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양대노총 관계자들이 특별연장근로 인가확대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근로기준법 제53조(연장 근로의 제한) ④사용자는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고용노동부 장관의 인가와 근로자의 동의를 받아 제1항과 제2항의 근로시간(주 12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 다만, 사태가 급박하여 고용노동부장관의 인가를 받을 시간이 없는 경우에는 사후에 지체 없이 승인을 받아야 한다.
노동자의 동의와 사용자의 ‘특별한 사정’, 고용노동부의 인가만 있으면 근로기준법이 정한 연장근로시간 한도(주 12시간)를 늘릴 수 있는 ‘특별연장근로 인가’ 건수가 지난해 6477건으로 확인됐다. 2020년 4204건보다 1.5배 늘어난 것이다. 특별연장근로는 말 그대로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주 52시간을 넘겨 일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지만, 매년 노동부의 인가건수가 큰폭으로 늘면서 ‘예외적’이고 ‘잠정적’인 제도가 아니라 ‘통상적’이고 ‘확정적’인 제도로 굳어지고 있다. 특별연장근로 인가는 특히 노동부와 근로감독관의 재량이어서, 노동부 지침이 주 52시간 근로기준법을 무력화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가율 90%’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 ‘폭증’
2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강은미 의원(정의당)이 노동부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노동부의 특별연장근로 인가 건수는 모두 6477건이었다. 2020년 1월31일부터 시행된 근로기준법 시행규칙을 보면 특별연장근로의 인가사유는 ①재해·재난 대응을 위한 긴급조치 ②인명·안전 확보를 위한 긴급조치 ③시설·설비의 장애·고장에 따른 돌발상황 대응 ④업무량의 대폭적 증가 ⑤소재·부품·장비 연구개발로 명시돼있다.
지난해 인가 현황을 이 사유 순으로보면 ④업무량 폭증이 3865건으로 절반을 넘겼고, ①재해·재난 대응이 2059건으로 뒤를 이었다. 2020년엔 ①재해·재난 대응 1930건, ④업무량 폭증 1091건 순이었는데 순서가 뒤바뀌었다. 그만큼 업무량 폭증을 이유로 연장근로한도를 넘겨 주 52시간 이상 일한 노동자들이 많다는 뜻이다. 또한 지난해 인가건수가 6477건인데 반해 인가 받은 사업장이 2116곳이고, 1회 인가 때 22~28일 동안 연장근로를 허용해준 건수가 3536건으로 절반을 넘겼다는 점까지 더해 보면, 일부 사업장은 1년 가운데 석달 이상을 주 52시간 넘게 일한 것으로 보인다. 석달은 한 ‘분기’에 해당하는 만큼 결코 짧은 기간은 아니다. 인가 신청 10번에 9번은 인가를 받았다. 신청건수 대비 인가율은 2020년 92.6%, 지난해는 90.1%였다.
자료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강은미 의원(정의당) 제공
코로나19 대응, 주52시간 노동상한제 대응을 위해 사용되고 있는 이 제도는 안 지키면 형사처벌(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 받는 노동시간 상한을 노동부 장관(실질적으로는 근로감독관)이 인가해주면서도, 근로기준법은 물론 시행규칙에도 제도 운영의 구체적인 내용이 담겨있지 않다는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에는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노동시간 상한을 연장할 수 있으며, 사용자가 노동자들의 건강보호조치를 갖춰야 한다는 내용만 언급돼 있고, 근로기준법 시행규칙에는 ‘특별한 사정’이 무엇인지만 나열돼있다.
주 52시간을 넘겨 일할 수 있는 연장근로시간이 몇 시간인지, 한 번 인가를 받으면 며칠 동안 연장근로를 할 수 있는지, 1년 안에 받을 수 있는 인가 총량은 몇 번까지인지 등은 법령에 아무런 언급이 없다. 이는 노동자 건강권과 사용자의 근로기준법 위반 여부를 판단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인데도 법령에선 빠져있는 것이다.
노동부 감독관이 늘렸다 줄이는 ‘노동시간 상한’
그렇다면 노동부는 이 제도를 어떻게 운영하는 것일까? 노동부의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 설명자료’에 그 구체적인 내용이 담겨있다. 인가를 통해 연장할 수 있는 노동시간은 최대 주 12시간으로, 1주에 52시간을 더해 주 64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 인가 사유 ①~②는 1회 최대 인가기간을 4주로 하되 ‘사유 해소에 필요한 기간’ 동안 제한 없이 인가받을 수 있다. ③~④는 1회 4주, 연간 90일까지 쓸 수 있고, ⑤는 1회 3개월까지 쓸 수 있지만, 연장도 가능하다. 노동부 지침 대로라면 ①~②과 ⑤의 사유라면 주 52시간 노동상한제의 ‘무풍지대’가 되는 것이다.
자료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강은미 의원(정의당) 제공
노동부 내부 지침에 불과하다보니 제도를 바꾸기도 쉽다. 2020년 1월부터 ③~④ 사유를 1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한도(연간 한도)를 90일로 정해놨다가, 그해 7월 상반기 연간 한도를 ‘리셋’해줬다. 업무량 폭증을 사유로 1년에 6개월 동안 64시간까지 일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지난해 10월에는 연간 한도를 150일로 바꿔줬다가 올해 1월부터는 다시 90일로 원상복구됐다.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의 연간 한도는 탄력적·선택적근로시간제의 ‘정산기간’과 비슷한 의미를 가진다. 탄력·선택근로제는 정산기간을 평균해 주 근로시간을 52시간이 넘지 않도록 하되, 1주 근로시간을 52시간을 넘겨 운영할 수 있는 제도를 말한다. 주 52시간 노동상한제 보완입법 과정에서 정산기간(3개월·6개월·1년 등)을 얼마로 할지를 두고 노동자·사용자 사이 뿐만 아니라 국회에서도 숱한 논란이 있었다. 탄력·선택 근로제의 정산기간·주 최대노동시간은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와 달리 모든 내용이 법률(근로기준법)에 규정돼있다. 그러나 노동부가 자체 지침을 통해 운영하는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는 노동부 마음대로 정하고, 바꾸고 있었던 셈이다.
