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서울 금천구 가산동 기륭전자 앞에서 노조원들이 철문을 열어 젖힌 뒤 전경들과 대치하고 있다.
[홍세화의 세상속으로] ‘658일 투쟁’ 기륭전자 집회현장에서
2007년 6월12일과 13일, 한낮은 무더웠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간부 2천여명이 서울, 인천과 평택에서 장기투쟁 사업장 문제 해결을 촉구하기 위한 집회를 열었다. 고속철(KTX) 여승무원들처럼 최장기 비정규직 투쟁을 벌이고 있는 기륭전자, 금속노조와 교섭에 나서라는 법원 판결을 거부한 채 시간을 끄는 이젠텍, 정규직 영업노동자들을 비정규직화하려는 대우자동차 판매사를 대상으로 1박2일 동안 노숙 투쟁을 벌인 것이다.
가산디지털단지역에서 3번 마을버스를 타고 기륭전자에 닿았다. 육중하게 닫힌 철문과 철조망으로 둘러친 수위실 왼쪽에 낮게 자리잡은 천막은 세월의 비바람 속에 바랬다.
금속노조 노숙집회 41명 연행
대기업 노조 간부 없어 ‘씁쓸’ “회사는 검찰이 내린 불법파견 벌금 500만원을 낸 것으로 그만이래요.” 뙤약볕 아래 김소연 기륭전자 분회장이 말했다. 노조에는 ‘불법’ 파업이라면서 수십억원에 이르는 손배 가압류를 매기는데, 불법 파견으로 기륭전자가 치른 대가는 회사 500만원, 대표이사 500만원 벌금이 전부였다. 위성 라디오와 위성항법장치(GPS) 등을 생산하는 기륭전자에서 일한 생산직 중 정규직은 단 10여명. 파견 노동자 250여명을 비롯한 290명이 비정규직이다. 월급은 2005년 당시 최저임금에서 10원을 얹은 64만1850원. ‘일하는 중 잡담했다’는 이유로, ‘말대꾸를 했다’는 이유로, ‘뻣뻣하다’ ‘못생겼다’는 이유로 어느날 갑자기 휴대전화에 찍힌 해고 통보를 받았다. 작업 현장에서 과로로 쓰러진 것도 해고 사유가 됐다. 인간적 모멸을 견디기 어려웠던 노동자들은 2005년 7월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생산직 205명 중 180여명이 바로 노조에 가입했다. 그러나 비정규직이라는 신분이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정규직 전환 대신 계약해지를 통한 해고를 통보받은 것이다. 그들은 간단히 쫓겨났다. 노예가 아닌 인간이기를 바랐기 때문에, 그렇게 싸우기 시작한 지 어느새 658일째가 됐다. 월급 64만원…과로 쓰러져도 해고
노조결성 ‘계약해지’로 부메랑 지금 기륭전자는 단기 파견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다. 구로공단 노동자들 대부분이 놓인 고용 현실이다. 비정규직‘보호’법은 이들에겐 보호막이 되지 않는다. 인력수급업체를 통해 3개월, 6개월씩 돌려가면서 고용하도록 만들었을 뿐이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에서 기륭전자와 같은 자본은 검찰이나 법원의 결정이나 판결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럴 이유가 전혀 없다. 여차하면 이젠텍처럼 법원 판결을 거부하며 시간 끌기를 할 것이다. 6월 항쟁 20돌을 맞은 오늘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또 모두 민주주의를 누린다고 믿는다. 민주주의(데모크라시)는 본디 ‘다중 지배’를 뜻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데모크라시를 ‘서민 지배’로 규정했다. 어느 사회든 철학자나 부자가 다중을 이루지 않는다. 데모크라시 아래 철인정치가 가능하지 않듯이, 부자통치 또한 가능하지 않다. 서민만이 다중을 이룰 수 있고, ‘다중 지배’ 아래 정치 지배력을 갖게 되고 자유와 평등의 지평을 열 수 있다. 그의 논리는 빈틈없는 듯하지만 서민이 정치 지배력을 행사한 나라를 찾기란 쉽지 않다. 20:80의 사회와 민주주의 사이의 모순, 왜 ‘80’은 정치 지배력을 행사해 양극화를 극복하지 못할까? 