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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노란봉투법 10년…노동자 고통과 시민의 공감이 거부당했다

등록 2023-12-01 16:33수정 2023-12-02 11:36

노란봉투 캠페인, 21대 국회서 법제화 결실
윤 대통령 거부권 행사로 사실상 폐기 수순
2014년 12월 쌍용차 해고자 고공농성 관련 기사를 읽고 한겨레에 보내온 ‘노란봉투’. 봉투 안에는 손수 쓴 편지와 소중하게 보관하던 구권 4만 7천원이 들어 있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2014년 12월 쌍용차 해고자 고공농성 관련 기사를 읽고 한겨레에 보내온 ‘노란봉투’. 봉투 안에는 손수 쓴 편지와 소중하게 보관하던 구권 4만 7천원이 들어 있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12월1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법안에 붙은 ‘노란 봉투’라는 상징적 단어가 탄생한 지 10년 만인 2023년 11월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은, 대통령 거부권으로 22일 만에 국회에 되돌아 왔다. 다시 의결하려면 재적 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여당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가 없다면 내년 5월까지 이어질 21대 국회에서 법 통과는 사실상 무산된 셈이다.

노란봉투법은 하청노동자 노동 조건에 실질적 영향력을 지닌 원청으로 단체교섭 대상을 확대하고, 쟁의행위(파업)를 이유로 한 회사의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청이라는 고용 형태, 막대한 손해배상 부담 등을 이유로 많은 노동자에게 헌법에만 존재했던 노동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현실 일터에 구현하기 위한 시도로, 전문가들은 노란봉투법을 평가한다. 노조 등으로 단결한 노동자가 사용자와 교섭, 힘겨루기를 통해 자율적으로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것은 근대 국가의 기본 원칙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고통, 시민의 공감과 연대, 이어지는 노동자의 호소, 일정한 양보와 법안 통과, 대통령 거부권 행사에 이르기까지. 지난 10년 노란봉투법이 걸어온 길을 되짚었다.

시민연대 : 노란봉투 캠페인

2013년 12월, 수원지방법원이 2009년 파업에 참여한 쌍용차 노동자에 회사와 경찰이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47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같은 달 소식을 접한 시민 배춘환씨가 시민의 힘으로 손배가압류를 겪는 노동자들을 돕자며 4만7천원을 노란 봉투에 담아 시사주간지 시사IN에 보냈다. ‘노란봉투 캠페인'의 시작이다. 2014년 노란봉투 캠페인이 본격적으로 돌입하자 14억7천여만원의 성금이 모였다.

노란봉투 캠페인은 자연스럽게 노조법 개정 논의로 이어졌다. 쌍용차 노동자의 손배가압류는 가장 중요한 노동 조건인 대규모 정리해고에 맞선 파업이 ‘불법’이 돼 그에 따른 막대한 손해배상 청구로 노동자들이 목숨을 끊는 부조리를 다시 한 번 드러냈기 때문이다. 2003년 두산중공업 배달호(당시 50살), 한진중공업 김주익(당시 41살) 등 적잖은 노동자가 손배가압류 부담 속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터였다.

2015년 4월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전신) 의원이 정당한 쟁의행위의 범위를 넓히고 무분별한 손배 청구를 제한하는 노란봉투법을 처음 대표 발의했다. 법안은 소관 상임위원회인 환경노동위에서조차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 2016년 5월, 19대 국회 임기 만료에 따라 노란봉투법은 자동 폐기됐다. 20대 국회에서도 노란봉투법은 발의만 됐을 뿐 별다른 논의 없이 폐기됐다.

확장 : 대우조선 하청 노조 파업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유최안 부지회장이 2022년 6월24일 화물창 바닥에 가로·세로·높이 1m의 철 구조물을 안에서 용접해 자신을 가둔 채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금속노조 선전홍보실.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유최안 부지회장이 2022년 6월24일 화물창 바닥에 가로·세로·높이 1m의 철 구조물을 안에서 용접해 자신을 가둔 채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금속노조 선전홍보실.

