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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김훈 기고] 1명의 죽음은 가볍고 2명은 죽어야 무거운가

등록 2023-01-25 19:00수정 2023-01-26 15:40

중대재해법 1년 김훈 기고
다중촬영된 서울 청계천 버들다리 전태일 열사의 동상과 친필 일기장. 공동취재사진
다중촬영된 서울 청계천 버들다리 전태일 열사의 동상과 친필 일기장. 공동취재사진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오는 27일 시행 1주년을 맞는다. 노동계는 법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다고, 재계는 법이 산재 사망을 줄이는 효과가 없다고 논쟁을 계속하고 있다. 일터에서 일하다 죽거나 다치는 산업재해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온 김훈 작가가 기고글을 보내왔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한 사고를 ‘중대산업재해’로 규정하고 있다. 처벌과 제재의 절차와 수준은 이 규정에 따른다.

재계는 지금 이 ‘1명 이상’의 규정을 ‘2명 이상’으로 바꾸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재계가 이 요구를 끝까지 밀어붙여서 법률 개정을 관철할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 같은 요구를 공공연히 제기하게 되는 재계의 의식 상태는 산업재해 문제를 개선하기가 이토록 불가능에 가깝게 어려워진 배경을 선명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지난 2019년 12월7일 `김용균 1주기 추모위원회' 주최로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추모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촛불과 손팻말을 들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지난 2019년 12월7일 `김용균 1주기 추모위원회' 주최로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추모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촛불과 손팻말을 들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1명 이상’을 ‘2명 이상’으로 바꾸어 달라는 요구에는 노동자의 생명을 오로지 비용 항목의 숫자로 표시되는 사물로 인식하고 죽음을 물량화해서 회계 처리하는 인간관이 깔려 있다. 1명이 죽어서 가벼운 것이 아니고 2명이 죽어서 무거운 것이 아니다. 말하기도 참담한 일이지만 1명씩 죽는 사고가 날마다 여기저기서 거듭 발생하고 이렇게 1년 내내 죽어나가니까 해마다 누적 사망자가 2000명이 넘고 2200명이 넘게 되었다.

1명씩 죽는 각개의 죽음은 책임질 필요 없이 사소한 것이며, 노동자의 죽음은 기업의 이윤추구를 가로막는 장애가 될 수 없다는 인식이 이런 요구를 거침없이 들이댈 수 있게 한다. 이 철벽에 막혀서 산재 사망 사태는 한 걸음도 개선될 수 없었다.

정부의 통계에 따르더라도 지난해 산재 사망 사고 중에서 2인 이상의 사망 사고는 전체의 3%였다. 그래서 ‘2인 이상’만을 중대산업재해로 규정한다면 기업은 노동자 사망 사고의 97%에 대해서는 책임을 면탈하게 된다.

대기업이 온 국민을 먹여 살리고 있음으로 대기업은 중소기업과 하청업체, 협력업체와 노동자들보다 우월적 지위에 있고, 대기업의 이윤추구와 자유경쟁에 방해가 되는 장애물을 제거하면 대기업의 이윤이 많아져서 일자리가 늘어나고 고용이 안정되고 급여가 많아져서 살기 좋은 낙원이 된다는 주장은 매우 정돈된 논리를 과시하면서 이 사회의 신앙의 자리에 올라 있지만, ‘신의 섭리’를 닮은 이 논리를 세상의 고통스러운 구석구석에 획일적으로 적용할 때 경제학은 미신이 된다. 세상은 과학처럼 그렇게 단순하고 선명하지 않다.

‘1인 이상’을 ‘2인 이상’으로 바꾸자는 요구는 이 미신을 법제화하자는 것이다.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혼자 수리하다 숨진 김군의 5주기 다음날인 2021년 5월29일, 서울 광진구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 김군을 추모하는 포스트잇이 빼곡하다. 연합뉴스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혼자 수리하다 숨진 김군의 5주기 다음날인 2021년 5월29일, 서울 광진구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 김군을 추모하는 포스트잇이 빼곡하다. 연합뉴스

중대재해처벌법은 지난 1년 동안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일하다가 죽는 사망 사고는 오히려 늘어났고 책임 있는 기업주들은 처벌받지 않았다. 정부와 기업은 법의 정신을 구현하려는 의지가 애초부터 없었고 사법당국은 법을 적극적으로 적용하지 않았다. 기업은 안전 확보를 위해서 투자하지 않았다. 기업은 자신을 사법적으로 보호하기 위해서 법률 비용을 증대시켰고 이미 작동되지 않는 법을 아예 사문화하기 위해서 정관계를 상대로 로비를 전개해왔다.

