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근교에 사는 미리암 텐 카테
차별없는 노동 차별없는 사회 2부 대안을 찾아서
③ 차별 없는 세상부터
③ 차별 없는 세상부터
15살 이상 노동인구 45.5% 시간제…여성은 74%
80년대초 경제위기때 도입 “기업·직원 모두 원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근교에 사는 미리암 텐 카테(36·위 사진)는 세 아이를 둔 ‘일하는 엄마’이다. 그는 금융회사인 아이엔지그룹에서 ‘인사관리자’로 일주일에 30시간씩 일한다. 1999년 처음 입사했을 때는 주당 36시간을 일하는 상시근무였다. 하지만 첫딸을 낳은 2001년 시간제근무로 전환했다. 아이를 돌볼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는 일하는 시간도 짧지만, 출퇴근 시간도 자유롭다. 그는 “집에서 틈틈이 업무 전화를 받는 시간도 근무 시간으로 친다”면서 “회사와 30시간을 계약하면서 ‘해내겠다’고 한 업무량을 채우고 약속한 성과를 달성하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네덜란드 아이엔지그룹에는 전체 3만명 직원 가운데 21%인 6300여명이 일주일에 36시간 미만의 시간제로 근무한다. 정규직 비중은 94%다. 시간제로 일해도 임금이 시간 비례로 줄어들 뿐, 상여금·휴가·교육 등 각종 복리 혜택은 똑같다. 네덜란드에서는 15살 이상 노동 인구의 45.5%가 시간제(주 36시간 미만)로 일한다. 일하는 여성의 74.2%, 남성의 22.2%에 이르지만, 이 가운데 비자발적인 경우는 6.1%에 불과하다. 운동·건강관리 기업인 케어포트에서 시간제로 일하는 카롤린 슬라크트(46) 매니저는 “예전에는 아내만 시간제로 일하는 게 흔했지만, 요즘은 젊은 남자들도 자유시간을 더 많이 갖거나 교육·창업에 도전하려 시간제를 원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시간제 노동이 차별받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뒷받침으로 가능했다. 아이엔지의 홍보 매니저인 데비 브란드는 “전체 직원의 상위 0.2% 안에 드는 톱 매니저들 가운데도 일주일에 3~4일만 일하는 시간제 근무자들이 있다”면서 “차별은 금지돼 있고, 능력있는 인력을 쓰려면 시간제를 마다해선 안 된다”고 설명했다.
네덜란드는 노동법과 사회보장법의 개정을 통해 시간제 노동의 지위를 끌어올렸다. 또 유럽연합이 시간제 차별 금지 지침을 내놓기 전인 1996년에 관련 조항을 민법에 도입했다. 틸뷔르흐대학 노동연구소의 정희정 연구원은 “시간제에 대한 제도적 차별은 금지돼 있고, 2000년에는 노동자가 근무시간 조정을 적극적으로 요구할 법적 권리도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자발적 시간제’는 1980년대 초반 ‘네덜란드병’으로 불리던 경제위기를 배경으로 태어났다. 네덜란드는 높은 실업률과 경제 침체를 해결하려고 고임금의 고령 노동자들에게 연금을 줘 조기 퇴직시켰다. 그랬더니 55~65살 고령 인구의 3분의2가 일을 하지 않아 경제활동 인구는 줄어들고, 사회보장 재정만 파탄에 이르렀다.
결국 네덜란드는 노사정 협의를 통한 노동 개혁을 시작한다. 이들은 ‘노동시장 유연화’를 지향했지만, 단순히 ‘쉬운 해고’만을 해법으로 쓰지도 않았다. 이들에게는 소득·일자리의 안정을 통해 양극화를 막는 ‘사회 통합’도 중요했기 때문이다. 자발적 시간제는 조기 퇴직한 인력 대신 젊은 여성 인력을 노동시장으로 끌어들였다. 여성을 포함한 네덜란드 노동자들은 ‘일과 삶의 균형’을 잡을 기회를 얻었고, 기업은 인건비 절감 효과를 챙겼다. 덕분에 이들 노동시장의 시간제 비중은 1983년 21.2%에 견줘 두 배 이상 늘어났다. 또 전체 노동시장 참여율도 50%에서 70%선으로 껑충 뛰었다.
유럽연합의 유연안정 전문가 위원회에서 일하는 톤 윌트하겐 교수(틸뷔르흐대학)는 “네덜란드 사회는 얼핏 보면 상반되는 유연성(flexibiliy)와 안정성(security)을 합친 ‘유연안정성(flexicurity)을 도입할 길을 고민해왔다”면서 “기업뿐만 아니라 직원도 원하는 ‘자발적 시간제’가 활성화된 것은 그런 노력의 부산물”이라고 설명했다.
암스테르담/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프랑스 철도 승무원들 “고용불안 몰라요” 민주노동동맹 철도식당·유로스타 지부 대표 인터뷰
파리북역은 언제나 사람들로 붐빈다. 도버해협을 지나 영국까지 왕복하는 ‘유로스타’나, 프랑스 전역을 연결하는 ‘탈고’ 같은 초고속열차들이 쉴새 없이 들고 난다. 승강장을 오가는 멋진 제복 차림의 승무원들의 밝은 표정이 눈길을 끈다. 1년8개월째 ‘정규직 투쟁’을 벌이고 있는 한국의 케이티엑스 승무원들과는 달라도 많이 다르다.
