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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길을 찾아서] ‘전태일 산화’ 계기로 노동자로서 눈떠 / 이총각

등록 2013-06-02 19:33

이총각은 1970년 11월 지오세 투사모임을 통해 서울 청계천에서 산화한 전태일 열사의 소식을 듣고 충격 속에 노동자로서 자각을 했다. 사진은 70년대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의 청계피복 다락방 작업장에서 일하고 있는 십대 여성 노동자들의 모습.
이총각은 1970년 11월 지오세 투사모임을 통해 서울 청계천에서 산화한 전태일 열사의 소식을 듣고 충격 속에 노동자로서 자각을 했다. 사진은 70년대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의 청계피복 다락방 작업장에서 일하고 있는 십대 여성 노동자들의 모습.
이총각-우리들의 대장, 총각 언니 12
1970년 11월13일,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의 재단사 전태일은 평화시장·통일상가·동화시장의 노동자들의 모임인 삼동회 회원들과 함께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시위를 했다. 그동안 평화시장을 관리하는 평화시장주식회사와 노동청을 상대로 수없이 진정서를 냈지만 늘 속는 건 노동자들이었고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당시 평화시장 상가 내 노동자 3만여명 가운데 80% 이상이 여성이었고 그중 25% 정도는 18살 미만의 어린 소녀들이었다. 전태일은 하루 15시간 이상 햇빛도 못 보고 열악한 환경에서 일해야 하는 나이 어린 여공들에게 최소한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바깥공기를 마시게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정부도 자본가도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힘겨운 삶을 외면하기만 했다. 전태일은 죽음을 불사한 항거를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으리라는 판단을 내렸다. 그리고 이날 그는 자신의 몸을 불살라 모든 병들고, 지치고, 고통스럽고, 방황하는 노동의 현장을 훤히 밝혔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마라!”

이총각은 69년 11월 지오세(가톨릭노동청년회·JOC) 투사 선서를 한 이후 1년 가까이 매주 한번 모이는 투사 모임에 꼬박꼬박 열정적으로 참석했다. 바로 그 투사 모임에서 전태일의 산화 이야기를 들은 그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개인의 이기심을 버리고 사회정의를 위해 자기 목숨까지 내놓고 투쟁할 수 있을까? 게다가 그는 총각보다 한 살 어린 젊은이였다. 지난 1년을 투사로서 모범이 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며 살아왔고, 이제 막 노동 현장에 들어와 힘들게 적응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총각은 따뜻한 손을 내밀려고 애써왔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날 투사 모임을 지도하던 정양숙 마리안나 언니는 노동자와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늘 카르댕 추기경님의 말씀에 따라 인간의 존엄성과 노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던 언니는 전태일 열사의 숭고한 희생이 헛되이 되지 않게 우리 안에 들어온 불씨를 살려 활활 타오르도록 해야 한다며 끝내 눈물을 보였다.

70년 11월27일 평화시장 노동자와 민주학생 및 종교인과 지식인들의 관심 속에 드디어 전국연합노조 청계피복지부가 결성되었다. 지오세는 그동안 회원들이 사회문제에 대한 관찰과 노동법규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고, 남을 위한 희생정신과 용기가 필요하다는 평가를 공유했다. 그리고 노동문제는 노동자 스스로 해결해야 하고 노동자들을 위한 기도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며 지도투사인 정인숙 아네스를 청계노조에 파견했다.

총각은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인간답게 사는 세상’이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었다. 지오세의 노동자운동은 노동자 자신이 주체적으로 일함으로써 자신감을 갖고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배웠다. 이제 그 노동자의 주체성으로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을 깊게 들여다보고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총각은 노동자의 권리가 뭔지, 뭘 주장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시키는 대로 하고 주는 대로 받으며 노동시간도 긴지 짧은지에 대한 인식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노동에 대한 의식이 달라지니 자신이 일하는 현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날 아침 야간근무를 끝내고 작업대를 정리하는데 늘 그렇듯이 반장이 모이라고 했다. 그날도 담임은 일장 연설을 하기 시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작했다. 하는 얘기는 한치도 틀림없이 어떻게 하면 더 열심히 일하고 더 많은 생산량을 낼 것인가였다. 밤새 잠을 쫓아내며 기계의 속도를 따라가느라 지칠 대로 지친 동료들은 배까지 고파 서 있을 힘도 없는 상태였다. 총각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얼마나 더 잘해야 합니까? 감당하기도 힘들 만큼 기계를 많이 받아도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하고 있고 누구 한 사람 꾀부리는 걸 못 봤습니다.”

총각의 한마디에 모두들 놀라 쳐다봤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일을 열심히 하는 그였기에 담임은 대충 얼버무리며 그 자리를 끝냈다. 입안 가득 차 있던 바른 소리가 자신도 모르게 툭 튀어나왔지만 총각에겐 큰 용기를 준 사건이었다.

이총각 구술

구술정리 박민나<가시철망 위의 넝쿨장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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