이 로비는 매우 성공적이어서 정부는 법의 근간을 부수는 ‘개선’ 작업을 시작했다. 이 ‘개선’의 방향은 처벌이 아니고 ‘자율규제’라고 정부는 말했다. 처벌 대상과 처벌 수준, 제재 방식도 ‘개선’하겠다고 정부는 밝혔다. 이 법이 ‘개선’되면 ‘1인 이상’에서 ‘2인 이상’으로는 액면 그대로는 아니더라도 법조문의 여기저기서 실제적으로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2019년 4월28일 오전 경기도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에서 열린 청년노동자 고 김용균 동지 묘비 및 추모조형물 제막식에서 어머님 김미숙씨가 고 김씨가 살아생전 태안화력발전소 안에서 자전거 타던 모습을 형상화한 추모조형물을 바라보며 눈물 흘리고 있다. 남양주/백소아 기자
2019년 4월28일 오전 경기도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에서 열린 청년노동자 고 김용균 동지 묘비 및 추모조형물 제막식에서 어머님 김미숙씨가 고 김씨가 살아생전 태안화력발전소 안에서 자전거 타던 모습을 형상화한 추모조형물을 바라보며 눈물 흘리고 있다. 남양주/백소아 기자

‘산업재해’는 우아한 사자성어로 표현되는 관념의 사태가 아니다. 이것은 밥벌이를 하러 일터에 나간 사람들이 물체에 끼여서 몸통이 으깨져서 흩어지고(구의역 참사), 머리와 몸통이 분리되어서 석탄가루에 범벅이 되고(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참사), 고공에서 일하던 사람이 떨어져서 장기와 뇌수가 땅바닥에 쏟아지는 야만의 현장이다. 죽음을 겨우 모면한 사람들도 평생의 불구가 되어 생업으로 복귀하지 못하고 절망 속에 버려져 있다. 1인 이상을 2인 이상으로 바꾸어 달라는 세력을 향해서 ‘자율규제’로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정부의 태도는 그야말로 ‘자율적’이다.

산업재해와 사망 사고는 한국 기업의 불치의 풍토병으로 고착되었고 이윤의 미신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이 풍토병은 광범위하게 확산돼왔다. 기업 내부에서 스스로 자라나는 기업가 정신에 의해서 이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란다는 것은 물정 모르는 소망으로 보인다.

이것은,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젊은이들이 바랐던 나라의 모습이 아니다.

1970년 11월13일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 앞길에서 전태일은 불꽃으로 몸을 태우면서 외쳤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노예적 노동현실을 혁파하려는 젊은이가 오히려 ‘준법’을 절규하며 죽어야 했던 것은 그 시대의 비극적 역설이다. 나는 그의 죽음으로부터 반세기 후에, 그의 역설을 흉내내서 말한다.

―중대재해법을 지켜라.

전태일은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또 외쳤다.

―나의 죽음을 헛되이 말라.

그의 외침을 흉내내서 다시 말한다.

―수만명 노동자의 죽음을 헛되이 말라.

김훈 작가

지난 2019년 5월27일 오전 서울 종로 전태일기념관에서 열린 ‘위험의 외주화 금지 약속 파기 규탄 및 산업안전보건법 하위법령 개정 촉구 청년, 시민사회단체 공동 기자회견’에서 생명안전시민넷 공동대표 김훈 작가가 발언을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지난 2019년 5월27일 오전 서울 종로 전태일기념관에서 열린 ‘위험의 외주화 금지 약속 파기 규탄 및 산업안전보건법 하위법령 개정 촉구 청년, 시민사회단체 공동 기자회견’에서 생명안전시민넷 공동대표 김훈 작가가 발언을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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