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6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연장근로 시간을 늘려 최대 주 80.5시간(7일 근무 기준·6일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 ‘근로시간제도 개편 방안’을 발표한 뒤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국제사회는 장시간 노동으로 매년 수십만명이 죽음에 이르고 있어 국가가 이를 예방할 수 있는 법·제도를 마련하라고 권고하는데, 한국 정부는 국제 기준(글로벌 스탠다드)을 역행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노동기구(ILO)는 2021년 공동으로
장시간 노동에 따른 전 세계 인구의 인명피해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해당 논문을 보면 2016년 한해 주당 55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허혈성 심장질환과 뇌졸중으로 사망한 사람이 74만5천명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2000년(58만명 사망)에 견줘 16만5천명 늘었다. 연구진이 주 35∼40시간 일한 노동자와 주 55시간 이상 일한 노동자의 심장질환·뇌졸중 사망 위험을 비교한 결과 각각 17%, 35% 높았다.
과로가 노동자의 사망으로 이어지는 경로는 두 가지로 분석된다. 첫째는 스트레스 호르몬을 과다 유발해 신체에 직접 손상을 입히는 것, 둘째는 스트레스가 흡연·음주·수면 부족 등 건강하지 않은 생활습관을 유발해 간접적으로 건강을 해치는 것이다.
WHO와 ILO는 공동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정부와 고용주, 노동자 단체에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노동 시간 제한을 설정하고, 휴게시간과 유급휴가 등 노동자 보호 방안을 담은 법 제도를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ILO는 “근무시간을 주말이나 야간으로 옮기는 등 유연하게 조정하더라도 노동자의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아야 한다”고 했고,
WHO는 “노동자의 근무시간이 주 55시간을 넘지 않아야 한다”고 권고했다.
근로복지공단이 펴낸 자료를 보면, 2016년 한국에선 577명이 과로로 인한 뇌·심혈관계 질병으로 숨져 산업재해 승인을 신청했다. 이 중 150명(산재승인률 26%)이 산재를 인정받았다. 산재 승인률이 낮았던 것은 당시 고용노동부의 고시(뇌혈관 질병 또는 심장 질병 및 근골격계 질병의 업무상 질병 인정 여부 결정에 필요한 사항)가 과로 기준을 주 60시간(발병 전 12주)으로 높게 설정했기 때문이다. 노동부는 2018년 이 기준을 52시간으로 낮췄고 이후 산재 승인률은 40.75%(2020년)까지 높아졌다. 2020년엔 670명이 과로로 숨져 산재를 신청했고, 273명이 산재로 인정받는 등 과로로 숨지는 노동자는 늘고 있다. 법정 노동시간 감소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선 노동자의 건강을 외면한 장시간 노동이 만연함을 방증한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는 건강을 위해 노동 시간을 제한하는 기준이 “고도화되는 산업과 직업, 다양화된 근로자의 수요를 반영하지 못하고 기업의 혁신과 개인의 행복추구를 방해”한다며 주 69시간(최대 80.5 시간)까지 늘리려 하고 있다. 정부는 개편안이 시행되면 일시적으로 장시간 노동을 할 수 있지만, 연장근로 시간을 총량으로 관리하기 때문에 쉴 때 더 길게 쉴 수 있다고 주장한다. 1년을 놓고 보면 노동시간이 주 48.5시간을 넘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장시간 노동뿐만 아니라 불규칙한 노동시간도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미국 산업 의학 저널에 게재된 논문을 보면, 뇌심혈관질환으로 산업재해 인정을 받은 노동자 1042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발병 전 1주일 노동시간이 발병 전 8∼30일에 견줘 10시간 늘어나면 뇌심혈관질환 위험이 1.45배 늘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이은혜 연구원의 분석에서는 주 52시간을 넘지 않더라도 노동시간이 불규칙하면 노동자의 불안 장애가 5배까지 많이 발견될 수 있었다.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김형렬 교수는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장시간 노동을 하지 않는 노동시간 유연화는 불가능하다”며 “노동시간 유연화는 장시간 노동 문제와 불규칙한 노동시간 문제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직업환경의학전문의)는 <한겨레>에 “노동자가 건강을 해치면서 장시간 일하지 않도록 감독하고 보호해야 할 정부가 초과 노동을 법적으로 허용하겠다고 나선 것”이라며 “WHO와 ILO가 권고하는 상한 노동시간(주 55시간)을 훌쩍 넘는 주 69시간 근무를 가능하게 하면서 국제기준, 노동자의 건강권 운운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이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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