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한동훈 법무부·원희룡 국토부 장관, 윤희근 경찰청장, 권기섭 노동부 차관 등으로부터 건설현장 폭력 현황과 실태를 보고받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건설현장의 갈취, 폭력 등 조직적 불법 행위에 대해 검찰, 경찰, 국토교통부, 고용노동부가 협력해 강력하게 단속하라”고 지시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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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초, 광저우를 거쳐 홍콩으로 가던 길에 선전에 잠시 들른 적이 있었다. 도시에 다다르자 곧장 폭스콘 관란 캠퍼스로 향했다. 이름만 캠퍼스지, 학교는 아니다. 아주 거대한 공단이다. 이 공장이 어떻게 생겼는지 눈으로 보고 싶었다.
2010년 폭스콘에선 노동자 18명이 잇달아 자살 시도를 했고, 최소 14명이 사망했다. 1명은 영구 장애를 입었고, 3명의 생사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 공장의 잔혹한 역사와 착취 구조에 대해서는 단행본 <아이폰을 위해 죽다>(나름북스)가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시진핑의 ‘흑악세력’, 노동운동가
폭스콘은 아이폰과 아이패드 등 애플 제품을 생산하는 주문자상표부착(OEM) 제조기업이다. 미국제 게임기 부품 등을 생산하던 대만 기업 훙하이정밀공업이 개혁개방의 파도에 몸을 실어 사세를 확장했다. 1988년 당시 고작 150명의 농민공이 일했던 폭스콘은 30년 만에 90만명이 일하는 세계 최대의 ‘착취 공장’이 됐다.
워낙 큰 공장이다 보니 공장 안팎엔 기숙사 건물도 많았다. C구역은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곳인데, 담장 바깥엔 농민공들이 집단 거주하는 성중촌이, 공장 안엔 닭장 같은 기숙사 건물들이 빼곡하게 세워져 있었다. C1 출입구 바로 안엔 14층짜리 기숙사 건물이 있었는데, 창가엔 노동자들의 옷 빨래가 수북하게 널려 있었다. 10평도 채 되지 않는 방 하나에 노동자 8~16명이 잔다. 건물 옥상엔 3.5미터 정도 높이의 철망이 세워져 있었는데, 이는 예기치 못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2010년, 바로 이 옥상에서 노동자들이 하나둘씩 뛰어내렸다.
2010년 연쇄 자살 사건이 일어났을 때만 해도 중국 노동자계급의 열악한 노동권은 조금씩 개선될 것처럼 보였다. 그해 5월 난하이혼다를 비롯한 여러 공장에서 연쇄적으로 발생한 파업의 물결은 신세대 농민공들에게 자신감을 안겨줬다. 턱없이 낮았던 농민공들의 임금을 크게 상승시켰고, 자신감 넘치는 노동운동가들을 등장시켰다. 황원하이 감독의 다큐멘터리 <흉년지반>을 보면, 20
지난해 8월5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 폭스콘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코로나19 검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AP 연합뉴스
16년께 활발하게 활동하는 이 활동가들의 빛나는 눈동자와 만날 수 있다.
