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광양제철소 하청업체인 삼화산업의 관리직원 등이 지난 4일 전남 광양시 전국금속노동조합 광양지역지회 앞에서 노조 반대 구호를 써넣은 종이를 들고 집회를 열고 있다.
금속노조 광양지역지회 제공
‘포스코·하청업체들, 무쟁의·무분규 결의 선언
파업도 없는데 관리자들 나서 노조 동참 압박
파업도 없는데 관리자들 나서 노조 동참 압박
홍세화의 세상속으로/ 삼화산업 비조합원들 ‘노조반대 집회’
전남 광양시 광양읍 목성리에 있는 전국금속노동조합 광양지역지회 앞에서는 최근까지 오후 4시가 되면 별난 집회가 열려 왔다. 노동 관련 집회라면 으레 ‘단결’ ‘투쟁’ 조끼를 입은 노동자들을 떠올리지만, 여기는 딴판이다. “회사가 문 닫아도 조합은 살아야 한다고?”, “회사 정상화에 집행부도 동참하라” 등 노조 반대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은 삼화산업의 관리자들과 비조합원들이다.
민주당 전남도지부 상임고문이며 전 국회의원인 국창근씨가 실소유주인 삼화산업은 포스코 광양제철소에 천장 크레인 운전과 제품 관리 작업을 하는 인력을 공급한다. 모두 311명의 종업원 가운데 노조에 가입한 조합원은 164명. 2001년 금속노조 지역지회에 가입한 노동자들이 투쟁을 벌이는 것도 아니다. 임금 수준은 포스코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지난 4년 동안 파업을 벌이지도 않았다. 그런데 관리자들과 비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겉으로는 회사 쪽의 ‘회사 청산’이라는 비공식적인 압박이 있다. 회사 정상화를 위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에서 탈퇴하고 기업별 노조로 전환하며 무쟁의 선언에 동참하라는 것이다.
광양에서 포스코 광양제철소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지역의 시민단체, 환경단체, 언론 등 그 누구도 감히 비판하기 어려워한다. 지난해 3월 광양시청 광장에선 ‘항구적 노사 산업평화 선언식’이 열렸다. 포스코 외주사협회, 광양시와 여수문화방송이 공동 주관한 기념식에는 공무원, 시의원, 노동부 등 관계기관 직원, 마을 이장 등 수천명이 참석했다. 포스코 광양제철소는 사내 하청업체들과 계약기간을 정하는 준거로 자체평가제도(KPI)를 도입했는데, 평가항목 중 20% 비중을 차지했던 노사관계를 2008년부터 30%로 상향 조정했다. 하위에 드는 하청업체는 계약을 해지당하거나 기본계약, 단가계약에서 손해를 봐야 한다. 포스코 하청회사들은 ‘포스코 글로벌 NO.1’을 위해 노사화합을 결의했다. 무쟁의·무파업·무분규 직장임을 선언하고 임금에 대해 회사에 위임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말인즉 ‘노사화합’이고 ‘노사평화’이지만 노동조합 깃발을 내리라는 요구나 다름없다. 이런 백기투항 요구를 금속노조 광양지역지회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역지회 조합원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삼화산업이 표적이 된 배경이다.
포스코는 2006년 건설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을 억누른 데 성공한 기세를 몰아 금속노조를 와해시키려는 목표를 세운 듯하다. 2010년 복수 노조가 허용되기 전에 민주노조의 기반을 뿌리뽑으려는 것이다. 삼화산업은 그 시험대에 서 있다. “탈퇴 압력을 버텨낼 조합원들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습니다.” 안지훈 지회장이 안타깝게 말했다. 인간성을 스스로 포기한 채 시키는 대로 일하고 주는 대로 받는 머슴이 되지 않고는 살기 어려운 시대. 광양에서 ‘노사화합’이란 말은 ‘노동의 굴종’의 다른 표현이다.
홍세화 기획위원 hong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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