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노동

[길을 찾아서] 손도 못쓰고 떠나보낸 동생 ‘똘똘이’ / 이총각

등록 2013-05-27 19:48수정 2013-05-28 08:39

1967년 봄 10살 아래 여동생 ‘은옥’의 죽음을 계기로 이총각(가운데)은 가톨릭과 인연을 맺었다. 사진은 인천 구월동 인천시청이 들어선 옛 천주교 공원묘지에 있던 은옥의 묘를 70년 봄 동일방직 동료이자 가톨릭노동청년회(JOC) 회원인 친구들과 함께 찾아갔을 때 모습.
1967년 봄 10살 아래 여동생 ‘은옥’의 죽음을 계기로 이총각(가운데)은 가톨릭과 인연을 맺었다. 사진은 인천 구월동 인천시청이 들어선 옛 천주교 공원묘지에 있던 은옥의 묘를 70년 봄 동일방직 동료이자 가톨릭노동청년회(JOC) 회원인 친구들과 함께 찾아갔을 때 모습.
이총각-우리들의 대장, 총각 언니 8
1965년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여동생 은옥이의 별명은 입이 야물고 똑똑해서 ‘똘똘이’였다. 그런데 어느날부터인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더니 팔랑개비처럼 쌩쌩하던 날개를 접고 혼자 집을 지키는 날이 많아졌다. 어린 막내 희복이도 있는데다 장사까지 다녀야 했던 어머니는 똘똘이를 돌볼 여력이 없었다. 총각은 가난을 불평하거나 원망한 적은 없었지만 동생이 아파도 병원조차 갈 수 없는 현실은 가슴 아팠다. 그저 동네 어른들이 신부전증 같다고 하니 그러려니 할 수밖에 없었다. 그땐 너나없이 아파도 병원을 간다는 건 엄두도 못 냈고 그러다 죽어도 어쩔 수 없던 시절이었다.

해를 넘겨 4학년이 됐지만 은옥이는 여전히 낫지 않았다. 동일방직에 취직한 총각은 어느날 야근을 끝내고 들어온 아침 눈에 띄게 병색이 완연한 동생을 보고 깜짝 놀랐다. 퉁퉁 부은 얼굴은 창백하면서도 누렇게 떠 있었다. 똘똘이는 꼼짝 못하고 누워 눈만 껌뻑이며 언니를 힘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덜컥 겁이 났다. 동생이 곧 죽을 것만 같았다. 총각은 똘똘이를 둘러업고 파출소로 뛰어갔다. 그러고는 동생을 살려달라고 대성통곡을 했다. 밑도 끝도 없이 은혜는 꼭 갚겠다며 섧게 우는 총각이 짠했던지, 경찰관은 어디론가 전화를 하더니 황인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 총각은 동생을 다시 둘러업고 걸어서 15분 정도나 되는 거리를 정신없이 달려갔다. 그날 의사가 내린 진단이 무엇이었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똘똘이는 태어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주사와 링거를 맞았다. 지금도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황인병원을 볼 때마다 그날의 고마움에 울컥해진다.

돌아오는 길은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정말로 죽을 수밖에 없는 병이라면 병원 문턱 한번 못 밟아보고 세상을 달리할 동생이 너무 불쌍했다. 언니의 마음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똘똘이는 오랜만에 미소를 지었던 것도 같다. 긴장이 풀리니 그제야 힘든 야근 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총각은 힘없이 누워 있는 똘똘이 옆에서 오랜만에 깊은 단잠이 들었다.

