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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발표→논란→보완…윤석열표 ‘노동개혁 1호’ 우왕좌왕, 왜?

등록 2023-03-15 05:00수정 2023-03-15 13:14

‘노동시간 개편’ 입법예고 일주일 만에 재검토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과 대통령실 안상훈 사회수석 김은혜 홍보수석이 지난달 2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노조 회계 공개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과 대통령실 안상훈 사회수석 김은혜 홍보수석이 지난달 2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노조 회계 공개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4일 윤석열 대통령은 “입법예고 기간 중 표출된 근로자들의 다양한 의견, 특히 엠제트(MZ) 세대의 의견을 면밀히 청취해 법안 내용과 대국민 소통에 관해 보완할 점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윤석열표 ‘노동개혁’ 중 처음으로 근로기준법 개정안으로 구체화한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개편방안)이 지난 6일 입법예고 일주일여 만에 재검토 수순에 놓였다. 과로와 장시간 노동을 부를 수 있는 일터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개편방안을 설계해 보통 직장인들의 분노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이를 의식한 윤 대통령의 보완 지시를 계기로, 노동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하는 전문가 중심의 노동개혁 추진을 돌아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개편방안엔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확대해 한주 노동시간을 최대 52시간에서 최대 80.5시간(주 7일 기준, 주 6일 기준 69시간)까지 늘릴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 외 주요 방안 대부분을 지난해 12월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내놓은 권고문에서 가져왔다. 노동시장 개혁을 위한 전문가 논의 기구를 표방한 미래노동시장연구회는 학자(교수) 12명으로만 꾸려졌다. ‘집중해서 일하고 쉴 때 몰아서 쉰다’는 개편방안의 핵심 내용은 대선 후보 시절 “주 120시간 바짝 일해야 한다”는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던 대통령 뜻에서 출발해 전문가 위원회를 거쳐 정부의 법 개정안으로 확정된 모양새다.

이런 과정에서 이해 당사자인 노동자 의견이 소외되면서 직장인들이 이미 있는 연차 휴가도 쓸 수 없는 현실이나, 제도가 구현될 복잡한 노동 조건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부는 임금체계 개편(상생임금위원회), 노조 회계 투명성 등 노동관행 개선(불합리한 노동관행 개선 전문가 자문회의)과 같은 다른 ‘노동개혁’ 의제 역시 노동 현장을 대변할 당사자 참여가 거의 없는 전문가 위원회에서 개편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① 비현실성에 분노

정부 발표에 대한 ‘직장인의 분노’는 우선 전문가 논의를 바탕으로 만든 개편방안이 “비현실적”이라는 데 집중됐다. 법으로 보장된 휴가조차 누리지 못하는 현실에서 ‘몰아 쉬기’는 구현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연차휴가를 쓰기 위해 상사를 안마해 기분을 맞추고’, ‘직장생활 몇 년 차냐며 모욕을 겪는’ 사례가 공감을 얻었다. 제도가 구현되기 어려운 다양하고 열악한 ‘현실 일터’는 법 개정안 마련 과정에 반영되지 못하고, 입법예고 이후에야 거센 여론으로 분출됐다.

정부는 입법예고에 앞서, 지난 2월 24일 ‘근로시간 제도 개편 대국민 토론회’를 열기도 했지만 이 과정에서도 폭넓은 노동 현장의 목소리는 반영되지 못했다. 당시 토론회에는 엠제트(MZ)세대 노조로 불리는 새로고침노동자협의회를 빼면 모두 학계 전문가만 참여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도 “엠제트(MZ)세대 의견을 면밀히 청취”하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현실에서 법이 보장하는 휴식권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들은 모든 세대에 걸쳐 분포된 소규모 사업장, 하청·비정규직 등이다. 최근 직장갑질119가 직장인 1천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특히 월 임금 150만원 미만(55.6%)이거나 5인 미만 사업장(49.4%)에서 일하는 경우 연차를 자유롭게 쓸 수 없다고 답한 비중은 절반에 가까웠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노동 제도는 결국 현실에서 구현돼야 하는데 전문가 논의만으로 다양하고 복잡한 노동 현장에서 벌어질 (제도 개편에 따른) 부작용이나 우려 지점을 파악할 수 없는 만큼 (법 개정안) 설계 과정에서 노동자와 대화해야 했다”며 “개편방안을 내놓은 정부의 좌충우돌은 사회적 대화의 공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말했다.