단지 겉모습만의 차이는 아니다. 유로스타나 탈고의 승무 노동자들에게 ‘고용 불안’이란 단어는 사전 속에만 있었다. 이들은 모두 용역업체 소속이었지만, 프랑스철도공사(SNCF)가 용역업체를 바꾸더라도 고용과 처우는 그대로 승계되기 때문이다. 지난달 27일 오후 파리북역 근처 사무실에서 프랑스 최대 노조인 민주노동동맹(CDFT)의 철도식당지부 대표 질다 르 구벨로(왼쪽)와 유로스타지부 대표 스테판 롤랑(오른쪽)를 만나, ‘고용불안’ 없는 프랑스의 철도승무용역업체 노동자들의 얘기를 들었다.
-철도승무원들의 소속과 인원은?
=모두 용역업체 소속이다. 철도식당이나 장애인도우미 서비스 등 승무서비스들은 모두 용역업체들이 맡고 있다. 철도식당승무서비스 노동자가 제일 많은데 유로스타에만 860명 정도 된다.
-노동자들의 처우 등은 어떻게 결정되나?
=철도식당분야를 예로 들면, 사용자 쪽에선 프랑스철도공사와 용역업체 대표, 노동자 쪽에선 철도식당부문에 지부를 두고 있는 각 노조 대표들이 비노조원에까지 적용되는 단체협약을 맺는다.
-용역업체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은?
=우선 프랑스철도에서 식당서비스가 없어질 가능성은 없다. 또 4년에 한 번씩 용역업체 선정 입찰이 있지만, 입찰에 나서려면 반드시 기존 용역업체 노동자의 고용과 처우 승계를 입찰 조건에 담아야 한다. 근거가 되는 법규는 지난 1956년 프랑스노동법 개정 때 마련돼 지금껏 시행되고 있다.
-용역업체와 직접고용 노동자 사이, 혹은 비정규직과 정규직 사이 차별은 없나?
=차별은 법으로 엄격히 금지돼 있으며, 잘 지켜지고 있다.
파리/양상우 기자 ysw@hani.co.kr
“정규직 보호 줄이고 사회안정망 늘려라” ILO·IMF·세계은행 전문가들 ‘한국 노동시장 유연화’ 제언 한국은 노동유연화와 사회통합이 ‘균형’있게 자리잡고 있을까? 국제노동기구(ILO), 국제통화기금(IMF) 등의 노동분야 국제전문가들은 “정규직 보호를 줄이는 대신 비정규직에 대한 사회안전망 혜택을 늘려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최근 한국노동연구원 주최로 열린 ‘21세기 고용정책을 위한 비전과 전략’ 국제세미나에 참석한 ILO 국제노동연구소 레이먼드 토레스 소장은 “비정규직법 시행에도 정규직이 점점 줄어드는 것은 기업들이 퇴직금을 줘야하는 정규직 채용을 꺼리기 탓”이라며 “공공퇴직연금을 전면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퇴직금을 없애고 정규직·비정규직 할 것 없이 임금의 1.25%를 개인계정에 저축하도록 한 오스트리아를 “혁명적인” 사례로 꼽았다. 그는 또 “고용보험 혜택을 못 받는 근로자들이 많은데, 정부가 감시감독을 강화하고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처럼 통합적인 사회안전망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IMF 메랄 카라술루 주한대표는 ‘일자리’가 아닌 ‘노동자의 삶’을 보호하려면,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규직 보호수준이 낮을수록 (채용에 대한 부담이 적어져) 정규직 비중이 높아진다”며 미국·영국·아일랜드 등을 사례로 들었다. 그렇지만 카라술루 대표도 정규직 해고 규제를 완화하는 대신 그에 따른 ‘빈자리’를 사회보험 강화로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현재 한국 비정규직 중 국민연금·건강보험 혜택을 받는 비율은 50%에도 못 미친다”며 “정규직 해고 과정을 간소화하고, 대신 사회보험을 확대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은행 ‘사회보장과 노동’ 부서의 선임경제학자 밀란 보도피벡도 “나 역시 지금의 고용보험제도가 정규직을 과다보호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며 “노동시간이 단축되고 있는데도 기업들이 고용확대를 하지 않는 원인을 살펴보는 것과 함께, 실업수당강화 등 적극적인 노동시장정책을 도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안남기 응용경제연구소 연구위원/스페인 박명준 전 막스플랑크 사회연구소 연구원/독일 정희정 틸뷔르흐대학 노동연구소 연구원/네덜란드