67년 봄, 입사하고 1년이 넘어가면서 이젠 단련이 될 만도 하련만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야근반 8시간은 정말 지옥 같았다. 잠은 쏟아지고 속은 더부룩하고 그날따라 실도 자주 끊어졌다. 야근반을 앞두고 있을 때는 어쩐지 미리부터 소화가 안됐다. 뭐라도 조금 먹으면 체한 듯 가슴이 답답해서 옷핀으로 손끝을 자꾸 땄다. 워낙 살집이 있는 체격은 아니었지만 총각은 나날이 삐쩍 말라가고 있었다. 그래도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여전히 동일방직 노동자인 것이 자랑스러워 출퇴근 때도 늘 파란색 작업복을 입고 다닐 정도였다. 아무나 입을 수 있는 옷이 아니었기에 길거리에 나서면 부러운 시선이 느껴져 어깨가 으쓱해지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힘들 때 의지가 되는 건 입사 동기들이었다. 특히 같은 정방과 2반에 배치된 이영순하고는 단짝이 되었다. 총각만큼 일 잘하는 영순이는 얼굴도 예뻐서 질투가 나기도 했다. 그래도 마음이 잘 통해 일하는 짬짬이 뭐가 그리도 재밌는지 깔깔거리고 웃으며 힘든 것도 잠시 잊어버릴 수 있었다. 영순이의 언니도 3반에 근무하고 있어서 여러 가지로 통하는 게 많았다. 하지만 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인지 영순이는 나중에 노조 활동을 하지 않아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병원을 다녀온 뒤 잠깐 기운을 차리는 듯 보였던 똘똘이의 병세는 더 이상 나아지지 않았다. 학교도 못 가고 집에서 한없이 시간을 보내야 했던 아이는 방에 앉아 뒷문을 열어두고 햇볕을 쐬곤 했다. 어느날 항아리를 팔러 다니던 아주머니가 지나가다 똘똘이를 보고는 어린 영혼이 오래 못 갈 것 같다며 불쌍해했다. 후에 자식 하나가 신부가 됐을 정도로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그분은 죽어서나마 좋은 곳으로 가게 하자며 대세(천주교인이 아니지만 임종을 앞두고 있는 사람에게 교인이 신부 대신 주는 세례)를 받게 하자고 제안을 했다. 아이의 생명은 점점 꺼져가는데 무엇으로도 손쓸 방도가 없던 부모님은 그렇게 하자고 했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다. 식구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그분의 대세를 받고 똘똘이는 ‘말가리다’라는 세례명을 얻었다.

사흘 뒤 바람이 많이 불던 봄날, 똘똘이의 숨이 가늘어지기 시작했다. 총각은 동생이 죽을 것 같아 밤새 잠도 못 자고 있는데 새벽 5시를 알리는 노래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고향무정’이라는 노래였다. 지금도 그 노래를 들으면 조금씩 숨이 꺼져가던 동생의 얼굴이 떠올라 처량해지곤 한다. 어머니가 똘똘이가 죽었다고 말해줬지만 총각은 믿어지지가 않아 서럽게 통곡만 했다.

이총각 구술

구술정리 박민나<가시철망 위의 넝쿨장미> 작가

<한겨레 인기기사>

경찰이 타이르기만 한 스토킹범죄…‘호러물’보다 끔찍한 결말
“싸이, 미안해요” 이탈리아 축구팬들 사과
CJ 압수수색 다음날 회장집에 도둑 들어
“자동차 급발진 원인 부품 찾았다”
[화보] 칸 영화제 폐막…영광의 주인공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단독] 도이치 주범 “주가조작은 권오수·김건희 등 합작품인 듯” 1.

[단독] 도이치 주범 “주가조작은 권오수·김건희 등 합작품인 듯”

[단독] 경찰들 “윤석열 ‘가짜 출근’ 쇼…이미 다 아는 사실” 2.

[단독] 경찰들 “윤석열 ‘가짜 출근’ 쇼…이미 다 아는 사실”

오늘 오전 11시45분, 입시비리·감찰무마 혐의 조국 대법원 선고 3.

오늘 오전 11시45분, 입시비리·감찰무마 혐의 조국 대법원 선고

전국국어교사 2511명 “윤, 위선과 독선의 언어로 국민 기만…퇴진 촉구” 4.

전국국어교사 2511명 “윤, 위선과 독선의 언어로 국민 기만…퇴진 촉구”

[단독] 윤, 조지호에 6차례 ‘의원 체포’ 지시…계엄 해제 뒤 “수고했다” 5.

[단독] 윤, 조지호에 6차례 ‘의원 체포’ 지시…계엄 해제 뒤 “수고했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