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씨는 2017년 7월 다니던 정보통신(IT) 업체에서 운영 관련 업무를 하다 중점 과제를 관리하고 기획을 책임지는 간부로 승진했다. 그 뒤부터 업무량이 폭주했다. 하루에 12시간 이상, 1주일에 60시간 넘게 일을 해야 했다. 아침 8시20분쯤 출근해 늦으면 밤 11시나 자정께 퇴근했다.
배우자한테는 “내가 거의 매일 가장 늦게 퇴근한다. 밤엔 사무실 불을 꺼 핸드폰 불빛으로 업무를 본다”고도 얘기했다. 또 본부의 일처리 방식이 너무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이어서 힘들다고 호소했다. 일이 너무 힘들어 본부장한테 보직 변경을 요청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ㄱ씨는 끝내 2019년 3월 집 화장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됐다. 지난해 근로복지공단 질병판정위원회는 ㄱ씨 죽음이 업무상 사망이라며 산업재해임을 인정하고 유족한테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지급하라고 판단했다.
ㄱ씨처럼 과로와 직무 스트레스 등을 이유로 스스로 세상을 등진 이들 유족이 산재를 신청하고 승인받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와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실이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최근 3년간 산재 신청 자료를 분석해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자살로 인해 산재를 신청한 경우는 2019년 72건에서 지난해 158건으로 갑절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산재로 인정받은 사례는 2019년 47건에서 2021년 88건으로 늘었다.
직장갑질119가 최근 3년간 유족이 산재 신청을 해 승인받은 196건 가운데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자료를 받은 161건의 업무상 질병 판정서를 분석한 결과, 노동자들을 극단적인 선택으로 몰고 간 가장 큰 사유는 ㄱ씨 사례와 같은 과로였다. 전체 161건 가운데 과로로 인한 죽음은 58건(중복 사유 포함)으로, 161건 가운데 36%에 이르렀다.
그다음으로는 징계 및 인사처분(52건, 32.3%)이었고 직장 내 괴롭힘도 48건으로 29.8%나 됐다. 폭행(7건, 4.4%)과 성희롱(4건, 2.5%)이 뒤를 이었다.
이러한 산재 신청 및 승인 건수가 늘어난 것은 과로와 직장 내 괴롭힘 등이 노동자를 죽음에 이르게 할 정도로 심각한 사회 폭력이라는 인식이 강화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최승현 노무사는 “과로와 징계 및 인사처분, 직장 내 괴롭힘 등이 동시에 (산재 원인으로) 중복 작용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직장 내 괴롭힘이 다른 사건, 자살 요인들과 연계돼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산재 자살 피해는 근속연수가 짧을수록 더 집중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숨진 이들 절반(50%)이 5년 이하 근무자였다. 과로로 인한 사망의 경우 전체 58건 가운데 근속 5년 이하인 이가 37명으로 63%에 달했다. 범위를 근속 10년 이하로 넓히면 44명(75%)에 이른다. 직장 내 괴롭힘 피해 사망자 56.3%(27명)도 근속한 지 5년을 넘기지 못했다.
보고서는 “고인의 유족이 (배우자나 자식이 아니라) 부모인 경우가 22%나 되는 것으로 보아 자살 산재 노동자 중 젊은 노동자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며 “직장에서 근속연수가 짧고 젊은 노동자에 대한 특별한 보호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직장갑질119와 용혜인 의원실은 자살 산재 피해 현황과 대책을 논의하는 토론회를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연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전문가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전종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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