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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길을 찾아서] 노조가 겪은 첫 시련 ‘임소녀 해고사건’ / 이총각

등록 2013-06-10 19:57수정 2013-06-11 08:18

1973년 이총각을 비롯한 동일방직 민주노조는 지오세 회원이자 부지부장인 임소녀(가운데)에 대한 해고를 비롯해 조합 간부들에 대한 회사의 교묘한 탄압에 맞서야 했다. 회사는 임 부지부장이 나이가 어려 친척 언니의 이름으로 입사한 사실을 뒤늦게 문제삼았다.
1973년 이총각을 비롯한 동일방직 민주노조는 지오세 회원이자 부지부장인 임소녀(가운데)에 대한 해고를 비롯해 조합 간부들에 대한 회사의 교묘한 탄압에 맞서야 했다. 회사는 임 부지부장이 나이가 어려 친척 언니의 이름으로 입사한 사실을 뒤늦게 문제삼았다.
이총각-우리들의 대장, 총각 언니 18
1973년 이총각은 동일방직 노동조합 쟁의부장에서 부녀부장으로 직책이 바뀌었다. 하지만 특별히 다른 임무가 있었던 기억은 없다. 당시는 노동조합 활동이 분야별로 진행되기엔 아직 역량이 축적되지 않은 시기였다. 워낙 어용노조 시절 해놓은 일이 없어서 조직을 관리하고 노조의 제 기능 찾기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바빴다.

주길자 지부장 초기에 발생한 ‘임소녀 해고사건’은 여성 집행부가 처음으로 겪은 시련이었다. 자신들이 내세운 남성 후보가 지부장 선거에서 떨어지고 인천 도시산업선교회(산선)와 가톨릭노동청년회(지오세) 활동가들이 노조를 장악하자 회사 쪽에서는 조합 간부들에 대한 대대적인 신원조회에 들어갔다. 뭐든 꼬투리가 될 만한 것들을 잡아 민주노조 집행부를 흔들어 놓을 셈이었다.

그런 과정에서 부지부장이던 김경분에게 문제가 생겼다. 그가 어린 나이에 친척 언니의 신분증으로 입사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회사는 당장 그를 해고했다. 당시엔 초등학교만 겨우 나온 여성들이 가족들을 먹여 살리고 남자 형제들의 학비를 벌기 위해 나이 많은 남의 이름을 빌려 입사하는 사례가 종종 있었다. 그래서 입사가 가능한 나이가 되면 자기 이름으로 재입사를 하기도 했다. 김경분도 그런 상황이었으니 자신의 이름인 ‘임소녀’로 재입사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항변을 했지만 회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와인다과에서 일하던 그는 지오세 회원으로 총각보다 나이는 어렸지만 똑똑하고 열정적인 활동가였다.

노조는 회사와 협상을 통해 우선 노무과 발령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임소녀에게는 일을 주지 않아 하루 종일 덩그러니 빈 책상에서 멍하게 앉아 있어야 했다. 그래서 그는 공부를 다시 해볼 결심을 하고 야간고에 입학했다. 그런 다음 제 이름으로 재입사하는 절차를 밟고 다시 노무과에 배치됐지만 회사는 여전히 일을 주지 않았다. 그는 그러는 중에도 지오세 활동을 열심히 해서 73년 3월부터 74년 9월까지 지오세 인천교구 여자 회장을 지냈다.

총각은 지오세 활동을 같이 하며 늘 서로에게 의지가 되었던 그가 해고당했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사문서 위조’라고는 하지만 충분히 이해가 되는 상황이었고 양해를 해오던 일이었는데 노조 간부이기 때문에 절대로 용서를 해주지 않는 것이었다. 총각은 아주 사소한 트집도 잡히지 않으려면 회사의 어떤 억지도 물리칠 수 있도록 우선 조합의 힘을 기르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대의원이자 조합 간부로서 총각은 노동조합 운동에 관한 교육을 받게 됐다. 당시 섬유노조 본부(섬유본조) 교육선전부장이었던 표응삼은 동일방직 여성 집행부를 위해 교육도 많이 하고 다양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총각은 이런 교육을 통해 가난해서 학교도 제대로 못 다닌 것이 내 탓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에 눈을 뜨게 되었다. 노동자도 인간이고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는 것이었다. 총각은 자신이 신념을 갖고 해나갈 노조 일이 단순히 돈을 벌어서 식구들 배 곯지 않게 하는 것 말고도 노동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데 작게나마 보탬이 된다는 확신이 생겼다.

점차 기틀을 잡아가기 시작한 동일방직 민주노조는 예전 집행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많은 성과를 냈다. 맨 먼저 임금협상을 통해 100%까지 차이가 나는 남녀 임금 격차를 조금이나마 줄이는 성과를 냈다. 당장 필요한 탈의실과 목욕실 문제도 해결했다. 그 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현장 한구석에서 남의 눈을 피해 작업복을 갈아입느라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35도를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웃도는 현장에서 일년 내내 솜먼지를 마시며 땀을 흘리는데도 씻을 곳이 마땅치 않았다. 강제로 30분 일찍 출근을 해야 하는 것도 부당한 일이었다. 계산되지 않는 노동은 자율에 맡기면 되는 거였다. 무엇보다 생리휴가 찾아쓰기는 여성 집행부가 따내야 할 우선 과제였다. 1383명의 노동자 중에 83.2%인 1214명의 여성 노동자들에게 한달에 한번 있는 그날은 쉬게 해주는 것이 회사 전체의 생산성 향상에도 도움이 될 일이었다. 이렇게 지부장 아래 간부들과 조합원들이 단합하여 준법투쟁을 하며 노조의 힘이 커져가자 산선과 지오세의 영향력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총각 구술

구술정리 박민나<가시철망 위의 넝쿨장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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