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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산재예방 열심히 해도 안 줄어드는 이유가 뭘까요?”

등록 2022-03-21 13:34수정 2022-03-21 13:52

인터뷰ㅣ박미진 전 서울대 보건대학원 연구교수
중대재해법, 산재를 경영계획으로 편입 긍정적
국내기업, 화학물질 왜 위험한지 ‘위험인지’ 부족
사업주에 법 이해시켜 준수의지 끌어올려야
박미진 전 서울대 산업환경보건연구실 연구교수가 지난 8일 오전 서울 관악구 서울대보건대학원 연구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박미진 전 서울대 산업환경보건연구실 연구교수가 지난 8일 오전 서울 관악구 서울대보건대학원 연구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구슬도 꿰어야 보배다.’ 지난 8일 <한겨레>와 만난 박미진 서울대 전 보건대학원 연구교수는 정부의 현재 산업재해 예방 정책을 이렇게 진단했다. 국내 기업과 정부가 구슬(산업안전보건법상 법적 의무) 하나 하나를 닦는 데만 치중할 뿐 이를 하나로 꿰어 보배(재해를 예방하는 효율적 관리 체계)로 만들지는 못 한다는 지적이다. 1월27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안전 관리 체계 구축이 법적 의무가 된 뒤에도 이런 관행은 쉬이 고쳐지지 않는다. “‘열심히 하는데 재해가 안 줄어든다’고 사업주들이 답답해 하는데 실상은 열심의 목표가 뭔지도 모른 채 숙제만 열심히 하는 식입니다. 정부는 안전 관리 역량 강화를 사업주에게만 맡겨두고 있고요.”

박 전 교수는 지난 1994년 서울대 보건학 석사를 마치고 모토로라코리아 보건관리자로 입사해 15년 간 일한 뒤 2010년 두산전자에서 환경·보건·안전(EHS) 관리자로, 2014년 약진통상에서 사회적 책임 경영(CSR) 이사로 일하며 산업 안전 관리와 기업 경영 실무 경험을 쌓았다. 지난 2018년부턴 서울대 보건대학원 연구교수를 맡아 관리 대상 화학물질 제도 개편 방안과 소규모 사업장 보건 관리 방안 등을 연구했다. 이달 말부터 원진재단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연구위원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심의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박 전 교수는 최근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으로 ‘꽁꽁 얼었던 안전 의식’이 전환기(Unfreezing)를 맞이했다고 봤다. 그간 기술자들에만 맡겨뒀던 안전이 이제 사업주가 챙겨야 할 경영 계획의 일부로 편입된 것이 큰 성과라고 평가했다. 그는 안전 관리가 잘 되려면 결국 경영자의 권한 부여가 필요하다며 “권한을 주지 않으면 위기 때 생산을 중단시키지도, 인력을 늘려달라고 요구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권한만 있고 안전 관리 역량이 따라오지 못하면 현실은 제자리걸음이다. 박 전 교수는 국내 기업의 산재 관리가 어려운 주된 이유는 ‘위험 인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화학물질을 예로 들면 법 규제가 워낙 세니까 지키긴 하는데 왜 그게 위험한지는 사업주도 정확히 몰라요. 노동자들도 화학물질을 다루면 잠복기가 지나고 문제가 생길 수 있단 걸 알아야 되는데 누구도 알려주지 않고요. 사업주와 노동자 모두 ‘위험 인지 교육’(Aware training)이 전반적으로 부재한 겁니다.”

급성 중독으로 인한 직업성 질병자 16명이 발생한 것과 관련해 노동부 부산지방고용노동청과 창원지청이 지난달 경남 창원시 의창구에 위치한 두성산업에 대해 압수수색했다. 두성산업 급성 중독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처음 확인된 직업성 질병에 의한 중대산업재해다. 사진은 이날 노동부 관계자가 두성산업으로 들어가는 모습. 연합뉴스
급성 중독으로 인한 직업성 질병자 16명이 발생한 것과 관련해 노동부 부산지방고용노동청과 창원지청이 지난달 경남 창원시 의창구에 위치한 두성산업에 대해 압수수색했다. 두성산업 급성 중독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처음 확인된 직업성 질병에 의한 중대산업재해다. 사진은 이날 노동부 관계자가 두성산업으로 들어가는 모습. 연합뉴스

박 전 교수는 세척액 제품을 새로 바꿨다가 지난해 12월 직원 16명이 급성 간중독을 일으킨 두성산업 역시 ‘목적이 실종된 안전관리’를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작업환경 측정의 형식적인 횟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회사가 평소에 쓰는 화학물질 성분이 뭔지, 위험성을 평가해야 할 만한 물질은 없는지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게 중요한데 그저 법이 정한 독성물질이 없는지만 골라내기 바쁘다 보니 문제를 조기에 발견하지도 못하고 노동자도 ‘몸이 왜 나빠졌지’ 한다”고 말했다.