불행히도 중국 노동운동의 황금기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2017년 가을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사상”을 천명한 시진핑은 “물질문화에 대한 수요 증가와 낙후된 생산력 간 모순”을 “생활에 대한 수요와 불균등하고 불충분한 발전 간 모순”으로 규정했다. 화려한 수식으로 가득하지만, ‘노동해방’ 같은 지향은 사라지고, ‘시진핑’이라는 이름 석자만 남았다. 2015년 12월부터 이듬해까지 광둥성의 적지 않은 노동운동가들이 체포된 사실은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기이한 모순을 방증한다. 이들은 단지 임금을 체불당하거나 해고당한 농민공들을 위해 헌신하고, 그들에게 합법적으로 싸우는 방법을 알려줬다는 이유만으로 범죄자가 됐다. 공안당국은 이들이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흑악세력”이라고 치부해버렸다. 여기서 흑악세력이란 흑사회, 즉 범죄조직을 일컫는다. 중국에서 노동운동가들이 이따금 체포되는 일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처럼 대대적인 색출이 이뤄진 것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2019년 1월 나는 폭스콘 공장 앞에서 우악스러운 문구가 적힌 펼침막을 봤다. “흑악세력 퇴치”를 주창하는 문구였는데, 그 시기 노동운동을 향한 대대적 공격과 겹쳐져 섬뜩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2018년 7월 선전의 자스커지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조건과 비인간적 대우에 맞서 공회(노동조합) 설립을 요구하며 투쟁을 시작했는데, 이는 10여개 학생운동 동아리들까지 연루된 대형 사건으로 번졌다. 이 사건으로 인해 130여명이 체포됐으며, 일부는 여전히 감옥에 있다. 폭스콘 공장 앞에 갔을 때에는 이미 100명 이상이 구속된 상황이었는데, 농민공들의 소박한 요구마저 ‘범죄’로 취급하는 상황을 보며, 중국의 통치자들이 노동운동에 대해 매우 강압적으로 돌변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2018년 1월 중국 정부는 “범죄와의 전쟁(扫黑除恶, 소흑제악) 3년”을 선포했다. 이에 따라 대대적인 범죄 소탕 작전에 돌입했는데, 불과 1년 사이에 1만4226건을 기소하고 7만9천여명을 처벌했다. 여기엔 마약이나 총기 소지, 강도 같은 형사범죄가 다수를 차지하지만, 법적 보호망이 없어 어쩔 수 없이 파업이나 거리 시위를 통해 문제를 제기해야 했던 노동운동가들도 포함된다. 2019년 각급 정부가 배포한 문답형 자료에 따르면, “흑악세력 불법행위”에는 공공장소에서의 불법적인 모임과 시위 등도 해당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비단 노동운동에 국한되지 않는데, 가령 티베트와 신장 지역에서 강화된 통제 역시 국가권력 바깥의 저항을 강하게 짓누르고자 하는 ‘범죄와의 전쟁’ 기조와 맞닿아 있다.
이처럼 중국의 통치 엘리트들이 ‘사회안정’을 절대적인 가치로 내세우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1990년대 시장개혁 이후 중국의 모든 경제활동은 자본 축적의 원리로 이루어진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경과하며 고속성장이 끝난 이후, 중국은 과잉생산과 부채의 늪에 빠졌다. 전반적인 영업이익률이 하락한 상황은 노동에 대한 국가자본의 공격을 유발했다. 농민공들이 단결해 임금 인상이나 일자리를 요구하다 보면 통치자들과 자본의 안정성을 위협받는다고 여기기 때문에 정부가 나서서 노동운동에 대한 진압을 불사한 것이다.
윤석열식 ‘건폭’ 발언 어떻게 설명할까
최근 윤석열 정부가 노동조합을 향해 연일 비난과 탄압의 칼을 휘두르고 있다. 건설노조한텐 ‘건폭’이라는 말까지 들이밀고 있는데, 유니언숍과 클로즈드숍 등 노조 형태를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에 근거한다. 건설 현장은 여러 단계의 하도급으로 고용이 이뤄지는 만큼, 노동조합이 자신의 역할을 하지 못할 때 노동자들의 처지가 벼랑 끝으로 추락할 수 있다. 노조가 조합원들의 고용을 강하게 요구하고 투쟁까지 불사하는 것은 ‘노동조합’이기 때문에 지극히 당연한 실천이다. 어쩌면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왜 노동조합이 필요한지 알려주는 중요한 사례라 할 수 있겠다.
만약 윤석열 대통령이 건설 노동자의 생존이 아니라, 건설 자본의 배를 불리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확신하고 있다면, 건설노조를 향해 ‘건폭’이라고 몰아세우는 그의 행위에서 시진핑의 ‘흑악세력’ 몰아세우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시진핑이 자신의 통치 안정성을 위해 사회운동이나 소수민족을 범죄화했다면, 윤석열도 마찬가지인 셈이다. 이를 무엇이라 설명해야 할까? 나는 아직 “윤석열의 시진핑화”라는 말 외에 다른 말을 찾지 못했다.
동아시아 연구활동가. 플랫폼C 활동가. 동아시아 이야기를 씁니다. 각 사회의 차이를 이해하고, 같은 꿈을 지향하자(異牀同夢)는 의미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상을 품은 동아시아의 꿈(理想東夢)이라는 뜻도 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