 ② 앞뒤 바뀐 정책 강조

정부는 개편방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노동자 ‘휴식권’ ‘선택권’ ‘건강권’을 위한 조처들은 대체로 장시간 노동, 건강권 침해 우려 논란이 일어난 이후 보완됐다. 지난해 6월 정부가 발표한 ‘노동시장 구조개혁 방안’을 놓고 주 최대 92시간 노동이 가능하다는 논란이 일자 뒤늦게 11시간 연속 휴식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식으로 제도 발표→논란→보완을 반복이 이어졌다. 특히 노동자의 노동시간 선택권을 보장하는 제도들은 개편방안에서도 실효성이 없거나 연구과제에 그쳐 구색 맞추기라는 비판을 받았다. 가령, 근로자 대표제의 제도화는 사용자가 선출 과정에 개입할 경우 ‘벌칙 조항’이 없어 ‘회사 편인 근로자 대표’ 문제를 해소하지 못한다. 정부 스스로 ‘선결과제’로 표현한 노동시간의 투명한 관리 또한 연구과제로 남겨뒀다. 주로 경영계의 요구로 노동시간을 유연화하는 연장근로 단위 확대 방안이 개정안에 담긴 것과 대조된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근로자 대표제를 통한 노조 없는 노동자의 협상력 강화, 포괄임금제 금지, 사용자의 근로시간 기록 의무화 같은 전제 조건이 갖춰져 직장인과 회사의 힘이 대등해져야 그나마 노사의 자율적 합의를 통한 노동시간 선택권을 얘기할 수 있다”며 “개편방안의 추진과 설명 과정은 이런 선후 관계가 완전히 뒤바뀌었다”고 평가했다.

 ③ 대세를 거스르는 개혁

정부는 개편방안이 실행되면 분기·연 단위로 사용 가능한 연장근로시간을 줄여 ‘연간 실근로시간’을 단축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주 최대 80.5시간 노동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개편방안은 ‘장시간 노동’이 횡행하던 과로사회로의 회귀로 여겨졌다. 더구나 휴가 사용의 어려움, 몰아치기 노동, 예측 불가능한 근무 스케줄에 내몰린 노동자들이 개편방안으로 ‘선택권’을 강화한다는 정부 주장에 공감하기 어렵다.

2018년 도입된 주 최대 52시간 노동제는 주 단위 노동시간 관리로 실제 노동시간을 줄여왔다. 주 52시간제 시행 전인 2017년 244만7천명에 이른 주 52시간 초과 근무 노동자는 2021년 100만1천명까지 절반 이하로 감소했고 그에 따라 연간 노동시간도 2018시간에서 1915시간으로 줄었다. 이지현 한국노총 대변인은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지향점이 대세로 자리 잡은 한국 사회에서 갑자기 저임금·장시간 노동으로 방향을 되돌린 과거 회귀적인 정책에 반발이 큰 것은 당연했다”며 “여기에는 노동자의 현실적인 목소리가 반영되지 못한 영향이 컸다”고 말했다. 

정부는 뒤늦게 개편방안에 대한 의견 수렴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다만 개편방안과 관련된 우려를 오해라고 일축했다. 이날 고용노동부는 입장문을 내어 “개편방안과 관련하여 일부 비현실적 가정을 토대로 잘못된 오해가 있다”며 “제도 개편방안의 내용과 우려하는 문제에 대해 충분히 정확하게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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