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희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이 8월29일 오전 서울 강서구 등촌동 사무실에서 ‘모든 시민의 삶을 위한 파업’을 내걸고 공동투쟁에 나서는 이유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무궁화호 감차로 고립된 마을, 2년간 30% 이상 오른 전기·가스 요금, 지옥 같은 지하철, 의료보험 보장이 축소된 자기공명영상(MRI)·초음파 검사… 현정희 민주노총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위원장이 공익을 위해 존재한다고 믿었던 공간에서 시민들이 맞닥뜨렸을 당혹감, 짜증, 공포, 분노를 하나씩 짚기 시작했다.
공공운수노조 조합원 25만여명은 운송, 교통, 에너지, 의료, 사회서비스, 사회보험 등 시민들의 ‘일상의 것’, 필수재를 만들고 운영하고 제공한다. 모든 시민에게 반드시 필요하고, 필요 이상 욕심을 낼 필요도 없는 것들이라 ‘공공’(국가)이 제공하거나 그래야 마땅하다’고 여기는 것들이다. 일부는 민간이 운영하거나, 공공기관이 운영하더라도 이미 그 방식은 수익 극대화를 지향하는 민간 기업을 닮아가고 있다.
그 흐름은 더욱 거세졌다. 정부는 지난해 말 공공기관 혁신 계획을 통해 예산, 자산, 인력과 조직을 감축하는 방안을 차례로 내놨다. 공공기관 평가에서 사회적 가치를 평가하는 배점은 낮아졌고, 그나마 조금씩 늘던 인력도 앞으로 3년간 1만2442명 줄이기로 했다. 민간 기업과 같은 효율성을 강조한 조처다.
공공운수노조가 파업에 들어가며 ‘이들 재화와 서비스가 다시 공공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요구한 배경이다. 그래서 ‘모든 시민의 삶을 위한 파업’을 구호로 내걸었다. 투쟁의 중심에 선 현 위원장을 8월29일 서울 등촌동 공공운수노조 사무실에서 만났다.
―왜 지금 공공성을 주장하며 공동파업에 나서나?
“공공기관, 운수기관, 사회서비스기관, 비정규직화된 콜센터 같은 사회 서비스 직종을 망라하는 우리 조합원들은 노동이 가진 성격 탓에 필연적으로 사회 전체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정부 정책이 사회를 어떤 방향으로 밀고 가는지 피부로 느낀다. 지금 느끼는 바를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는 ‘고비’다.
이 고비를 넘기지 못하면 기본적인 사회서비스를 공급받을 때 내가 돈을 많이 벌면 그 돈으로 서비스를 구하고, 그렇지 못하면 최소한의 비인간적인 삶을 살거나 죽어야 하는 각자도생의 세계가 기다린다. 그런데 현실은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지금까지 발표한 모든 지침과 계획을 통해서 시장 중심, 민간 중심의 공공부문 운용 의지를 분명히 드러냈다. 지난해 12월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 1만2442명 인력감축과 5년간 공공기관 자산 14조5천억원을 매각하는 계획을 확정했다. 이는 단지 공공기관 규모 축소 문제가 아니라, 전체 국민의 삶이 후퇴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우리도 파업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고비의 순간에 공공부문에서 시장의 확대가 맞는지, 국가 책임을 강화하는 게 맞는지, 사회에 반드시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공공노동자는 역사적으로, 세계적으로 공공부문의 시장화에 맞서 막는 역할을 했다.”
―공공기관 노동자 노동권과 시민의 삶은 어떻게 연관되나?
“공공부문 인력 감축은 시민의 안전과 직결된다. 가령 지난해 서울 오봉역에서 벌어진 중대재해는 인력이 부족해 3인이 한 조로 해야 할 일을 2인 1조로 하다 벌어졌다. 철도·지하철 승무원이 안전하지 않은 열차는 시민에게도 안전할 수 없다. 서울 사회서비스원 노동자들은 코로나19 동안 민간 돌봄 기관이 하지 않은 긴급 돌봄을 도맡았다. 서울시는 올해 기관 예산 절반인 100억원을 삭감했다. 그곳에 아이를 맡긴 부모들은 노동자를 만나 같이 울었다.
공공기관 노동자에 성과연봉제를 적용하면, 경쟁이 치열해지고 사회적 가치보다 수익성을 중심으로 공공부문이 운영된다. 국립대 병원이 돈 되는 환자만 받는다면, 발전사들이 돈 되는 곳에만 전기를 공급한다면, 철도가 돈 되는 노선만 운영한다면 그 피해가 시민을 향하는 것은 당연하다.”
―정부가 공공기관 축소를 요구하는 배경에 공공기관의 방만 경영에 대한 비판 여론도 있다.
“공공부문에서 일하는 노동자 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절반에 못 미친다. 이런 인력으로 운영하는 기관을 방만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나. 주로 부채 문제를 짚지만, 이 부채가 왜 생겼는지 따져야 한다. 수익이 나는 부분은 쪼개 민영화하고 수익은 나지 않지만 시민에 필수적인 부분을 공공기관이 재정 지원 없이 감당해서 나타난 부채다. 예컨대 지하철은 고령층에 요금을 받지 않는 ‘배려(무임)수송’을 한다. 정부는 이 비용을 책임지지 않고 부채 문제를 앞세워 구조조정과 요금 인상으로 대응한다. 정부의 책임을 노동자와 시민에 전가하는 것이다.”
―공공운수노조 조합원 40%는 비정규직이다. 현재 공공부문 비정규직 상황은 어떤가.
“지난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화 추진 과정에서 손쉽게 정규직-비정규직 갈등 프레임이 씌워졌고, 그 과정에서 정규직화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민간위탁 비정규직을 포함하면 정규직 전환율은 33%에 불과하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은 작은 정부를 표방해 온 역대 정부가 공공부문을 축소하며 정규직을 줄이는 대신 그 자리를 외주화 등을 통해 비정규직으로 채우며 늘었다. 비정규직은 공무직, 자회사, 민간위탁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하지만 분명히 공공 업무를 한다. 윤석열 정부는 단 한 번도 비정규직이라는 단어를 말하지 않았다. 공공부문을 넘어 1000만명 가까운 비정규직 국민을 유령 취급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가 각 공공기관 사업자뿐 아니라 정부를 상대로도 쟁의행위 등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뭔가.
“공공기관의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건 각 기관이 아니라 공공기관운영위원회로 대표되는 기획재정부와 정부다. 각종 지침, 예산, 경영평가로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실질적 사용자다. 이는 국제노동기구(ILO)가 올해 6월 한국 정부에 공공 노동자와 교섭하라고 권고한 이유다. 모범적인 사용자여야 하는 정부는 이 권고에 응해야 한다. 공공기관들도 노조의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는 공공부문 기능 축소를 강조하고 있다. 이는 시민과 공공부문 노동자에 함께 영향을 미친다. 때문에 2000년대 철도·가스·발전의 완전 민영화를 막아낸 일명 ‘철가발 투쟁’처럼 공공노동자들은 시장화로부터 공공의 영역과 시민의 이익을 지키는 공공성 투쟁을 계속 중심에 뒀다. 이번 공동투쟁에 공공운수노조뿐만 아니라 의료, 환경, 빈곤 등 시민단체들이 함께하는 이유다.”
※‘공공성의 역행’ 기획은 한겨레가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의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