80년대초 경제위기때 도입 “기업·직원 모두 원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근교에 사는 미리암 텐 카테(36·위 사진)는 세 아이를 둔 ‘일하는 엄마’이다. 그는 금융회사인 아이엔지그룹에서 ‘인사관리자’로 일주일에 30시간씩 일한다. 1999년 처음 입사했을 때는 주당 36시간을 일하는 상시근무였다. 하지만 첫딸을 낳은 2001년 시간제근무로 전환했다. 아이를 돌볼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는 일하는 시간도 짧지만, 출퇴근 시간도 자유롭다. 그는 “집에서 틈틈이 업무 전화를 받는 시간도 근무 시간으로 친다”면서 “회사와 30시간을 계약하면서 ‘해내겠다’고 한 업무량을 채우고 약속한 성과를 달성하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네덜란드 아이엔지그룹에는 전체 3만명 직원 가운데 21%인 6300여명이 일주일에 36시간 미만의 시간제로 근무한다. 정규직 비중은 94%다. 시간제로 일해도 임금이 시간 비례로 줄어들 뿐, 상여금·휴가·교육 등 각종 복리 혜택은 똑같다. 네덜란드에서는 15살 이상 노동 인구의 45.5%가 시간제(주 36시간 미만)로 일한다. 일하는 여성의 74.2%, 남성의 22.2%에 이르지만, 이 가운데 비자발적인 경우는 6.1%에 불과하다. 운동·건강관리 기업인 케어포트에서 시간제로 일하는 카롤린 슬라크트(46) 매니저는 “예전에는 아내만 시간제로 일하는 게 흔했지만, 요즘은 젊은 남자들도 자유시간을 더 많이 갖거나 교육·창업에 도전하려 시간제를 원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시간제 노동이 차별받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뒷받침으로 가능했다. 아이엔지의 홍보 매니저인 데비 브란드는 “전체 직원의 상위 0.2% 안에 드는 톱 매니저들 가운데도 일주일에 3~4일만 일하는 시간제 근무자들이 있다”면서 “차별은 금지돼 있고, 능력있는 인력을 쓰려면 시간제를 마다해선 안 된다”고 설명했다.
프랑스 파리와 영국 런던을 오가는 초고속 열차 ‘유로스타’의 승무원들이 밝은 표정으로 지난달 하순 파리북역의 승강장을 나서고 있다. 모두 용역업체 소속이지만, 용역업체가 바뀌더라도 고용 승계가 보장되는 이들에게 ‘고용불안’을 느끼기는 어렵다. 파리/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주요 국가들의 노동시장 시간제 비중
프랑스 철도 승무원들 “고용불안 몰라요” 민주노동동맹 철도식당·유로스타 지부 대표 인터뷰
프랑스 최대 노조인 민주노동동맹(CDFT)의 철도식당지부 대표 질다 르 구벨로(왼쪽)와 유로스타지부 대표 스테판 롤랑(오른쪽)
“정규직 보호 줄이고 사회안정망 늘려라” ILO·IMF·세계은행 전문가들 ‘한국 노동시장 유연화’ 제언 한국은 노동유연화와 사회통합이 ‘균형’있게 자리잡고 있을까? 국제노동기구(ILO), 국제통화기금(IMF) 등의 노동분야 국제전문가들은 “정규직 보호를 줄이는 대신 비정규직에 대한 사회안전망 혜택을 늘려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최근 한국노동연구원 주최로 열린 ‘21세기 고용정책을 위한 비전과 전략’ 국제세미나에 참석한 ILO 국제노동연구소 레이먼드 토레스 소장은 “비정규직법 시행에도 정규직이 점점 줄어드는 것은 기업들이 퇴직금을 줘야하는 정규직 채용을 꺼리기 탓”이라며 “공공퇴직연금을 전면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퇴직금을 없애고 정규직·비정규직 할 것 없이 임금의 1.25%를 개인계정에 저축하도록 한 오스트리아를 “혁명적인” 사례로 꼽았다. 그는 또 “고용보험 혜택을 못 받는 근로자들이 많은데, 정부가 감시감독을 강화하고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처럼 통합적인 사회안전망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IMF 메랄 카라술루 주한대표는 ‘일자리’가 아닌 ‘노동자의 삶’을 보호하려면,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규직 보호수준이 낮을수록 (채용에 대한 부담이 적어져) 정규직 비중이 높아진다”며 미국·영국·아일랜드 등을 사례로 들었다. 그렇지만 카라술루 대표도 정규직 해고 규제를 완화하는 대신 그에 따른 ‘빈자리’를 사회보험 강화로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현재 한국 비정규직 중 국민연금·건강보험 혜택을 받는 비율은 50%에도 못 미친다”며 “정규직 해고 과정을 간소화하고, 대신 사회보험을 확대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은행 ‘사회보장과 노동’ 부서의 선임경제학자 밀란 보도피벡도 “나 역시 지금의 고용보험제도가 정규직을 과다보호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며 “노동시간이 단축되고 있는데도 기업들이 고용확대를 하지 않는 원인을 살펴보는 것과 함께, 실업수당강화 등 적극적인 노동시장정책을 도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안남기 응용경제연구소 연구위원/스페인 박명준 전 막스플랑크 사회연구소 연구원/독일 정희정 틸뷔르흐대학 노동연구소 연구원/네덜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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