설명은 간단하다. 20:80의 구분은 사회경제적 ‘존재’로서 구분한 것이지만, 민주주의는 사회 구성원의 ‘의식’으로 표현된다. 가령 한국 노동자들 중 지극히 일부만 노동자 의식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은 노동자 의식이 없는 정도를 넘어 반노동자 의식을 가지고 있다. 형식적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수 노동에 대한 소수 자본의 지배는 노동자들의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과 “분열시켜 지배한다”는 로마시대 이래의 지배 전략으로 공고해진다. 한국 노동자는 10% 조직률에 머물러 있는데 그나마 민주노총/한국노총으로 양분돼 있다. 화이트칼라/블루칼라, 대기업/중소기업 노동자, 내국인/이주 노동자로 나누어진 위에 정규직/비정규직으로 또다시 나눠졌다. 1886년 5월1일 미국 노동자들이 8시간 노동제를 내걸고 파업 시위를 벌인 게 메이데이의 시효라는 점은 잘 알려진 편이다. 그 반세기 전인 1830년대 프랑스 리옹 지역의 견직공들은 하루 16시간 노동해야 입에 풀칠할 수 있었다. 심지어 새벽 5시부터 밤 11시까지, 하루 18시간 노동을 강요당하기도 했다. 그들은 결국 폭동을 일으켰고 잔인하게 진압됐고 죽임을 당했다. 그 뒤 견직공들은 하루 14시간 일하게 됐다. 아직 노예제가 합법이던 시절, 노동력을 팔아 생존해야 하는 노동자의 처지는 노예에 가까웠다. 노예제가 과거의 유물이 된 오늘, 한국의 비정규직은 이 공장에서 3개월, 저 공장에서 6개월 식으로 돌아야 한다. 12일 오후 2시가 되면서 기륭전자 앞에는 금속노조의 포항·경남·부산·양산·대구·울산지부 노조 간부들이 깃발을 앞세우고 모여들었다. 철문과 철문 앞 정면과 옆으로 난 길 사이 좁은 공간에 수백명의 노동자들이 빽빽이 들어앉았고, 전경이 진입로와 철문 뒤쪽 기륭전자 마당에 진을 쳤다. 먼 지역에서 달려온 남성 노동자들 사이에서 기륭전자 여성 노동자들의 상기된 얼굴이 뜨거운 태양 아래 반짝였다. 그들은 잠깐이나마 노동자 사이의 연대감으로 뿌듯했을까?
금속노조의 1박2일 노숙 집회는 41명이 경찰에 연행되는 결과를 빚었다. 13일 이른 새벽 이젠텍 앞에서 노동자와 경찰 사이에 폭력 충돌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충남 아산에 있는 유성산업지회 김관두 선전부장은 코뼈가 내려앉았다. 연행된 노동자들은 모두 중소사업장 노동조합 간부들이다. 금속노조 14만4천 조합원 중 8만5천명을 차지하는 현대, 기아, 대우 등 완성차 노조 간부는 그 안에 없었다. 기획위원 hongsh@hani.co.kr
대기업 노조 간부 없어 ‘씁쓸’ “회사는 검찰이 내린 불법파견 벌금 500만원을 낸 것으로 그만이래요.” 뙤약볕 아래 김소연 기륭전자 분회장이 말했다. 노조에는 ‘불법’ 파업이라면서 수십억원에 이르는 손배 가압류를 매기는데, 불법 파견으로 기륭전자가 치른 대가는 회사 500만원, 대표이사 500만원 벌금이 전부였다. 위성 라디오와 위성항법장치(GPS) 등을 생산하는 기륭전자에서 일한 생산직 중 정규직은 단 10여명. 파견 노동자 250여명을 비롯한 290명이 비정규직이다. 월급은 2005년 당시 최저임금에서 10원을 얹은 64만1850원. ‘일하는 중 잡담했다’는 이유로, ‘말대꾸를 했다’는 이유로, ‘뻣뻣하다’ ‘못생겼다’는 이유로 어느날 갑자기 휴대전화에 찍힌 해고 통보를 받았다. 작업 현장에서 과로로 쓰러진 것도 해고 사유가 됐다. 인간적 모멸을 견디기 어려웠던 노동자들은 2005년 7월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생산직 205명 중 180여명이 바로 노조에 가입했다. 그러나 비정규직이라는 신분이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정규직 전환 대신 계약해지를 통한 해고를 통보받은 것이다. 그들은 간단히 쫓겨났다. 노예가 아닌 인간이기를 바랐기 때문에, 그렇게 싸우기 시작한 지 어느새 658일째가 됐다. 월급 64만원…과로 쓰러져도 해고