2022년 6~7월,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은 노란봉투법을 하청노동자 노동권 전반의 문제로 ‘확장’하며 논의를 다시 촉발했다.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하청지회(거통고 하청지회) 부지회장은 경남 거제시 옥포조선소 독(dock·배를 만드는 작업장)에 가로·세로·높이 1m인 철창을 만들어 스스로를 가둔 채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파업은 51일 동안 이어졌다. 파업이 끝난 뒤 회사는 거통고 하청지회 5명에게 47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파업의 배경과 결과는 다시 한 번 노조법 개정의 필요성을 부각했다. 사내 하청노동자의 노동조건에 큰 영향력을 지닌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은 하청노동자들의 교섭 요구 자체를 거부했다. 하청노동자와 직접 근로계약을 맺지 않았으니 교섭할 의무가 없단 이유였다. 사용자 범위를 규정한 노조법 2조를 개정해야 한단 요구가 터져 나온 이유다. 특수고용노동자인 화물노동자(하이트진로), 택배노동자(CJ대한통운) 또한 원청과 교섭을 요구하며 파업했다가 손해배상을 청구 받는 등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노동자와 교섭해야 할 사용자 범위를 실제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진짜 사장’으로 넓히자는 노조법 2조 개정 요구가 터져 나온 이유다. 형식적인 근로계약이 아니라 실질적 영향력을 기준으로 사용자를 판단해야 한다는 법리는 대법원 판례로 이미 확립된 상식이기도 했다.

양보 : 법안 심의

지난 5월 24일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여당 간사인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이 ‘노란봉투법’ 본회의 직회부 요구안 상정에 대해 전해철 위원장과 야당 간사인 김영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월 24일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여당 간사인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이 ‘노란봉투법’ 본회의 직회부 요구안 상정에 대해 전해철 위원장과 야당 간사인 김영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2년 9월,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의 요구를 반영한 노란봉투법을 대표 발의했다. 다만 국회 심의 과정에서 대폭 수정됐다.

애초 원안에선 폭력이나 파괴행위로 발생한 직접 손해가 아닐 경우 회사의 손해배상 청구 자체를 금지하거나 배상액을 제한·감면하는 내용이 있었지만, 국회 환노위 법안소위 논의 과정에서 빠졌다.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경우 ‘귀책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범위를 정해야 한다’는 조항 정도가 담겼다. 회사가 불법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별로 회사에 끼친 손해를 따져 각각 손해배상을 청구하도록 한 것이다.

현재는 막대한 손해배상액 부담을 회사가 정한 파업 참여자 모두가 동등하게 짊어지고, 회사의 회유로 이 가운데 한 명이 이탈하면 남은 이들이 같은 배상액 부담을 짊어지게 되는(부진정연대책임) 구조다. 노조 파괴 수단으로 악용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2023년 11월9일 노란봉투법이 완화된 형태로 국회를 통과했다.

좌절 : 대통령 거부권

2022년 11월 9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이 처리되고 있다.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2022년 11월 9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이 처리되고 있다.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2023년 12월1일, 윤석열 대통령은 노란봉투법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예견된 수순이라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노란봉투법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심의될 때마다 여야는 충돌했고 매번 더불어민주당 단독 의결로 법안이 통과됐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 경영계는 대통령 거부권 행사 건의를 매 단계마다 시사했다. 지난달 9일 국회 본회의에 노란봉투법이 상정되자 국민의힘은 표결에 불참했다. 결국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의원 174명이 표결에 참여해 찬성 173명, 기권 1명으로 노란봉투법은 가결됐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노란봉투법은 국회에서 재표결을 거쳐야 한다. 이때 재적 의원 과반수 출석에 출석 의원 3분의 2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그러나 이미 노란봉투법에 반대하는 국민의힘이 111명이라, 재의결 때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21대 국회에서는 사실상 폐기될 가능성이 크다.

김해정 기자 se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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