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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18만명 몰린 현대차 ‘킹산직’ 공채…여성 지원자들은 “로또 사는 심정”

등록 2023-03-29 17:18수정 2023-03-29 20:43

현재 기술직 여성 고작 2%·역대 공채 0명
“로또 사는 기분으로 원서 제출” 하소연
금속노조 등 “성평등 채용 이뤄져야” 촉구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현대차 정규직으로 자리 배치를 받자마자 현장 관리자가 ‘여긴 일이 힘들어서 여자가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라며 막았어요. ‘여자가 일을 잘하는지 못하는지 보자’며 다른 남성 노동자들이 구경하러 오기도 했지요.”

장서현(56)씨는 현대자동차그룹의 사내 하청업체에서 15년간 일하다가 법원의 불법파견 판결 뒤인 2019년 현대차 기술직(생산직)으로 전환됐다. 한 반 동료 30명 가운데 여성은 장씨 단 1명 뿐이었다. 장씨는 이곳에서 적재함을 차에 장착해 화물트럭을 만드는 업무를 담당했다. 무거운 장비를 이용해야 하고, 일이 고돼 남성들도 기피하는 일이었다. 6개월 뒤, 새 작업장으로 근무지를 옮길 때 현장 관리자는 장씨를 “에이스”라고 부르며 아쉬워했다.

현대차의 기술직 신입 공개채용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10년 만에 이뤄지는 이번 공채에서 올해 선발하는 인원은 400명. ‘연봉 1억’(2021년 기준 9600만원)에 60살까지 정년 보장이 돼 ‘킹산직’(킹+생산직)으로 불리는 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18만명(온라인 커뮤니티 추정)이 몰렸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지원 자격은 ‘고졸 이상, 연령·성별 무관’이지만, 각종 취업 사이트에는 “로또 사는 기분으로 원서를 썼다”는 여성들의 하소연이 빗발쳤다. 현대차가 창사 이래 기술직 공채에서 여성 직원을 채용한 적이 단 한차례도 없었기 때문이다.

29일 전국금속노동조합,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자동차지부, 채용성차별철폐공동행동은 서울 중구 금속노조 사무실에서 “현대자동차, 설마 2023년에도 기술직부문 여성채용 0명? 현대차는 채용부터 퇴직까지 성평등한 노동공간 보장하라”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29일 전국금속노동조합,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자동차지부, 채용성차별철폐공동행동은 서울 중구 금속노조 사무실에서 “현대자동차, 설마 2023년에도 기술직부문 여성채용 0명? 현대차는 채용부터 퇴직까지 성평등한 노동공간 보장하라”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와 채용성차별철폐공동행동 등은 29일 기자회견을 열어 “지금도 청년여성들은 ‘여성이라 뽑아주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을 안고 구직활동에 임하고 있다”며 “10년 만에 이뤄지는 현대차 기술직 공채에서 성평등한 채용이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현재 현대차 기술직 직원 2만8000여명 가운데 여성은 500여명(2%)에 불과하다. 장씨처럼 사내하청 소속으로 일하다가 정규직 전환이 된 경우가 절반쯤이고, 조립공장 상황에 따라 추천 등을 통해 입사한 이들이 절반 정도다.

현대차 기술직 공채에서 사실상 여성이 ‘배제’됐던 건, ‘중후장대’ 산업인 자동차 생산 현장은 여성이 일하기 힘들 것이란 편견이 작용한 탓이 크다. 박희은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현대차가 처음 만들어지고 노동조건이 열악했을 때는 여성 노동자들이 있었다. 오일파동으로 정리해고 때 여성 일자리가 외주화됐고 여성이 사라지게 된 것”이라며 “여성은 자동차 공정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해”라고 말했다.

권수정 금속노조 부위원장도 “미국에 있는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의 여성 노동자 비율은 36%”라며 “이번 공채에서 400명 모두를 여성으로 채용한다고 해도 여성의 비율은 3.5%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대차 쪽에선 그간의 채용 과정에서의 여성 차별 가능성에 대해 채용 공고에 성별 구분을 두지 않았다는 점을 언급하며 “인사와 관련된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해줄 수 없다”고만 말했다.

금속노조 등은 이런 의혹을 불식하기 위해서라도 현대차가 채용 과정에서의 △지원자 성비 △단계별 합격자 성비 △최종합격자 성비를 공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레나 한국여성노동자회 연대사업국장은 “계속해서 성차별적인 기업으로 남을지, 아닐지는 현대자동차의 앞으로의 행보에 따라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안태호 기자 e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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