노조결성 ‘계약해지’로 부메랑 지금 기륭전자는 단기 파견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다. 구로공단 노동자들 대부분이 놓인 고용 현실이다. 비정규직‘보호’법은 이들에겐 보호막이 되지 않는다. 인력수급업체를 통해 3개월, 6개월씩 돌려가면서 고용하도록 만들었을 뿐이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에서 기륭전자와 같은 자본은 검찰이나 법원의 결정이나 판결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럴 이유가 전혀 없다. 여차하면 이젠텍처럼 법원 판결을 거부하며 시간 끌기를 할 것이다. 6월 항쟁 20돌을 맞은 오늘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또 모두 민주주의를 누린다고 믿는다. 민주주의(데모크라시)는 본디 ‘다중 지배’를 뜻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데모크라시를 ‘서민 지배’로 규정했다. 어느 사회든 철학자나 부자가 다중을 이루지 않는다. 데모크라시 아래 철인정치가 가능하지 않듯이, 부자통치 또한 가능하지 않다. 서민만이 다중을 이룰 수 있고, ‘다중 지배’ 아래 정치 지배력을 갖게 되고 자유와 평등의 지평을 열 수 있다. 그의 논리는 빈틈없는 듯하지만 서민이 정치 지배력을 행사한 나라를 찾기란 쉽지 않다. 20:80의 사회와 민주주의 사이의 모순, 왜 ‘80’은 정치 지배력을 행사해 양극화를 극복하지 못할까? 설명은 간단하다. 20:80의 구분은 사회경제적 ‘존재’로서 구분한 것이지만, 민주주의는 사회 구성원의 ‘의식’으로 표현된다. 가령 한국 노동자들 중 지극히 일부만 노동자 의식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은 노동자 의식이 없는 정도를 넘어 반노동자 의식을 가지고 있다. 형식적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수 노동에 대한 소수 자본의 지배는 노동자들의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과 “분열시켜 지배한다”는 로마시대 이래의 지배 전략으로 공고해진다. 한국 노동자는 10% 조직률에 머물러 있는데 그나마 민주노총/한국노총으로 양분돼 있다. 화이트칼라/블루칼라, 대기업/중소기업 노동자, 내국인/이주 노동자로 나누어진 위에 정규직/비정규직으로 또다시 나눠졌다. 1886년 5월1일 미국 노동자들이 8시간 노동제를 내걸고 파업 시위를 벌인 게 메이데이의 시효라는 점은 잘 알려진 편이다. 그 반세기 전인 1830년대 프랑스 리옹 지역의 견직공들은 하루 16시간 노동해야 입에 풀칠할 수 있었다. 심지어 새벽 5시부터 밤 11시까지, 하루 18시간 노동을 강요당하기도 했다. 그들은 결국 폭동을 일으켰고 잔인하게 진압됐고 죽임을 당했다. 그 뒤 견직공들은 하루 14시간 일하게 됐다. 아직 노예제가 합법이던 시절, 노동력을 팔아 생존해야 하는 노동자의 처지는 노예에 가까웠다. 노예제가 과거의 유물이 된 오늘, 한국의 비정규직은 이 공장에서 3개월, 저 공장에서 6개월 식으로 돌아야 한다. 12일 오후 2시가 되면서 기륭전자 앞에는 금속노조의 포항·경남·부산·양산·대구·울산지부 노조 간부들이 깃발을 앞세우고 모여들었다. 철문과 철문 앞 정면과 옆으로 난 길 사이 좁은 공간에 수백명의 노동자들이 빽빽이 들어앉았고, 전경이 진입로와 철문 뒤쪽 기륭전자 마당에 진을 쳤다. 먼 지역에서 달려온 남성 노동자들 사이에서 기륭전자 여성 노동자들의 상기된 얼굴이 뜨거운 태양 아래 반짝였다. 그들은 잠깐이나마 노동자 사이의 연대감으로 뿌듯했을까?
홍세화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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