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와 노조 말살을 위한 위장도급 행위 중단을 요구하며 서울 영등포구 기륭전자 정문 앞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금속노조 서울지부 남부지역노조 기륭전자분회 노조원들이 1일 오후 농성장에서 분회 재정사업을 위해 십자수를 놓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서울남부지법, 교섭권·쟁의권 위축시키는 사용자 ‘탄압수단’ 첫 제동
김기덕 변호사 “헌법상 보장된 노동자 단체행동권 보장하는 의미있는 판결”
김기덕 변호사 “헌법상 보장된 노동자 단체행동권 보장하는 의미있는 판결”
2001년 회사가 단체교섭에 불응하자 파업을 벌였던 한 노조는 지난달 회사 쪽과 2012년까지 일체의 쟁의행위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대신 회사는 노조의 파업이 불법이라며 업무방해를 이유로 냈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취하하기로 했다. 청구액 10억원이 넘는 이 소송에서 법원이 1·2심 모두 회사의 손을 들어주자 노조는 고육지책으로 이런 선택을 했다. 노조는 이를 외부에 밝히지 않는다는 약속도 했다.
이처럼 파업을 벌인 노조와 노조원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노조의 교섭권과 쟁의권을 위축시키는 사용자의 대표적 수단이 돼 왔다. 그런데 불법파업에 참여한 일반 노조원에 대해선 회사가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13부(재판장 김수천)는 기륭전자가 2005년 8~9월 파업을 벌인 노조원들을 상대로 같은해 9월 낸 18억여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지난 4일 기각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요구한 파업이어서 쟁의행위의 정당성을 인정받기는 어렵지만, 일반 조합원에게 쟁의행위의 정당성 여부를 일일이 판단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근로자의 단결권을 해칠 수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이들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지울 수 없다”고 밝혔다.
금속노조 법률원의 김기덕 변호사는 “헌법상 보장된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을 보장하는 의미있는 판결”이라고 말했다.
기륭전자는 지금까지 노조 간부와 조합원 등에 대해 세차례에 걸쳐 모두 54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김소연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장은 “회사 쪽이 사직서를 쓴 직원들에게는 소송을 취하해주며 노조 활동을 위축시켰다”고 말했다.
16일 노동부 집계를 보면, 지난해 기업체가 노조 활동을 이유로 노조나 조합원들을 상대로 낸 손배소송 금액은 254억원에 이른다. 규모도 2004년 67억원, 2005년 187억원으로 급증 추세다. 2003년엔 두산중공업이 불법파업에 따른 손실을 이유로 임금을 가압류해 고통받던 배달호(당시 48)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