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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길을 찾아서] 여성조합원 전원투표, 대의원 선거 압승 / 이총각

등록 2013-07-03 20:17

이총각-우리들의 대장, 총각 언니 35
1977년 2월19일 동일방직 민주노조 지부장 대행을 맡은 이총각은 사내 식당에 조합원들이 운집한 가운데 그간의 경위와 사건 해부식 직전의 합의사항에 대한 보고대회를 열어 단상에 섰다.

“동지 여러분! 우리는 이겼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회사나 섬유노조본부(섬유본조)가 지키기로 한 약속을 위반할 때는 어떠한 투쟁도 두려워하지 않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2월6일 계획한 사건 해부식은 진행되지 않았지만 그 이상의 성과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승리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동지들의 굳은 의지와 내 권리를 나 스스로 찾겠다는 마음에서 우러난 투쟁의 결과이며, 전 조합원이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 있음을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조합원 동지 여러분! 우리 모두 힘을 합해 승리를 향하여 나아갑시다.”

‘알몸 시위’를 비롯해 그간 겪어야 했던 힘든 상황을 떠올리며 시작부터 침통했던 조합원들의 분위기는 이총각의 열띤 외침소리에 완전히 고조되어 갔다. 조합원들은 여기저기서 “옳소!”를 외치며 함성을 지르고 박수 치는 등 보고대회는 뜨거운 열기가 가득한 가운데 끝이 났다. 그런데 갑자기 대의원 문명순이 연단에 뛰어올라와 마이크를 잡고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여러분! 해산하지 마시고 잠시만 내 말을 좀 들어주세요. 조금 전 이총각씨의 보고 중 잘못된 부분이 있어서 정정하겠습니다.”

이미 그가 회사 쪽으로 넘어간 것을 모두 알고 있었기에 뜨악하고 어이없는 표정으로 보고 있는데 누군가 전원에 연결된 마이크 줄을 뽑아버렸다. 그러자 그는 마이크를 던져버리고 연단에 뛰어올라 뭐라고 외쳤지만 소음 속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조합원들은 그의 뻔뻔스러움에 분노로 가득 찬 야유를 보냈다.

“배신자 문명순은 물러가라!” “집어치워라, 집어치워!”

모두들 등을 돌려 나갔지만 그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웃고 있었다. 총각은 동료를 배신하고 정의에 등을 돌리고도 전혀 거리낌 없는 태도를 보이는 게 도무지 이해가 안 됐다. 반조직파 남자 조합원이 아닌, 고난을 함께한 동지였던 문명순과 박복례의 배신은 훗날 동일방직 노조의 비극적 결말을 알리는 신호탄 같은 것이었다.

본조에서 이광환이 새 수습책임위원으로 내려오자 멈춰 있던 노조가 제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광환은 당시 민주노조운동을 함께 해나가던 동광모방의 지부장이기도 했다. 그는 동일방직 민주노조의 편에서 모든 일을 준비하고 처리해 나갔다. 우선 76년에 선출된 대의원들과 현 집행부 및 상집간부 등을 중심으로 수습위원회를 구성했다. 13명의 위원은 이총각·정의숙·김인숙·정인자·김진분·최명희·유재길(집행부 지지 7명), 김건환·박영학·박성기(남자 조합원)와 박복례·문명순·박찬희(회사쪽 지지 6명) 등이었다. 집행부 지지 위원이 한명 더 많았기에 주도권을 잡고 대의원 선출방식 개정을 추진해 관철했다.

수습위원회는 대의원 선거일을 2월28일로 잡고 준비를 해나갔다. 지난 1년 동안 노조 활동이 정지돼 있었고 숱한 시련을 겪었기에 잘해내려는 열정이 가득했다. 그러나 반조직 행위로 징계를 받은 적이 있는 남자 조합원 이석주가 나타나 대의원 선거를 알리는 공고문을 찢어버리는 등 행패를 부려 심상치 않은 기류가 돌기 시작했다.

2월28일 투표 준비가 끝나고 이제 출퇴근하는 조합원들이 와서 투표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박복례를 비롯한 반조직파 7~8명이 나타나 지부 사무실을 점거하고 투표함과 비품을 때려 부수는 등 난동을 부렸다. 이때 투표하러 오던 400여명의 퇴근반 조합원들이 반조직파에 대항하여 일촉즉발의 상황이 되었다. 경찰이 나타나고 이광환 수습책임위원과 신연호 노정국장이 달려와 수습위원들과 중재에 나섰다. 남자 조합원 대표로 이석주가 나서서 “새 집행부 구성에 남자 조합원을 반 이상을 넣어 달라”, “남자 조합원들이 회사의 조종을 받지 않았음을 조합원들에게 알려 달라”는 등 헛된 주장을 늘어놓았지만 수습위원회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이어 오후 2시 퇴근반 400여명이 새벽 퇴근반과 합세하여 농성에 들어갈 준비를 하자, 회사 부사장이 나타나 남자 조합원을 설득한 끝에 상황은 종료되었다. 드디어 계획대로 투표가 진행되었다. 여자 조합원들은 전원 투표에 참가했으나, 남자 조합원들은 여러 번의 투표 공고에도 불구하고 모두 기권했다. 대의원 45명 가운데 38명이 선출되었고, 대부분이 집행부를 지지하는 쪽이었다.

구술정리 박민나

<가시철망 위의 넝쿨장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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