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김용균은 화력발전소에서 석탄설비를 운전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고 김용균씨가 ‘비정규직 그만쓰개! 1100만 비정규직 공동투쟁’이 추진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비정규직 100인과의 대화’에 참가 신청을 하려 ‘인증샷’을 찍고 있다. 태안 화력발전소의 석탄취급 설비운전을 위탁받은 한국발전기술의 현장 운전원으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고인은 2018년 12월11일 새벽 일터인 충남 태안 화력발전소 9·10호기 석탄운송설비 컨베이어 벨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제공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숨진 하청 노동자 김용균씨 5주기를 사흘 앞둔 7일 대법원이 사고 책임자의 형사책임을 묻는 판결을 내놓는다. 그의 죽음 이후 법 제도 개선으로 완전히 자리 잡은 ‘원청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을 통한 산재 예방책임이라는 중대재해의 기본 원칙이 김용균 자신의 재판에서 구현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2018년 12월10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석탄 운반용 컨베이어벨트 점검 작업을 하던 김용균씨를 숨지게 한 혐의(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업무상 과실치사)로 기소된 원청 한국서부발전의 김병숙 전 대표 등에 대한 상고심 선고 공판을 7일 한다. 지난 2월 대전지법에서 항소심 판결이 나온 지 10개월 만이다.
서부발전 하청 노동자 김용균씨의 죽음은 2018년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전부 개정(김용균법), 2021년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으로 이어지며 위험의 외주화, 경영자의 책임 회피 등으로 흐르던 중대재해 흐름을 뒤바꾼 것으로 평가된다. 사고 이후 도입된 이른바 김용균법은 원청 사업장에서 일하는 하청 노동자라면 원청이 무조건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지도록 했다. 이는 ‘원청’의 책임을 넓혔지만, 책임의 주체를 경영책임자(사업주)가 아닌 안전보건관리책임자 등에 한정한 한계가 있다. 이에 새로 만들어진 중대재해처벌법은 원청 경영책임자의 안전 및 보건확보 의무를 강화된 처벌 규정과 함께 명시했다. 원청이 ‘중대재해 예방’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만으로도 경영자 처벌이 가능해, 책임 회피를 좀 더 어렵게 만든 것이다.
김용균법 이전의 옛 산업안전보건법이 적용된 앞선 재판에선 이런 원칙이 힘을 잃었다. 원청인 서부발전의 김병숙 전 대표는 ‘사고 발생 위험성을 구체적으로 인식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1심과 항소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김용균재단은 항소심 직후 “더 높은 지위에 있을수록 ‘알 수 없음’ 등의 이유로 책임을 면해줬다”며 안전에 무관심한 경영자일수록 처벌을 피할 수 있는 모순을 비판했다.
‘김용균 5주기 현장추모제’가 6일 충남 태안 화력발전소 앞에서 열렸다. 김용균 재단 제공
서부발전이 김용균씨의 실질적 사용자임을 부정한 앞선 판결이 바로잡힐지도 관건이다. 검찰은 대법원에 낸 상고이유서에서 “한국서부발전과 피해자(김용균) 사이에 실질적인 고용 관계를 (증언과 증거들로) 충분히 인정할 수 있음에도 (1·2심이) 판단을 잘못했다”고 적었다. 옛 산안법으로도 원·하청 간 실질적 고용 관계를 따져 원청에 산재 사망 사고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논리다.
김용균씨 유족을 대리한 박다혜 법률사무소 ‘고른’ 변호사는 한겨레에 “과거 산안법이 적용된 사건이라 하더라도, 항소심은 원청의 책임을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인정했다”며 “대법원은 중대재해 예방에 대한 원청 경영자의 책임을 강화하는 흐름에 맞춰 전향적인 판결을 내야 한다”고 했다.
김해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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