노동자 위험 교육도 마찬가지다. 사업주들이 유해성분을 표기한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를 작업장에 비치하긴 하지만 복잡한 화학성분 내용 위주라 그것만으론 위험 관리 방법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자료를 비치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노동자가 자기가 쓰는 물질의 특성을 알고 관리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예를 들어 내가 쓰는 물질 중에 이건 유기용매고 이건 산인데 둘이 만나면 급격한 화학 반응이 일어날 수 있으니까 따로 보관해야겠다, 혹은 내가 만지는 이 물질은 체내에 들어가면 위험하니 작업장 안에서 뭔가를 먹지 않아야겠다, 이런 교육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우리는 그게 부재한 거예요.” 박 전 교수는 현장에서 만나는 대기업 안전관리자들이 ‘안전 교육 서명 다 받았다’고 자랑하곤 한다며 “과태료 안 무는 게 먼저다 보니 직원들이 실제 내용을 숙지했는지는 후순위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사업장에 형식주의 관행이 자리잡게 된 덴 ‘과정을 묻지 않고 결과만 따지는’ 노동부의 감독 방식도 책임이 있다고 박 전 교수는 말했다. “일단 노동부부터 법 준수 여부 위주로 감독하다 보니 사업주가 작업자 교육 잘 하고 배기장치 관리를 잘 해도 물질안전보건자료 서류 처리가 안 돼 있으면 과태료 물리는 식입니다. 이와 달리 영미권 감독 방식은 사고 예방에 있어 가장 중요한 원칙을 선별하고 그것이 평소 작업 관행에서 이뤄지는지 들여다봅니다.”

예를 들어 제조업에선 한 작업자가 기계를 정비하거나 청소하는 도중에 다른 작업자가 전원을 켜고 기계를 작동시켰다가 사고가 나는 경우가 많다. 이를 막으려면 정비 중인 기계 전원을 아예 끄고 그 열쇠를 다른 이에게 주어 관리하게 하는 ‘로토’(LockOut·TagOut) 방식이 현장에 자리잡는 것이 중요하다. 박 전 교수는 “안전 관리를 잘 하는 사업장은 사고가 나든 안 나든 평소 로토가 잘 지켜지는지 확인하고 그걸 안 지킨 날엔 사고가 안 나도 작업자에게 주의를 준다”며 “이렇게 안전 원칙을 수시로 확인하면서 작업자도 머리에 새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전 교수는 위험이 방치되는 과정을 보지 않고 결과만 질책하는 감독 방식으론 위험 요인을 숨기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국소배기장치 설치가 안 된 소규모 사업장에 가 보면 비용 탓인 경우도 있지만 공장 설계랑 안 맞아서 다 뜯어내야 하거나 기껏 설치했더니 생산이 안 돼서 되돌려놨다는 경우도 왕왕 있다”며 “정부는 비난만 할 게 아니라 ‘왜 그렇게 했을까’, ‘우리가 합리적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일까’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전 교수가 보는 정부의 역할은 사업주에게 법을 이해시켜 법 준수 의지를 끌어올리는 것이다. 그러려면 공급자 중심의 위험 전달 방식부터 바꿔야 한다. 박 전 교수는 “산재 예방 선진국인 영국의 사업장 안내 자료를 보면 사업주가 궁금해 할 만한 내용과 흔히 하는 오해, 적절한 대처 방안까지 친절하게 적혀 있어요. 반면 산업안전보건공단이 쓴 자료는 주로 ‘물질안전보건자료를 쓰라’거나 ‘작업환경측정을 주기적으로 하라’는 식의 법 의무사항 위주고 왜 그런 조처가 필요한지는 제대로 설명하지 않지요.”

최근 노동부도 방향을 틀고 있다. 단순히 법 의무 이행 여부만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장의 실제 산재 예방 역량을 파악하는 식으로 감독 접근을 바꾸겠다고 지난달 산업안전보건감독 계획에서 밝혔고 지난 16일엔 안전관리 우수사례를 수록한 ‘중대재해처벌법 따라하기’ 안내서를 내기도 했다.

박 전 교수는 “하드파워(처벌)를 쓰지 말라는 게 아니다. 소프트파워(계도)와 함께 가야 법 효과가 극대화된다는 것이고 안전 관리 역량이 부족한 소규모 사업장은 특히 그렇다”고 강조했다. “구슬(안전 수칙)은 산업안전보건법에 이미 다 있어요. 관건은 행정부가 그것을 어떻게 꿰느냐입니다.” 박 전 교수가 말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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