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 서울 종로 전태일기념관에서 열린 '노동개혁, 어디로 가야 하나'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윤석열 정부가 정규직-비정규직 간 양극화와 임금 격차 등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주범으로 노동조합을 지목하며 이른바 ‘노동개혁’을 추진하고 있지만, 실제 임금 결정에 미치는 영향은 대기업이 노조보다 7배가량 크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노조는 2018년 이후 5년간 한국 사회의 임금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 기여한 반면 대기업은 되레 강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중소기업의 착취 문제 등 경제민주화는 손대지 않고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원인을 오로지 노조에만 돌리는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 방향이 틀렸다는 지적이다.
<한겨레>는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에서 한국산업노동학회(회장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와 함께 ‘노동개혁, 어디로 가야 하나’ 토론회를 열었다. 노동전문가들은 이 자리에서 취약 노동계층을 보호하는 대신 장시간 노동, 파견 확대, 실업급여 축소 등을 추진하는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바람직한 노동개혁의 방향을 모색했다.
안정화 한국고용노동교육원 교수는 이날 발제에서 “임금에 영향을 미치는 대기업, 학력, 성별, 노동조합, 비정규직, 숙련 등 10개 변수를 표준화해서 볼 때 300인 이상 대기업은 표준화계수가 0.1933으로, 노동조합의 0.0273에 비해 7배 큰 것으로 나타났다”며 “임금 불평등이 노조보단 기업 규모에 의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대기업의 초과 이윤이 가치의 불평등한 분배를 낳고, 기업 규모가 임금, 이윤, 기술을 결정하는 주요 요인이라는 지적이다.
이런 대기업의 영향력이 임금 불평등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한다는 결과도 제시됐다. 대기업이 임금 불평등(지니계수)에 미치는 영향은 2003년 0.0539에서 2022년 0.0680으로 늘었다. 안 교수는 “대기업이 임금 불평등을 증가시키고 있으며, 지난 20년 동안 큰 변화 없이 완만히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노동조합은 최근 5년간 임금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나타났다. 안 교수는 “앞선 연구를 볼 때 2008년 금융위기 이전 노조는 임금 불평등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영향을 끼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 이후엔 완화 또는 심화를 오갔다”고 짚었다. 이어 “2018~2022년까지는 임금 불평등을 완화하는 모습을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볼 수 있다”며 “이는 소득 중상층(3~6분위)의 노조 조직률 증가와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저임금 노동자를 노조 조합원으로 가입시키는 전략조직화 사업을 벌이고, 문재인 정부 시절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했다.
다만 앞으로도 노조의 임금 평준화 효과가 지속될지는 불확실하다. 안 교수는 “여전히 다수 노동자가 노조로 조직되지 못하고 있고 조직노동의 주변부 노동자 이해 대변이 왜소하다는 점에서 단언하기 어렵다”고 짚었다. 2007년 40개 산별노조(산업별노조) 조합원 73만9395명에서 2019년 155개 산별노조 조합원 133만775명으로 전체 조합원 253만9652명의 절반가량이 산별노조로 조직되고 산별노조의 임금 평준화 효과가 유의미하게 나타나기도 했으나(김정우, 2022), 여전히 산별교섭이 기업 수준으로 분권화돼 산별노조 역할을 하지 못하는(안정화, 2022b) 등 미완성의 상태로 남아 있는 점도 불확실성을 높였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노동자가 노동자를 착취하고, 노조가 노동시장 이중구조 발생의 근거지인 것처럼 호도하는 방식의 윤석열 정부 노동개혁 방향에 대한 우려가 컸다. 정부와 노동계가 나서 임금 격차를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산별교섭을 활성화하고 이를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 대체로 의견이 모였다. 안 교수는 “원자화된 노동시장이 불평등의 완화를 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노조처럼 집단적 이해를 형성하고 이를 조절하는 방식의 대안을 찾아나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전종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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