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3월12일 이총각 지부장이 약속과 달리 체포당하자 동일방직 민주노조 여성 조합원들은 다시 서울 명동성당으로 들어가 단식농성을 했다. 종교계의 중재로 협상안을 받아들여 13일 만에 농성을 풀고 회사로 복귀하려고 했던 조합원들을 회사는 결국 해고했다. 사진은 당시 명동성당에서 의자를 붙이고 누운 채 단식농성중인 여성 조합원들.
이총각-우리들의 대장, 총각 언니 52
1978년 3월21일 동일방직 여성 조합원들의 단식투쟁이 열흘을 넘기고 있었다. 몸이 약한 노동자들이 하나둘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가기 시작했다. 물 한 모금조차 거부하다 창자가 달라붙는 바람에 실신한 조합원도 있었다. 농성 조합원들을 더욱 힘들게 만드는 것은 ‘딸이 빨갱이 소굴에 빠져 도망도 못 치고 꼼짝없이 굶어죽게 생겼다’는 회사 쪽의 거짓말을 듣고 찾아와 성화를 부리는 가족들이었다. 더는 보고만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한 종교계·여성계·노동계·해직교수·청년단체 등 각계 인사들이 참여해 동일방직사건긴급대책협의회가 구성되었다. 인천 답동성당의 김병상 신부를 위원장으로 하고 강원용·문익환·백낙청 등 100여명의 인사들이 위원으로 참여해 관계기관 및 회사 쪽과 협상을 서둘렀다.
3월23일 오전 10시 김수환 추기경, 강원용 목사, 김관석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가 협상의 결과물을 들고 명동성당의 농성 조합원들 앞에 섰다.
“조합원은 오늘로써 단식농성을 해산하고 건강관리도 할 겸 이틀쯤 휴식을 취한 뒤 정상 출근할 것, 모든 문제는 2월21일 이전으로 환원시킬 것, 민주적인 분위기에서 대의원 선거를 할 수 있도록 관계기관에서 보장해줄 것, 회사는 개입하지 않을 것, 단식 농성자로부터 각서라든가 실제적 정신적 압력 행사를 하지 않을 것 등에 대해서 합의를 보았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할 일은 건강관리와 대의원 선거를 다시 치르는 일입니다.”
“우리는 말로 했던 약속에 많이 속아왔습니다. 믿을 수가 없으니 약속 이행을 보장할 문서가 필요합니다.”
“그런 것이 없어도 믿을 만한 약속이었으니 안심해도 됩니다.”
종교계를 대표하는 분들이니 더는 의심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농성 조합원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그리고 성당에서 준비해준 관광버스로 인천 도시산업선교회로 가서 그곳에서 단식농성을 하던 동료들과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 조화순 목사는 그동안 단식을 한 농성 조합원들을 위해 흰죽을 끓여냈다.
13일간의 농성을 푼 다음 앞으로의 대책을 두고 논란이 없지 않았다. 단식농성이 풀리자 회사 쪽에서는 농성자들이 12시까지 회사로 복귀할 것을 요구했다. 당시 명동성당 쪽에 함께 있었던 가톨릭노동청년회(지오세) 전국회장 정인숙과 부평노동사목 실무자 이경심 등은 회사 쪽에서 언제 다시 변심할지 모르는 일이므로 이대로 회사 정문 앞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산선의 조 목사는 회사에서 데리러 와야지 왜 우리가 가야 하느냐고 반문하고 우선 단식농성 끝이니 씻고 먹고 휴식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해서 결국 산선으로 왔으나 회사 쪽에서는 조합원들이 들어오기만 바랄 뿐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그런데 기숙사에 옷을 가지러 갔던 조합원들이 황당한 일을 겪었다. 경비실에서부터 남자 직원들이 총동원되어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살벌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더구나 기숙사로 들어가기 전에 사무실로 오라고 하더니 과장과 부장급 직원들로 자격심사위원회를 만들어 회사에 다시 나오고 싶으면 각서에 도장을 찍으라고 했다. 각서는 회사의 명령에 절대 복종할 것이며 어떠한 처벌도 감수하겠다는 내용이었다. 13일간 단식농성의 대가는 결국 민주노조를 완전히 포기하라는 것이었다.
종교계가 총동원되어 받아낸 타협안은 그렇게 백지화되고 말았다. 몇몇 노동자는 굴욕을 감수한 채 각서를 쓰고 출근했지만 “너희들은 무슨 수를 써서든 사퇴를 하게 만들겠다”는 협박만 돌아왔다. 그래도 고향에 있는 가족에게 돈을 부쳐야 했던 어린 가장들은 그렇게라도 회사에 다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산선에 남아 절치부심하고 있던 대다수의 농성 조합원들은 허탈감에 빠졌다.
3월24일 회사는 농성 조합원들이 회사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고 사흘 이상 무단결근을 했다는 이유를 들어 경기도 지방노동위원회에 해고예고 예외인정 신청서를 제출했다. ‘근로기준법 제27조 2항’에 의하면 사용자가 근로자를 해고하고자 할 때는 적어도 30일 전에 예고를 해야 하는데 근로자에게 귀책사유가 있는 경우 노동위원회의 인정을 받으면 바로 해고가 가능하게 되어 있었다. 이틀 뒤인 26일 경기도 지방노동위원회에서 파견된 중앙노동위원 4명은 동일방직 노조 간부들과 40분간의 대화에서 오로지 조합원들의 잘못만을 탓했고 결국 회사 쪽의 해고예고 예외인정 신청은 통과되었다.
이총각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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