더욱이 사용자로서는 탄력근로제보다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를 사용할 유인이 매우 크다. 만약 6개월 단위 탄력근로제를 사용해 3개월 동안 주 64시간씩 일하게 한 경우, 나머지 3개월은 주 40시간만 일해야 한다. 하지만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를 사용해 3개월 동안 주 64시간씩 일한 뒤, 나머지 3개월 동안 주 52시간씩 일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아울러 탄력근로제는 과반수노조나 근로자대표의 서면합의가 필요하지만,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는 개별 노동자의 동의만 있다면 사용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는 “업무량 폭증과 연구개발은 근로기준법이 말하는 ‘특별한 사정’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사정에 불과한데, 법 취지를 일탈해 노동부 장관이 시행규칙에 포함한 것으로 보인다”며 “예상하기 어려운 특별한 사정 발생시 최소한으로 (노동시간 상한 연장을) 인정하려는 법 취지를 넘어서서 노동부 장관이 연장시간, 기간을 마음대로 길게 설정하고 이를 늘렸다 줄였다하고 있는 것도 법취지를 벗어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노동부는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 관련 사항을 시행규칙이 아닌 ‘법률’로 상향하는데 반대 입장을 보인 것으로 나타난다. 2020년 12월8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법률소위원회에서는 특별연장근로 인가 때 사용자가 노동자들에 대한 건강보호조치를 의무화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논의되고 있었다. 당시 회의록을 보면,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특별연장근로의 인가 사유인 “‘특별한 사정’이 명확성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며, ‘특별한 사정’의 예시를 법률에 규정할 필요성을 언급한다. 이에 대해 박화진 노동부 차관은 “시행규칙을 법률로 상향하는 것은 (노동부도) 생각을 해봤는데, 탄력·선택근로 등 유연한 근무제도에 대한 우려들이 노동단체에서 있기 때문에, 이것(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은 그냥 시행규칙 정도로 가고, (법률로) 상향하게 되면 이것을 에이(A)로 바꾸자, 비(B)로 바꾸자 하는게 있을 수가 있고 해서 주저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시행규칙의 규정을 법률로 올리면 노동단체들이 문제삼는 등 ‘이슈화’되는 걸 우려했다는 얘기다.
법령이 아니라 노동부 자체 지침에 따라 운영된다 하더라도, 시행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 수는 있다. 노동부는 지난해 10월 특별연장근로 연간 인가 총량을 90일에서 150일로 확대하면서 “특별연장근로 인가기간을 일부 확대하더라도 크게 오남용되는 부작용은 없을 것이며, 근로감독관이 인가사유를 엄정하게 판단하고 있고, 노동자 건강보호보처 의무가 있으며, 특별히 법 위반이 문제가 된 적도 없다”고 밝힌바 있다. 실제로 노동부는 2020년 이후 3차례에 걸쳐 사업장 110곳을 대상으로 점검했는데 인가기준 위반사항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유독성 세척액을 별다른 안전조치 없이 사용해 노동자 16명이 급성간중독 판정을 받아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두성산업은 특별연장근로 인가를 받고 1주에 81시간씩 일을 시킨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2020년 1월 특별연장근로 인가 사유가 근로기준법 시행규칙 개정을 통해 확대되기 이전까지는 인가 사유가 ‘재해·재난에 준하는 사유’로만 한정돼 있었다. 때문에 2015~2017년 특별연장근로 인가 건수는 3년동안 25건에 불과했고, 2018년에도 204건에 그쳤다. 그러나 주52시간 노동상한제 도입 이후 경영계 등에서 보완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빗발쳤고, 그 유력한 ‘보완책’으로 탄력근로제 정산기간 확대가 거론됐지만, 입법 논의가 지연되면서 정부가 ‘잠정적 보완대책’으로 시행된 것이 특별연장근로 인가사유 확대였다. 인가사유 확대가 ‘잠정적 보완대책’이라는 언급은 당시 2020년 1월31일 노동부 보도자료에도 명시된 내용이다. 탄력근로제 정산기간 확대를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어 지난해 4월부터 시행됐으니, 노동부는 ‘잠정적 보완대책’을 ‘원상복구’ 시키는 것이 정상인데도, 노동부는 오히려 제도 활용을 권고하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잠정적 보완대책으로 시행됐다 할지라도 현재 상황에서 필요하다면 유지될 수 있는 제도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동부 마음대로’ 운영할 수 있는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는 ‘노동시간 유연화’를 강조하고 있는 윤 당선자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 더 확대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여소야대 국회상황에서 윤 당선자의 뜻대로 근로기준법이 개정될 가능성이 매우 낮은 상황이라, 법 개정이 필요없는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가 ‘노동시간 유연화’의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윤 당선자는 후보시절 신규 설립 스타트업을 특별연장근로 인가 대상에 포함하겠다는 공약을 내놓기도 했다.
주 52시간 노동상한제 시행과 그 보완대책 마련을 통한 입법논의는 상당한 시간을 거치면서 많은 논란을 겪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건강을 위해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노동시간 상한제도가 아무런 사회적 논의 없이 노동부 마음대로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역설적이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