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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노동시간의 ‘자율적 결정’ 강조하는 정부…지금 한국에서요?

등록 2023-03-17 16:50수정 2023-03-17 20:47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16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에서 열린 2030 자문단과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향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16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에서 열린 2030 자문단과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향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연장근로를 하더라도 주 60시간 이상은 무리’라는 메시지를 낸 뒤 근로시간 제도개편 방안을 수정해야 할 처지에 놓인 정부가 법과 제도 개선 대신 ‘의식과 관행’을 강조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노사의 자율적 협의와 사회적 분위기로 근로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의미인데, 그동안 제도가 없거나 법 집행이 미약한 영역에서 노동 시간이 크게 늘어온 현실을 감안하면 비현실적인 인식이라는 반론이 나온다.

이번 제도개편 방안의 밑돌을 놓은 미래노동시장연구회의 좌장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는 17일 <세계일보>에 실은 칼럼에서 “장시간 노동은 제도 문제라기보다 전략적 관행의 산물”이라며 “노동시간 단축을 하고자 한다면 제도로 시간을 통제하기보다 노동 관행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도 전날 ‘2030자문단 간담회’에서 “아무리 훌륭한 제도라도 의식이나 관행이 바뀌지 않는다면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며 “노사간 힘의 균형에 입각한 집단적 자치의 확립과 조직문화의 변화가 함께할 때 지속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제도개편은 노사의 자율적인 노동 시간 결정을 확대하는 취지이며, 제도 자체보다 관행과 문화가 낳는 장시간 노동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미다.

노동시간을 결정할 때 노사의 자율적 합의는 나름 중요하다. 가령 노동 제도의 모범으로 여겨지는 덴마크는 노동시간을 규제하는 법제가 거의 없다가 2002년 도입됐는데 노사 단체협약으로 그 이전에 이미 주 37시간 노동이 자리잡았다. 덴마크의 노조 조직률은 67%, 단체협약 적용률은 80%(2021년 기준)에 이른다.

다만 이런 경험을 한국에 적용하기에는 무리라는 의견이 뒤따른다. 한국의 노조조직률이 14%에 그치는데다, 법이 통제하지 않는 노동 시간은 압도적으로 늘어나는 경험을 수십년간 해온 탓이다. 예컨대 근로기준법 59조는 운송 업무를 근로·휴게 시간의 특례 업종으로 규정해 예외로 두는데, 이에 해당하는 공항 지상조업 노동자의 연간 노동시간은 3513시간(2015년 기준)에 이른다. 전체 노동자 평균보다 1300시간 가까이 더 길다. 법의 공백이 그대로 장시간 노동으로 이어진 셈이다.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않는 특수고용노동자의 경우엔 장시간 노동을 ‘사회적 합의’로 줄이려 했지만 사실상 실패했다. 2021년 노사정은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을 위한 사회적 합의’을 맺어 주 최대 60시간 작업·심야 배송 제한 등을 규정했는데, 진경호 전국택배노조 위원장은 <한겨레>에 “최근에도 주 6일, 70시간 가까이 일하다가 과로사한 노동자가 있다”고 말했다.

그나마 정부가 이번 방안에서 노동자의 협상력 강화를 위해 내놓은 근로자대표제 또한 강력한 법 집행이 없는 한 외려 노동자의 힘을 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근로자대표제는 이미 ‘근로자 참여 및 협력 증진에 관한 법률’에 규정돼 있으나 실효성 없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2016년 한국노동연구원의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조사 대상 기업 586곳 가운데 42.8%가 노사협의회를 운영하지 않았다. 40.6%는 ‘직접·비밀·무기명투표’로 근로자대표를 선출하지 않았다. 회사가 근로자대표를 지명한 경우도 13.4%였다. 법만 있을 뿐 처벌 등 실질적인 관리가 이뤄지지 않아 근로자 대표가 회사의 뜻을 합리화하는 자리가 된 셈이다. 개편방안엔 근로자 대표제 선출 과정의 민주성을 담보할 ‘벌칙 조항’은 시정 명령 기회를 준 뒤 이를 이행하지 않는 때 적용하는 것으로 돼 있다. 노동자의 협상력을 강화할 노조 활성화 방안 등은 담지 않았다.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는 “한국의 노동자에게는 최소한의 노동조건을 지킬 방법이 법밖에 없다”며 “유럽처럼 산별노조를 통한 단체협약과 그에 대한 보편적 적용, 이를 이행할 책임 있는 사용자 단체가 없는 상황에서 일단 노동시간 제한부터 풀고 법이 아닌 문화와 관행, 자율에 기댄다는 것은 앞뒤가 바뀐 논리이고 결국 취약 노동자의 장시간 노동을 향할 것”이라고 말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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