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2월 동일방직 2기 여성 집행부에서 노조 상근직인 총무부장을 맡은 이총각(오른쪽)은 사무실을 지키며 회사 쪽의 사주를 받은 남성 조합원들의 행패를 혼자 감당해야 할 때가 많았다. 사진은 총무부장 시절 노조 사무실 앞 잔디밭에서 노조 사무를 맡은 간사와 함께한 모습.
이총각-우리들의 대장, 총각 언니 23
1975년 이영숙 집행부가 들어서면서 노동조합 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자, 동일방직 회사 쪽의 부당노동행위는 한층 노골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조합 간부와 열성적인 조합원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며 대리에서 담임-반장-조장으로 내려오는 군대식 위계질서를 이용해 작업능률을 감시·독촉하는 방식으로 괴롭혔다. 기계의 속도를 높이면 실이 끊어지는 일이 많아 곤욕을 치르게 되는데, 이를 감시하고 있다가 수시로 윽박지르며 질책을 했다. 그리고 이전에는 도시산업선교회(산선)와 가톨릭노동청년회(지오세) 회원임을 공개적으로 밝히며 활동을 했지만 이제는 불순한 클럽으로 취급하며 탈퇴를 강요하기도 했다.
관리자들은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에 매사에 꼬투리 잡히지 않으려고 조합원들은 전전긍긍하며 일을 해야 했다. 5분 이상 지각하면 경비실에서 얼굴을 확인한 뒤 아예 공장 안으로 못 들어오게 하고 바로 결근 처리를 해버리는 식이었으니, 잠시 잠깐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또한 갑작스럽게 공장에 못 나오게 됐을 때, 동료를 통해서 미리 사정을 전달했는데도 시말서를 쓰라는 둥 난리를 피웠다. 아파서 죽는 한이 있어도 공장에 나와서 죽으라는 식이었다. 조합원들은 황당했지만 이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수밖에 없었다.
총무부장으로서 노조 사무실에 상근하게 된 이총각은 지부장이 섬유본부노조(섬유본조) 회의나 외부 행사, 다른 사업장 방문 등으로 외출할 때가 많아 혼자 사무실을 지키는 일이 많았다. 그런 상황에서는 지부장이 해야 할 일까지 감당하며 현장에서 돌아가는 일을 점검해 놓음으로써 지부장이 놓치는 일이 없도록 공유를 해야 했다. 무엇보다 힘든 건 남자 조합원들이 노조 사무실에 와서 부리는 행패를 혼자서 다 겪어내야 하는 일이었다. 남자 조합원들은 점심시간 1시간 외에 오전 10시와 오후 3시 두차례 휴식시간(흡연)이 있었다. 그런데 그때마다 노조 사무실로 몇 명씩 몰려와서 쌍욕을 하며 위협을 하고 유리컵을 던지기도 했다.
총각은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명분으로 회사 쪽에서 시키는 대로 하수인 노릇이나 하는 남자들을 보며 ‘결혼은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은 그러는 꼴을 더는 못 보겠어서 “내가 잘못한 게 뭐냐? 너희들 임금 올려주려고 애쓴 죄밖에 없다”고 큰소리를 쳤더니 늘 완력을 휘두르던 이석주라는 남자 대의원이 노조 사무실 앞에서 총각의 머리채를 휘어잡고는 질질 끌고 다녔다. 정말 어이없는 상황이었지만, 여자 조합원들은 모두 일하는 시간이라 아무도 말려주는 사람도 없었다. 총각은 이럴 때마다 바깥일에 더 바쁜 지부장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래서 “니가 맨날 밖으로만 도니까 나만 봉변을 당한다”고 쓴소리를 내뱉기도 했지만 별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그들이 행패를 부리는 휴식시간만큼은 피하고 싶었지만 사무실을 비우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를 인간들이었다.
75년 하반기로 갈수록 회사의 부당노동행위가 더욱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조합원 개개인에 대한 협박과 회유가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신입 조합원에게는 노조에 대한 악선전을 해대서 아예 노조 사무실 가까이 가는 걸 꺼리게 만들었다. 이런 식으로 회사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조합원들 사이에 불신이 조장되고 개개인에게 가해지는 압력을 견디다 못해 퇴사하는 사람도 늘어났다.
한번은 와인더 1반에서 일하는 오청자와 다른 한명이 식당으로 부서이동 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 일은 조합원들의 노조 활동을 방해하려는 전형적인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는 일이므로 받아들이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총각은 지부장과 협의한 끝에
두 사람을 설득해 식당으로 가지 말고 우선 노조 사무실에 있도록 했다. 현장에는 못 들어가게 해서 일을 할 수는 없었지만 노조 사무실로 출근을 했으니 무단결근은 아니었다. 그렇게 한달 동안 회사 쪽의 처사에 저항했던 두 조합원은 결국 현장으로 복귀했다. 노조를 믿고 함께 투쟁해서 얻은 소중한 결과에 모두들 기뻐하며 얼싸안았다. 그 일을 겪은 오청자는 ‘기숙사의 유관순’으로 불릴 정도로 노조 활동에 더욱 열성적으로 함께했다.
회사의 압력이 심해질수록 노조 활동을 회피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았지만 오히려 노조를 지키려는 조합원들의 지지와 투쟁 의지는 더욱 고취되고 한걸음씩 전진하고 있었다. 그러자 회사 쪽은 노조를 아예 뒤집어엎으려는 술책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이총각 구술
구술정리 박민나<가시철망 위의 넝쿨장미> 작가
<한겨레 인기기사>
■ 심기불편 청와대 “박 대통령 만난 사람 이재용 부회장이 또…”
■ 고엽제전우회가 전두환 체포에 나선 사연
■ [인터뷰] 예일대 수학과 312년만에 첫 여성교수 부임하는 오희 교수
■ 27개월 지향이의 죽음 알고보니…5명의 ‘나쁜 어른들’ 있었다
■ [화보] 불타는 터키…강제진압과 저항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 심기불편 청와대 “박 대통령 만난 사람 이재용 부회장이 또…”
■ 고엽제전우회가 전두환 체포에 나선 사연
■ [인터뷰] 예일대 수학과 312년만에 첫 여성교수 부임하는 오희 교수
■ 27개월 지향이의 죽음 알고보니…5명의 ‘나쁜 어른들’ 있었다
■ [화보] 불타는 터키…강제진압과 저항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