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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길을 찾아서] 첫 여성집행부였지만 ‘할 수 있다’ 자신감 / 이총각

등록 2013-06-09 19:29

1972년 5월 동일방직 민주노조는 첫 여성지부장을 비롯해 여성 간부로만 구성되면서 점차 안팎의 주시를 받기 시작했다. 사진은 이총각(왼쪽)이 대의원이자 쟁의부장을 맡아 노조 활동에 뛰어들 무렵인 그해 6월 같은 작업반 동료인 이영순(가운데)·유금순(오른쪽)과 함께 한 모습.
1972년 5월 동일방직 민주노조는 첫 여성지부장을 비롯해 여성 간부로만 구성되면서 점차 안팎의 주시를 받기 시작했다. 사진은 이총각(왼쪽)이 대의원이자 쟁의부장을 맡아 노조 활동에 뛰어들 무렵인 그해 6월 같은 작업반 동료인 이영순(가운데)·유금순(오른쪽)과 함께 한 모습.
이총각-우리들의 대장, 총각 언니 17
1972년 5월 역사적인 첫 여성 지부장을 비롯해 여성들로만 구성돼 출범한 동일방직 노조 집행부가 처음부터 많은 기대를 모은 것은 아니었다. 사실 여성 간부들 자신도 ‘기대 반 우려 반’이었다. 당시엔 섬유산업이 호황이어서 회사가 주길자 지부장에게 비교적 관대한 편이었던 데다가, 유신정권도 크게 신경 쓰는 눈치는 아니었다. 하지만 점차 비인간적인 규칙들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해나가자 회사는 신경을 곤두세우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여성들 자신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이는 민주노조에 대한 확신으로 이어졌다.

이총각은 정방과 2반 대의원으로 함께 당선된 김영희·김상숙과 고민을 나누면서 점차 반원을 비롯한 조합원들의 권익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분명히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김상숙은 인천 도시산업선교회(산선) 회원으로 활동 중이었고, 김영희는 대의원이 된 뒤 총각의 권유로 가톨릭노동청년회(지오세) 회원이 됐다. 정방과는 24시간 기계를 멈출 수 없는 공정이었기 때문에 현장에서 반원을 모두 모아놓고 교육을 할 기회는 없었다. 하지만 개개인의 고정처리 문제를 접수하면 곧장 해결하거나 지부장에게 연결해 반드시 처리하도록 했다.

여성 집행부가 들어서면서 노조의 모든 운영은 민주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에 맞춰 조합원들의 호응도가 높아지고 의식이 고양되자 회사 쪽은 부당노동행위를 감행하기 시작했다. 화장실에서 조금이라도 시간을 지체한다거나 실이 끊어졌다거나 하는 사소하고 일상적인 일들을 문제 삼아, 시말서를 쓰게 하거나 기계 할당을 늘려서 힘들게 만드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특히 열성적인 조합원들이나 대의원, 조합 간부들을 주시하며 낡은 기계를 배정하는 등 갖가지 불이익을 주어 힘들게 만들었다.

회사 쪽의 황당한 처사에 걸려들지 않으려고 조합원들은 나름 조심을 했지만 작은 사건들이 심심찮게 발생했다. 현장에서 바로 처리되지 않을 땐 대체로 조합 사무실에서 문제를 논의했는데, 오후 근무 중에 사안이 큰 고정처리 문제가 발생하면 퇴근 뒤 밤 10시가 넘는 한밤중에도 문제를 당한 당사자들과 간부들이 주 지부장을 찾아갔다. 송림동 동산고 근처 산꼭대기에 그의 집이 있었다. 마침 동일방직 직포과에서 근무하고 있던 그의 남동생은 조합원들이 찾아오는 걸 달가워하지 않았다. 누나가 지부장이 되자 남성 조합원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고도 했다. 고정처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회의는 문제의 성격부터 해결 방법까지 간부들이 제시를 하고 지부장은 수용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다가 회의가 길어지면 통행금지시간에 걸려 그 집에서 모두 자는 날도 있었다.

주길자는 첫 여성지부장이라는 이유로 외부에서 찾는 일이 많았다. 아마 대접해주는 곳이 많았을 것이다. 물론 기본적으로 다른 사업장을 방문해야 하고 미조직 사업장에 용기와 자신감을 북돋아주는 일은 그가 해야 할 당연한 임무였다. 하지만 잦은 외출은 집행부 내부의 불만을 일으킬 수 있었다. 게다가 민주노조에 대한 그의 진정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있는 상태였다.

총각은 짧게 끝난 학교 생활 이후 자신이 무엇을 잘 할 수 있을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대의원이라는 책임을 맡고 그 일에 최선을 다하려다 보니,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더불어 일을 만들어나가는 데 적성이 있는 것 같았다. 이 모든 일은 민주적인 노조를 발전시키고 나아가 조합원의 권익을 보호하고 향상시키기 위해 목숨 바쳐 해나가야 할 중요한 과제라고 믿었다. 그런 만큼 지각도 자주하고 왠지 조합원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주 지부장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한번은 “지부장이 출세하는 자리인 것 같아요? 누가 만들어준 자리인데 이런 식으로밖에 못해요?”라며 항의를 하고 말았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다. 대놓고 질책하는 소리를 듣자 난감했는지 지부장은 눈물을 흘렸다. 지금 생각해도 왜 출세 운운하며 몰아세웠을까 싶어서 총각은 내내 마음에 걸린다.

주 지부장의 임기 3년은 그런대로 큰 문제없이 지나갔다. 조합원들은 그동안 지부장 얼굴도 잘 모르고, 조합비를 떼이는지도 모르고 일만 해왔는데, 이제는 지부장이 하루에 한번 현장을 돌며 노조의 힘을 과시하고, 부당한 일을 당하면 즉각 달려오는 대의원이 있어서 마냥 든든했다.

이총각 구술

구술정리 박민나<가시철망 위의 넝쿨장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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