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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길을 찾아서] 동일방직 수습투쟁위원회 발족 / 이총각

등록 2013-07-01 19:32

1976년 연말 동일방직 민주노조 이영숙 지부장의 돌연한 퇴사 이후 총무부장으로서 지부장 대행을 맡은 이총각은 섬유노조본부와 이를 따르는 일부 대의원들의 방해로 수습대책을 마련하는 데 애를 먹었다. 사진은 당시 수습대책을 논의하는 노조 운영회의 때로, 왼쪽부터 이병국·이석주·문명순 등이다.
1976년 연말 동일방직 민주노조 이영숙 지부장의 돌연한 퇴사 이후 총무부장으로서 지부장 대행을 맡은 이총각은 섬유노조본부와 이를 따르는 일부 대의원들의 방해로 수습대책을 마련하는 데 애를 먹었다. 사진은 당시 수습대책을 논의하는 노조 운영회의 때로, 왼쪽부터 이병국·이석주·문명순 등이다.
이총각-우리들의 대장, 총각 언니 33
우울한 1976년은 그렇게 갔다. 12월26일자로 퇴사해버린 이영숙 지부장에 대한 울분으로 마음을 못 잡던 동일방직 민주노조 조합원들은, 그나마 반조직파인 고두영이 현장을 떠나 경비실 근무로 보직이 변경되어 위안을 삼았다. 이영숙이 떠나자 회사 쪽은 고두영이 이용 가치가 없어졌다고 판단했는지 아예 조합원 자격이 없는 경비실로 보내버린 것이었다. 이렇게 76년 내내 혼란스러웠던 소용돌이 속에서 중심에 있었던 두 주역이 사라졌지만 민주노조의 사활을 건 투쟁은 계속되고 있었다.

이제 모든 시선은 총무인 이총각에게 쏠렸다. 오랜 현장 경험과 노조 내 위치로 볼 때 그가 지부장을 대행할 적임자임을 누구도 의심치 않았다. 여전히 노조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운 상황에서 총각의 어깨에 더 많은 짐이 올려졌지만 그가 힘들다고 거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만 그는 자신이 그런 일들을 잘 해낼지 염려스러울 뿐이었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와중에 노조 간부인 문명순과 박복례에게서 심상치 않은 변화가 감지되었다. 섬유노조본부(섬유본조)에서 내려보낸 수습위원 이풍우와 그 둘이 자주 만난다는 소문이 파다하더니 간부회의에서 이풍우를 대변하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가다 보면 죽도 밥도 안 되고 투쟁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수습위원의 말대로 회사 사원에게 지부장 자리를 맡기고 집행부도 반을 그들이 하더라도, 우선 조직의 반이라도 살려놓고 수습을 해가면서 다시 조직의 체계를 세워 나갑시다.”

문명순의 말도 안 되는 소리에 박복례가 죽을 맞춰 갔다. 그동안 회사가 보여온 대로라면 조직의 반을 확보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완전히 자기들 것으로 만들어버릴 게 불을 보듯 훤한 일이었다. 그렇게 되면 상황은 더욱 진흙탕 속으로 빠져들 것이다. 집행부 내에서 문명순과 박복례가 확실히 분열을 일으키고 있음을 감지한 이풍우는 그 두 사람에게 더욱 의미있는 미끼를 던졌을 것이다. 소문엔 이풍우의 의도대로 된다면 그 둘에게 확실한 자리를 보장해주겠다는 약속을 주고받았다고 했다. 그런 상황을 눈치챈 노조 간부들은 문명순과 박복례를 경계하게 되었다. 그동안 숱한 어려움을 함께 버텨온 동지들로부터 소외를 당한 두 사람은 급속도로 이풍우와 회사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1977년 1월21일 이총각·김인숙·정의숙·최명희 등 15명의 조합원으로 구성된 ‘동일방직사건 수습투쟁위원회’가 발족되었다. 이제 노동자의 권리는 노동자 스스로 지켜나갈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노동청에 대책을 요구하고, 섬유본조에 찾아가 항의를 해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특히 섬유노조 위원장인 김영태를 찾아가자 “여자들이 시집이나 가지 무슨 노동운동이냐? 지금 최면술에 걸려 그렇게 돌아다니는 거다”라며 관심 없다는 듯 손톱을 깎고 있었고, 그 옆에 있던 박은양 서울의류 지부장은 책상을 치면서 “너희들이 무얼 안다고 야단이냐?”고 무시하고 호통을 쳤다. 이제 누구를 믿고 의지한다는 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동일방직 노조는 조합원 스스로가 지켜내야 했다.

수습투쟁위원회는 회의를 열어 노조를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동일방직의 상황을 알리고 여론화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금까지의 억울한 사정을 담아 호소문을 작성하여 배포하고 사건 해부식을 하기로 했다. 동일방직 노조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의 원인을 낱낱이 해부하여 드러내놓고 치료하자는 의미였다.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그해 2월1일 부평4공단 안에 있는 산곡동에서 부평사목이 문을 열었다. 메리놀 외방선교회의 나마진 신부와 권조희 수녀가 소외받는 노동자들과 함께 삶의 공동체를 만들어가며 나눔과 사랑을 실천하는 활동을 시작한 것이었다. 그때 지오세(가톨릭노동청년회) 지도투사로 서울과 인천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던 이경심이 합류했고, 총각은 이 무렵부터 이경심과 본격적으로 동일방직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총각 구술

구술정리 박민나<가시철망 위의 넝쿨장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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