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개 사내하청업체가 함께 일하는 충남 서산시 동희오토의 하청업체 해고자들이 지난해 6월 공장 내 한 하청업체가 폐업하자 회사 문을 두드리며 이에 항의하고 있다. 금속노조 동희오토 사내하청지회 제공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는 사내하청] 하
정부, 보호지침 만들다 경영계 비판에 유야무야
인권위 노동관계법 개정 권고도 “현행법 안에서”
상시업무 하청계약 금지하고 차별시정 신청권 줘야
정부, 보호지침 만들다 경영계 비판에 유야무야
인권위 노동관계법 개정 권고도 “현행법 안에서”
상시업무 하청계약 금지하고 차별시정 신청권 줘야
편법적으로 운영되는 사내하청 업체는 일종의 ‘실체 없는 회사’라 할 수 있다. 하청업체는 원청업체와 노동자 사이의 ‘거간꾼’일 뿐이다. 물론 노동자의 근로계약서는 하청업체와 체결된다. 하지만 원청업체가 경영상의 이유로 구조조정을 하고 싶으면 하청업체와 계약을 해지하면 그만이다. 근로기준법상 요건을 갖출 필요가 없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법의 허점을 노린 이런 계약관계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자본주의의 ‘사적계약 자유’의 원칙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보호하는 적극적인 대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손 놓은 정부 노동부는 지난해 7월 비정규직법 파동 직후, 당시 이영희 장관의 지시에 따라 하청노동자 고용안정 등을 위해 원청·하청 사용자가 지켜야 할 사항을 담은 ‘사내하청 노동자 근로조건 보호지침’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2008년에 실시한 300명 이상 사업장 실태조사(<한겨레> 1월19일치 1면)를 토대로 지난해 하반기에 보호지침 초안까지 만들었으나 그 뒤 유야무야됐다. 노동부 관계자는 “실익도 없는데 뭐하러 하냐는 비판이 경영계에서 제기돼 중단된 상태”라며 “올해 안에 노사 의견을 들어 재추진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정부의 의지다. 김성희 한국비정규센터 소장은 “새 규제 방안을 내세우기에 앞서 정부가 현행 법을 엄격히 적용하기만 해도 편법적인 사내하청을 불법파견으로 처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노동부는 몇 가지 사례를 불법파견으로 판정했지만, 검찰은 원청업체의 사용자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이를 기소하지 않고 있다.
반면 법원은 몇몇 대기업의 사내하청에 대해 잇따라 불법파견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박점규 전국금속노조 미조직비정규부장은 “우선 정부가 사내하청 문제를 주요 노동현안으로 설정하고 광범위한 실태조사 뒤에 불법파견 근절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 강력한 법적 규제 필요 정부가 사내하청 문제를 방치하다보니, 입법적 수단으로 이를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지난해 9월 국가인권위원회는 노동부 장관에게 노동관계법을 개정하라고 권고했다. 인권위는 “현행 법의 ‘사용자’의 정의를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에서 ‘근로조건 등의 결정에 대해 실질적인 영향력이 있는 자’로 확대하라”고 밝혔다. 또 상시업무에 대한 직접고용 원칙을 법률에 명시하고, 하청 노동자에게도 차별시정 신청권을 주라고 덧붙였다.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은 인권위 권고를 토대로 최근 ‘사내도급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 초안을 마련했다. 법안에는 △상시업무에 대한 사내하청 계약 체결 금지 △사내하청 전환 때 근로자 대표와 협의 △사내하청 노동자의 원청업체 교섭권 인정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이렇게 되면 원청의 사내하청 남용을 줄이고, 하청 노동자들이 원청업체와 동등한 근로조건을 갖기 위해 협상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홍 의원은 민주노총 등 노동계와 협의를 마친 뒤 올해 안에 법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하지만 노동부는 인권위 권고가 너무 앞서간 주장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현재도 편법적인 하청을 불법파견으로 규제할 수 있는 만큼, 현행 법 테두리 안에서 대안을 모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노조도 브레이크 걸어야 노조가 ‘좋은 일자리 운동’을 벌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조가 나서 사내하청 도입을 막고 신규 인력수요를 ‘좋은 일자리’인 정규직으로 유도하자는 것이다. 특히 파견 노동자 사용이 금지된 제조업 직접생산 공정을 중심으로 편법적인 사내하청이 확산되는 추세여서, 이 분야 노조의 역할이 중요하다.
전국금속노조 사업장인 콘티넨탈 오토모티브 일렉트로닉스와 케피코 등은 노사가 특별협약을 맺어 사내하청 등 비정규직 채용을 제한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생산량 증가로 신규 채용 수요가 발생할 때 양질의 정규직 일자리가 생긴다. 지난해 금속노조가 집계한 자료를 보면, 비정규직의 신규 채용을 규제하는 사업장은 30여곳에 이른다. 노사합의로 해마다 사내하청 노동자 10%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타타대우상용차의 사례도 있다. 타타대우 노사는 오는 4월에도 정규직 전환을 시행할 방침이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전국금속노조 사업장인 콘티넨탈 오토모티브 일렉트로닉스와 케피코 등은 노사가 특별협약을 맺어 사내하청 등 비정규직 채용을 제한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생산량 증가로 신규 채용 수요가 발생할 때 양질의 정규직 일자리가 생긴다. 지난해 금속노조가 집계한 자료를 보면, 비정규직의 신규 채용을 규제하는 사업장은 30여곳에 이른다. 노사합의로 해마다 사내하청 노동자 10%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타타대우상용차의 사례도 있다. 타타대우 노사는 오는 4월에도 정규직 전환을 시행할 방침이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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