서 산업재해 발생과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 위반 사이의 인과관계가 입증돼야 하는데, 이러한 논리를 짜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증거 수집과 분석, 법리 구성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최대한 신속하게 수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