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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길을 찾아서] “우린 동일방직 노조를 깨부수러 왔소이다” / 이총각

등록 2013-07-21 19:28

1978년 2월21일 새벽 도시산업선교회의 조화순 목사는 잠을 깨우는 다급한 전화를 받고 동일방직 노조로 달려왔다. 사진은 조 목사가 똥물 만행을 당하고 울고 있는 여성 조합원들을 달래는 모습.
1978년 2월21일 새벽 도시산업선교회의 조화순 목사는 잠을 깨우는 다급한 전화를 받고 동일방직 노조로 달려왔다. 사진은 조 목사가 똥물 만행을 당하고 울고 있는 여성 조합원들을 달래는 모습.
이총각-우리들의 대장, 총각 언니 47
1978년 2월21일, 동일방직 민주노조를 대상으로 초유의 똥물 투척 사건을 벌인 회사와 반조직파 세력의 목적은 대의원 선거를 중단시켜서 노조를 혼란에 빠뜨리는 것이었다. 이총각은 노조 사무실을 에워싸고 농성을 벌이고 있던 조합원들을 돌려보내며 오후 2시 투표를 다시 진행한다고 선언했다.

현장으로 돌아간 조합원들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침착하게 사태를 진정시키고 계획대로 일을 진행해야 했다. 노조 집행 간부들은 사무실을 정리하고 회사 앞에 있는 충남상회에서 라면 상자를 얻어 와서 다시 투표함을 만들기 시작했다. 집행부의 유일한 남자인 부지부장 이병국은 노조 사무실에 뿌려진 똥을 삽으로 퍼내고 닦아내며 궂은일을 도맡아 열심히 해냈다. 그는 이총각 집행부 전까지만 해도 여자들 편을 들어주는 것이 용기가 나지 않아 남자 조합원들 쪽에 서 있기도 했기에, 참으로 착잡한 심정이었다.

그날 낮 12시를 향해가고 있는 시각, 동일방직의 소식을 들은 다른 노조의 간부들과 조합원들, 활동가들이 달려와 회사 정문에서 출입이 통제된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날 새벽 조화순 목사는 잠결에 전화를 받았다. 도시산업선교회(산선) 회원의 다급한 목소리 속에서 뭔가 큰일이 터졌다는 사실을 직감한 그는 여기저기 연락을 취하기 시작했다. 직접 현장에 가서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낮 12시를 알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남자 조합원들이 쳐들어와 총각과 간부들을 무지막지한 힘으로 끌어내고는 노조 사무실을 점거해버렸다. 그들 가운데 섬유산업노조본부(섬유본조)에서 파견된 조직행동대원들도 끼어 있었다. 똥물 난동을 벌일 때부터 있었던 낯선 남자들이 바로 행동대장인 맹원구가 이끄는 본조 소속 깡패들이었다. 그들을 총지휘하는 자는 본조 조직국장 우종환이었다. 남자 조합원들이 똥물을 끼얹으며 짐승 같은 짓을 할 때도 본조에서 지부 조합원을 보호하기 위해 보낸 그는 정작 팔짱만 끼고 구경하고 있었다. 총각은 그를 보자 분노가 폭발했다.

“야! 이놈아!! 네가 그러고도 섬유노조 조직국장이냐? 이 천하에 나쁜 놈아!!” “오~ 이총각! 살아 있네? 근데 넌 누굴 믿고 그렇게 당당하냐?” “몰라서 물어? 나는 하느님 빽이 있다! 왜!”

우종환이 하느님을 알았을까? 만약에 그랬다면 천벌이 두려워서도 그런 짓은 못했을 것이다. 조직행동대는 원래 사용자에 대항한 투쟁에서 노조를 돕도록 설치된 기구였으나 김영태 위원장이 들어서면서 완전히 정부와 회사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었다. 조직행동대는 앞서 2월14일 대구의 수정호텔에서 강화식을 열고, 풍한방직 신탄진공장 노조지부장 맹원구를 대장으로 임명해 민주노조 파괴 책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해서는 78년부터 81년 초까지 중앙정보부 경기도지부에서 노사문제 담당관으로 일했던 최종선의 증언이 있었다. 그는 유신정권에 의해 고문살해 당한 ‘의문사 1호’ 최종길 서울대 법대 교수의 동생으로, 2001년 3월 동일방직 해고 노동자들에 대한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와 관련해 도움을 주고자 기자회견을 했다. 최종선은 78년 2월 초 인천 신포동 뒷골목에 있는 한 여관에 수상한 자들이 집단적으로 들락거린다는 보고를 받았다. 이는 담당자인 본인도 모르는 사항이라 경기도경 정보과에 확인했지만 ‘말하기 곤란하다’는 답만 돌아왔다. 결국 본인이 직접 가서 보니 우종환과 맹원구 일당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당당했다. “정말 우리가 누군지 몰라서 묻소? 위(중정 2국)에서 다 알고 있는데, 우리는 동일방직 노조를 깨부수러 왔소이다.”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최종선은 애초 부임하면서 정권 타도나 유신철폐 요구만 아니면 최대한 노조 활동을 도와주겠다고 동일방직 노조와 평화협정을 맺은 터여서, 노조 내부의 조직분규 사안에 대해서는 중정에서 간여를 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상부에 보고해둔 상태였다. 그러자 경기지부는 이 일에서 빠지라는 말만 되돌아왔다. 그는 경기도·경찰·노동청·인천시 등과 대책회의를 열고 개입을 금지할 것을 강조했다. 그러나 결국 똥물 투척 사건이 발생하고 온 나라가 들끓자, 경기도지부에 수습 지시가 내려지고 그는 이후의 상황을 맡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이총각 구술
구술정리 박민나<가시철망 위의 넝쿨장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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